어떤 조언

님에서 남이 되려는 두 사람 사이에서

by 김정관

두 분 사이 일을 제가 참견하는 건 피해야 할 일인데 이렇게 말씀드리게 되는군요. A님의 말씀대로라면 그동안 참 힘든 시간을 함께 보내셨군요. 무려 십 년이라니 긴 세월인데.


그런데 두 분 다 다른 사람과 부부로 살아보셨지만 둘 만이 함께 한 집에서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단지 부부라고 해서 참고 살아야 한다는 건 옛날이야기지요. 남들이 들으면 사소한 일이라 여길지 몰라도 이런저런 이유로 이혼하거나 별거해서 사는 사람이 많은 세상입니다.


두 분은 서로 필요해서 가까운 벗으로 십 년이나 같이 하지 않았습니까? 대체적으로 나에게 잘해주면 좋은 사람이고 내 맘에 차지 않으면 안 좋은 사람으로 보기 마련이지요. 그러니 어떤 사람에 대한 평판은 내 판단 기준에 따라 좋고 나쁜 게 결정되는지도 모릅니다.


혹시 아실지 모르지만 두 사람이 서로 다를수록 끌리게 된다고 하더군요. 우리 부부도 공통점이라고는 같은 종교를 가졌다는 것뿐인데 지금까지 살면서 크게 다툰 기억이 없습니다. 부부는 살아가면서 닮는다고 하더니 지금은 음식 취향도 그렇지만 TV 프로그램이나 영화도 비슷한 장르를 좋아한답니다. 그러니 일상생활에서 가장 민감한 채널 주도권을 가지고 시비할 필요가 없지요.


우리 딸은 완전 친탁이라 얼굴도 그렇지만 성격도 저와 닮은 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와는 사소하지만 갈등이 적지 않았는데 모녀간에는 큰 소리를 내는 걸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에 어울리는지 모르지만 직업까지 같은 딸이 지금은 제 편도 많이 들어준답니다.


친구도 그렇지만 특히 남녀 사이는 나와 다른 점이 있어야 가까이할 이유가 되는 것 아닐까요? 그가 갖지 못한 걸 내가 채워줄 수 있고 또 나도 그런 걸로 그 사람이 필요하게 되니까요. 나와 다른 점이 별로 없다면 함께 지내면 심심할 것 같은데요?


늦게나마 철이 들어서 요즘 우리집에서는 제가 집안일을 더 많이 하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옛말에 방은 같이 쓸 수 있어도 부엌은 힘들다고 합니다. 설거지를 예로 들면 저는 컵 하나만 나와도 바로 씻어야 하는데 아내는 모아두었다가 씻는 스타일입니다. 라면 끓이기 전문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제법 근사한 요리도 만들어서 칭찬을 듣기도 합니다.


부엌 갈등의 피크는 보통 냉장고에서 비롯된다고 하지요. 그래서 남의 집에 가게 되면 허락 없이는 절대 냉장고 문을 열면 안 됩니다. 아내의 몸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렇겠지만 냉장고에 오래된 식재료가 눈에 띄기도 합니다. 그럴 땐 아무 말 없이 정리해야지 말을 꺼내면 다투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일 겁니다.


대부분의 문제는 내가 받아들이는 관점에서 해결책도 나오지 않나 생각합니다. 제가 도덕군자도 아니어서 뒤늦게 철이 들어 살아온 날을 돌아보니 아내에게 잘못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더군요. 아내가 힘들게 살아온 시간이 다 제 탓이라고 받아들이니 이젠 화가 나도 머리를 숙이게 됩니다.


저도 성정이 부드러운 편이 아니어서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부모님과 철없던 시동생을 건사하기도 버거운 아내에게 좋은 남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저를 좋아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결혼해서 모진 시집살이를 이겨낸 아내에겐 남은 생은 죄인으로 살아야지요. 나이가 들어서라도 마음을 달리 먹을 수 있어서 아내 입장에선 참 다행이지요?


A님, B님에게 그동안 잘해준 게 많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준 게 있으면 꼭 되돌려 받는 게 세상의 이치니까요. 내가 부족해서 남에게 폐를 끼치고 신세 지고 살면 그게 부끄럽고 서글픈 것이죠. 되돌려 받으려고 잘해 준 건 아닐 테니 서운해하지 마세요.


누구나 내 마음에 들게 나를 대해줄 수 없지 않습니까? 내가 그를 위해 잘해 주는 건 내 마음대로지만 상대가 내 바람만큼 해주는 건 어렵지요. 저는 인색하다고 볼 만큼 검소하게 살지만 아내는 장손 며느리에 어울리게 손이 크답니다. 이렇게 사는 스타일이 다르면 많이 다툴 것 같지만 제가 못하는 걸 아내가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살았답니다.


십 년이라는 세월을 가깝게 지내다 헤어질 결심을 하신다니 얼마나 마음이 힘드실까요? 남녀가 오래 함께 지내다 보면 좋은 시간만큼 그렇지 않았던 기억도 많겠지요. 하지만 나만 그렇게 아플까요? 그렇지 않아서 서로 할 말이 많을 겁니다. 큰 결심을 하셨다면 마음으로 잘 정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A님이 큰 병을 치료 중인데 이런 일이 있어서 더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우리네 삶에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으며 살기란 참 어렵지요. 나이가 들어갈수록 오직 한 사람이 곁에 있어서 내가 힘들 때 지켜주면 참 좋은데 그 사람과 헤어지게 되는군요.


A님, 부부로 살아도 그렇고 친한 친구라고 해도 드라마의 해피엔딩이 지속되는 관계는 없을 겁니다. 당분간 마음을 잘 추슬러서 건강을 회복하는데 애쓰시길 바랍니다. 바라는 마음을 줄일수록 그만큼 행복할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제 그 사람을 놓아주고 주위를 살펴보면 나를 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실 겁니다.


몸과 함께 마음까지 건강해진 A님의 모습을 어서 뵐 수 있길 기다립니다.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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