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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Jul 05. 2023

집의 얼개를 정하다

명지동 상가주택-기획 설계

설계 계약을 하고 작업을 시작한 지 거의 한 달 만에 첫 협의를 했다. 기획 설계 결과를 보고하고 계획 설계의 방향을 결정하는 게 이번 미팅의 목적이다. 이번 작업은 설계 기간을 충분히 잡을 수 있어서 단계별로 제대로 검토해서 진행하려고 한다.     


발코니 하우스의 대지 조건이 이번 대지와 비슷하니 그냥 진행하면 될까? 천만의 말씀이며 큰 일 날 일이다. 대지 면적과 블록의 코너를 물고 있다는 조건이 비슷할 뿐이다. 물론 택지의 지구단위계획 지침과 상가주택이라는 용도는 이미 검토되어 그만큼 시행착오를 줄여 본 작업에 들어갈 수 있다.  

   

상가주택은 앞서 세 건을 작업했었고 인접 블록에 비슷한 조건의 발코니 하우스를 성공리에 끝냈는데 무슨 엄살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우리를 설계자로 낙점했던 건축주 대리인께서도 발코니 하우스가 워낙 마음에 든다며 그대로 지었으면 좋겠다고 반농담으로 말씀을 던지긴 했었다. 과연 어떤 결과로 계획 설계가 마무리될지 두고 볼 일이다.     


집의 정면은 남향     


집의 정면을 결정하는 단서는 주도로에 면하는 쪽이 된다. 그런데 이 대지에 접한 도로의 폭은 각각 8미터로 같다. 그러면 조망권과 남향이 다음 조건이 될 텐데 이 대지는 조망할 대상이 없으니 남향에 면하는 쪽으로 정면이 결정되었다.     


요즘 아파트는 남향집보다 조망권이 대세다. 30층은 보통이고 50층도 좀 높은 정도이며 백 층까지 아파트로 짓는다. 15층에서 내려다봐도 충분할 텐데 50 층이나 더 높은 층에서 보면 뭐 다른 걸 볼 수 있을까? 높이, 더 높이 올라가서 살면 그만큼 행복해질까 모르겠다.


대지 주변과 인접 건물과 관련되는 법적인 제약선

    

집은 남향으로 짓는 게 그 어떤 조건보다 중요하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오죽하면 우리 조상님들은 남향집에 살 수 있으려면 삼대적선 공덕이라야 한다 했을까?  우리 집은 구축아파트지만 정남향 집에 살면서 겨울 햇살이 드는 거실에 앉아 있으면 조상님의 말씀을 잘 새겨들어야 한다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조망권이 살아 있어 보이는 경치가 아무리 좋아도 두세 달이면 익숙해지고 만다. 그런데 하필 서향집? 동행집?이라면 그 햇살은 오래 살아도 익숙해지는 건 참 어렵다. 그렇지만 집 앞에 경치가 좋다면 살아보지 않은 다음에야 외면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다행히 우리 대지는 남향 밖에 없으니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 오히려 다행이라 할까?      


3개 층의 얼개를 짜다     


대지에 적용할 건축한계선, 일조권 사선제한이격선 등을 그어놓고 건축물을 배치하니 건폐율에 다다르게 된다. 계단실과 E.V는 대지에서 가장 깊숙한 자리가 되고 남쪽과 서쪽으로 도로에 면해서 거실과 방이 놓이게 되겠다. 일층에는 근린생활시설, 이층은 다가구주택이 네 가구가 들어간다.     


상가주택은 일층, 이층, 삼층이 각기 다른 용도로 이루어지니 각층이 자유롭게 구성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계획 설계가 종료되려면 각층 용도의 쓰임새에 있어 부족한 점이 최소화되어야 할 것이다. 일층 근린생활시설은 장사가 잘 되어야 하겠고, 이층 다가구주택은 이 집이 아니면 다른 집에 살 수 없다는 말이 나와야 할 것이다.     


발코니 하우스 전경과 평면도


일이 층의 평면 얼개를 잡고 나서 그 바탕에다 삼층 단독주택을 앉히는 작업을 시작했다. 단독주택에는 방이 네 개, 욕실 두 개와 거실과 주방이 들어간다. 이 집의 프로그램에서 큰 특징은 안방을 따로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대신에 방의 크기가 작아서는 안 되며 발코니는 되도록 두고 싶다는 게 건축주 분의 요청이다.

    

A안과 B안, A안은 공용공간인 거실과 주방을 남향으로 두고 방은 서쪽으로 세 개가 집중된다. B안은 거실과 방 세 개가 남향으로 앉게 된다. 대안을 만들어 보면 각 안이 장점과 단점을 같이 가지고 있어서 장점 위주로 안을 선택하면 된다.   

  

3층 단독주택의 얼개, A안과 B안     


A안은 남향으로 공용 공간인 거실과 주방, 식탁이 배치된다. 식구들이 함께 쓰는 공용 공간이 남향에 면하게 되니 집 안 분위기가 밝고 쾌적하다. 특히 남향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보내는 생활을 즐길 수 있다. 식탁이라고 하면 밥 먹는 자리가 되지만 탁자-테이블은 책도 보고, 대화를 나누면서 차나 와인을 마시는 일상을 상상해 보면 좋겠다.     


그런데 A안은 동선이 공간을 많이 점유하게 되어 발코니를 둘 면적이 나오지 않는다는 게 단점이다. 발코니를 없앤 아파트에 살아보면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된다. 발코니의 쓰임새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외부와의 완충 영역이라는 큰 역할이 있다.     


A안 평면도


B안은 남향에 거실과 방이 두 개가 배치된다. 네 개의 방은 각각 두 개씩 조닝이 되어 South Zone은 추후에 다목적실로 쓸 수 있도록 고려되어 설계된다. West Zone은 침실로 부부가 방을 따로 쓰더라도 욕실을 공유하며 Master Room Zone으로 같은 영역에 있게 된다.   

   

B안의 장점은 남향에 발코니를 둘 수 있는 점과 동선 공간을 줄일 수 있어 실리적인 안이라 할 수 있다. 단점은 A안의 장점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지만 B 안이 가지는 장점에 가려질 수 있다. 이제 눈치채셨겠지만 설계자의 제안은 B안으로 기울어졌다. 그렇지만 건축주 분의 결정은 어떠실지.      


B안 평면도, 발코니 확장 여부와 다락으로 이어지는 계단의 위치, 욕실과 방의 쓰임새를 검토할 내용이 담겨 있다



    

이번 협의로 집의 얼개가 어떤 안으로 잡힐지 설계의 방향을 결정하게 된다. 기획 설계의 결과물로 A안과 B안으로 정리하기까지 각각 열 가지 이상의 대안을 검토했다. 기획 설계가 마무리되고 계획 설계로 작업 단계가 넘어가면 외관 작업과 연계되어 평면도 조금씩 수정될 것이다.     


계획 설계 단계는 건축주 가족의 Life Cycle을 고려해서 집을 어떻게 쓸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제안을 하게 될 것이다. 본 설계라고 할 수 있는 실시 설계에 들어가기 전에 집을 어떻게 쓸 수 있을지에 가능한 고민을 다해야 한다. 건축주 분의 선택은 A안일까? B안일까? 



도반건축사사무소-대표 건축사 김정관은

집이 행복의 원천이라는 주거의 인문학적 접근을 통해

부산, 양산, 김해, 울산의 단독주택, 상가주택 및 공동주택을 주로 설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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