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제 글을 읽은 독자가 백만이라니 놀랄 일입니다. 아니 독자가 백만은 아니고 읽은 횟수가 그렇다는 것이지요. 작가 입장에서 제가 쓴 글을 그렇게 많은 분이 읽어주셨다니 이만한 감동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요?
2021년 7월에 브런치 작가로 첫 글을 올려 딱 2년 만에 제 글 조회 수가 백만을 돌파했습니다. 제 명색이 어쩌다 등단을 해서 수필가라고 하지만 작가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작가로서 제 이름으로 억지 수필을 쓰기보다 등단하기 전의 무설자라는 필명으로 자유롭게 쓰는 게 좋았기 때문입니다.
‘브런치스토리’를 만나게 되면서 물 만난 물고기처럼 본격적으로 대중과 만나는 작가가 된 셈입니다. 블로그나 카페에 글을 쓰는 게 실개천이라면 브런치스토리는 바다와 다름없더군요. 온라인 카페에 글을 올리면 조회 수가 아주 잘 나와도 300 명을 넘기기 어려운데 브런치스토리는 조회 수가 천 명이 넘는 글이 51개입니다. 심지어 글 하나에 조회 수가 24만까지 나왔고 만이 넘는 글도 21개나 됩니다.
https://brunch.co.kr/@kahn/14
제 글은 제 일인 건축사로서 ‘단독주택’이나 ‘주거 문화’를 주제로 삼고, 좀 더 많은 독자를 제 브런치스토리 사이트로 모시기 위해 ‘보이차 차 생활’을 부제로 삼았습니다. 그동안 제 블로그-티스토리 무설지실에 써 둔 글을 정리해서 브런치스토리에 올린 게 이 글까지 257개가 되는군요. 제 글은 소위 감성 에세이가 아니어서 독자층이 넓지 않아서 백만 조회가 제게 주는 의미가 남다른 게 사실입니다.
제 글의 주제는 주거인문학
제가 쓰는 글의 주제가 되는 ‘단독주택’이나 ‘주거인문학’은 건축사로서 사명감으로 글을 짓습니다. 우리 삶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를 衣食住의식주라고 얘기합니다. 옷과 밥, 집은 만든다고 하지 않고 짓는다고 쓰지요. ‘짓는다’와 ‘만든다’는 가려서 쓰는데 짓는다는 마음을 담아 만드는 걸 이릅니다.
그런데 짓는 건 마음을 담아 직접 손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은 옷도 그렇지만 밥까지 돈을 주고 사 먹습니다. 집도 마찬가지로 지어놓은 집을 돈을 주고 구입하니 이제 지어서 쓰는 건 거의 없다고 봐도 되는 실정입니다. 마음을 담아 짓는 옷이나 음식은 얼이 담기는데 만들어진 걸 사서 입고 먹으니 얼이 담기지 못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아파트라는 집도 얼이 담기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입니다. 이젠 잘 들을 수 없는데 家風가풍이라는 말은 주거 생활을 통해 드러나는 우리집의 정체성이라 봅니다. 집을 지어서 살았던 우리 선조의 한옥은 그 집에서 사는 것으로도 사람의 됨됨이가 형성되었습니다. 사람이 집을 지었지만 나중에는 그 집이 사람을 만들게 되는데 아파트는 우리를 어떻게 만들어 왔을까요?
단독주택은 얼을 채울 수 있는 집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파트와 크게 다를 바 없이 단독주택을 짓고 있으니 이를 어쩝니까? 제가 브런치스토리에 글로 써서 제안하는 얼을 채우며 살 수 있는 주거인문학이 조회수 백만으로 호응을 얻었습니다.
제 글의 부제는 마음을 채우는 차 마시기
지금은 고독과 동거하는 시대라고 합니다.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멋있게 고독을 향유할 수 있는 사람은 별개입니다만. 고독한 삶을 노랫말처럼 받아들이면 표범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정을 갈구하는 하이에나가 되고 마는 것이지요.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에 하이에나 /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 산장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 자고 나면 위대해지고 자고 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 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
‘지금 세상을 살면서 외롭지 않은 사람이 있나요?’ 외롭지 않으냐고 물으면 이렇게 반문하는 게 답이지 않나 싶습니다. 일인가구가 전체 가구 수의 3할이 넘어가는 우리나라는 고독사로 세상을 떠났다는 게 뉴스거리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부부만 사는 집에 각방으로 생활하고 손주와 시간을 보내는 노년 생활은 꿈도 꾸지 못하는 게 우리네 삶입니다.
저는 차 마시는 생활을 권하는 글을 씁니다. 차를 주제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차를 마시며 사는 삶이 얼마나 즐거운지 알리고자 합니다. 차는 혼자 마셔도 좋고 누구라도 함께 마셔도 좋습니다. 혼자 마시는 차는 고독을 녹여 허전한 내면을 채워줍니다. 부부가 차를 가까이하면 대화의 매개체로 이만한 게 없지요. 대화 부재로 사람 관계가 불통인 답답한 삶에서 차는 소통의 매개체입니다.
글쓰기는 삶을 돌아보게 하는 수행
글쓰기는 혼잣말하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그 누구보다 자신과 나누는 대화가 필요한 세상이지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세태에 무엇을 하며 지내야 할까요?
유튜브나 OTT로 모니터에 함몰되거나 VR기기를 뒤집어쓰고 게임에 빠져 사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가끔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반추하지 않으면 브레이크 없는 차를 모는 것처럼 걷잡을 수 없이 고독의 블랙홀에 빠져들지도 모릅니다. 명상이나 글쓰기는 브레이크처럼 작동해서 무작정 달려가는 일상을 잠시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고 정비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브런치스토리는 글쓰기를 통해 세상과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입니다.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자신의 일상을 비추어 보며 위로를 받고 격려와 응원을 받을 수 있지요. 말은 들어주는 상대가 있어야 할 수 있지만 글은 자신과 얘기를 나누며 다른 이의 속내도 살필 수 있습니다.
내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나요? 그 누구에게 내 얘길 속 시원하게 털어놓은 적이 있나요? 그 누가 나에게 그의 속을 다 보이며 절절한 자신의 얘길 하던가요? 이젠 누구라도 만나는 자리를 가지는 건 고사하고 전화 한 통화를 하거나 받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고 읽으면서 교감해야만 고독을 멀리할 수 있습니다.
브런치스토리는 진중한 글을 쓰고 읽는 열린 대화의 장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얘길 써서 올린 글을 백만 명이 읽었습니다. 백만 명이라는 조회 수가 세상이 관심을 가지지는 않지만 제가 꾸준하게 글을 쓸 수 있도록 브런치스토리가 쳐주는 박수입니다.
건축사로서 집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며 이렇게 지어야 집이 행복한 삶을 살게 해 주는지 알리고 싶어 글을 씁니다. 또 대화 부재로 불통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차를 권하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나누고 살면 그 누구라도 손을 잡아줍니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대화의 매개체는 오로지 차 밖에 없기에 차를 권하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