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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Sep 12. 2023

우리나라에는 왜 고급 보이차를 찾아보기 어려울까?  

첫물차 보이차도 커피 한 잔 값이면 마실 수 있는데

보이차에 입문하는 다우들에게 꼭 당부하는 말이 있다. 차를 구입할 때 통 단위 보다 두 편만 사라고 한다. 보이차는 일곱 편을 죽포로 포장된 한 통은 할인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 그래서 한통은 보관하고 한편은 마시는 식으로 한통 한편으로 사는 게 일반적인 구매 방식이다. 그러니 한 번 구입에 여덟 편씩 쟁여지게 되니 방 하나 채우는 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보이차에 입문해서 흥미를 붙이면 차 구입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보이차는 357g 한 편에 5만 원 이하로 구입할 수 있는 차가 즐비하다. 녹차는 포장 단위가 80g인데 보통 5~10만 원이니 보이차 구입에 저항감 없이 질러 버리게 된다.


녹차와 보이차는 구매 단위에서 큰 차이가 있다. 녹차는 80g, 보이차는 357g인데 녹차는 다 마셔 가면 구입하는데 보이차는 한통 한편을 수시로 사들이게 된다. 녹차는 오래 두고 마시는 차가 아니고 보이차는 쟁여두면 더 좋아진다는 후발효차의 특성을 믿기 때문이다.


일곱 편을 죽포로 포장한 단위를 통이라 부르고 칠자병차라 부른다. 보통 한통 한편을 구매해서 한편을 마시면서 한통은 후발효를 기대하며 보관하는 게 일반적이다
호박에 금 긋는다고 수박이 되지 않는 것처럼
시간이 지난다고 아무 차나 후발효에서 바람직한 변화가 일어나는 건 아니다


문제는 보이차는 무분별하게 값싼 차를 통 단위로 구매한다는 데 있다. 후발효차의 특성으로 보이차는 시간이 지나면서 차맛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호박에 금 긋는다고 수박이 되지 않는다는 말처럼 아무 차나 바람직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한다.


녹차는 구입한 해를 넘기지 않고 다 마시기 때문에 구입할 당시의 취향에 맞는 차를 선택하면 된다. 그런데 보이차는 열 편도 아니고 백 편을 넘어 방 하나를 채워버린 양이 있는데 내 입맛이 올라가면 어떻게 될까? 싸게 구입한 보이차는 대부분 묵힌다고 해서 내 입맛이 바라는 향미로 변화되는 건 아니다. 오래 묵히면 좋은 차가 된다는 건 假說가설일 뿐 내가 소장한 차에 적용된다고 보장할 수 없다.


한편에 3만 원인 차와 그 열 배인 30만 원인 차가 포장지로 보면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만약에 30만 원을 주고 산 차가 내 입맛에 맞아서 계속 그 차를 마셨다면 3만 원짜리 차는 다시 마시기 어려워질 터이다. 편당 3만 원짜리 차는 분명 통단위로 구입했을 가능성이 높을 것인데 내 입맛이 올라가 버렸으면 어떻게 될까? 싸다고 부담 없이 막 질러 쟁여져 있는 양이 얼마인데 저 차를 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될 것이다.


필자가 마시고 있는 첫물 보이차, 찻값은 산지와 수령에 따라 천차만별이며 첫물차는 가격대가 높아서 국내에 들여오기 어렵다
싸고 좋은 걸 바라는 건 욕심일 뿐이니
나를 위해 마실 찻값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이다


보이차는 후발효를 통해 향미가 더 좋아질 거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면서 계속 보관하는 방법 말고 달리 묘수를 찾을 수 없다. 그런데 염소 새끼를 키우면서 소가 되는 걸 바라는 건 어리석은 생각인 것처럼 차도 지금 마셔서 만족할 수 있어야 훗날도 기약할 수 있다. 싸고 좋은 걸 바라는 건 욕심일 뿐이니 나를 위해 마실 차의 값을 얼마나 치를 건지 신중하게 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통은 보관하고 한편을 마시면 여덟 편의 값을 치러야 한다. 여덟 편 값으로 두 편을 사서 한편을 마시면 차를 마실 때마다 얼마나 정성을 다하게 될까? 그렇지만 한통을 쟁여놓고 한편을 마시면 아마도 차를 함부로 대하게 될 것이다. 보이차도 좋은 차를 마시고 싶다면 그에 합당한 값을 치러야 하는 건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싶다.


얼마 전부터 첫물 보이차를 마시게 되면서 고수차의 珍味진미가 바로 이런 맛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곡우, 중국에서는 청명이 되기 전에 처음 올라오는 어린잎으로 만드는 첫물차의 향미는 진하면서 부드럽다. 하지만 一芽二葉일아이엽이 되는 짧은 시기에 찻잎을 따내야 하므로 생산량이 한정된다. 그러니 그 귀한 차를 마실 기회가 흔치 않을 수밖에 없다.

첫물차의 진미가 이런 맛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갈등에 빠지게 되었다


첫물 보이차만 소장한 분을 만나면서 드디어 나도 여러 산지의 차를 마시게 되었다. 그런데 첫물차의 진미가 이런 맛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갈등에 빠지게 되었다. 첫물차에 내 입맛이 길들여지면 내가 그동안 맛있다고 마셔오던 차를 더 이상 마실 수 없게 되고 말 거라는 걸 예상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분이 나누어 준 첫물차를 맛보는 정도였는데도 이미 내 입맛은 다른 차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까이 두고 맛있게 마셔오던 차들이 정도의 차이지만 목 넘김에서 걸리고 속이 메스꺼운 데다 머리까지 아픈 증상도 느껴졌다. 그동안 맛있게 잘 마셨던 차들이 왜 이런 상태를 보이는 걸까?


내가 소장한 차는 수십 편이 아니라 수백 편인데 숙차를 제외하고 생차만으로도 양이 만만찮다. 차는 기호 식품이니 입에 맞지 않으면 손이 가지 않을 건 당연한데 어쩌면 좋을까. 한참 고민하다 답을 찾아냈다. 일단 첫물차를 당분간 마시지 않고 내가 소장한 차 중에 그나마 입에 맞는 고르기로 했다.


한 보름가량 첫물차를 마시지 않으니 다시 그동안 마셨던 내 차를 입이 허락하기 시작했다. 첫물차를 마셨던 시간이 길지 않았던 때문인지 몸이 기억했던 걸 빨리 잊게 된 걸까? 하지만 입에 아주 맞지 않는 차는 어쩔 수 없이 제외시킬 수밖에 없었다. 생차에 대한 변별력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내 입맛이 첫물차를 마시게 되면서 달라지게 된 셈이다.     


보이차 산지 중 최고로 치는 빙도노채, 이 차는 차왕수 첫물차로 가격이 8만 위안, 우리 돈으로 1400만 원에 이른다. 이런 차를 일상에서 마시는 이는 어떤 사람일까?


보이차는 다른 차류에 비해 싸게 마실 수 있다. 357g 한편에 3만 원이라면 한 번에 6g을 쓴다고 보면 500원이면 거의 1리터를 우려낼 수 있다. 유명 산지가 아닌 수령이 어린 첫물차라면 최고급 보이차로 30만 원짜리 차를 쓴다면 5000원, 커피 한 잔 값이면 두 명이 실컷 마실 수 있다. 나를 위해 마시는 차인데 500원이 아니라 5000원을 아까워해서 되겠는가?     


우리나라에 보이차가 첫물차처럼 좋은 차로 접하기가 어려운 게 값을 제대로 치르는 구매자가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부디 커피만큼은 아닐지라도 보이차를 마시는 사람이 늘어나 제 값을 치르고 좋은 차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 건강을 지키는데 첨병이라 할 수 있는 항산화 성분의 대표 주자인 차를 일상생활에서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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