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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Jul 30. 2021

두 번째 이야기, 전망좋은 집에 속으면 안 되는 이유

단독주택을 지으며 간과해서 후회하는 열 가지 - 남향이냐 조망이냐

             

부산에서 바다가 보이는 아파트는 거래가에 프리미엄이 붙는다. 단독주택 용지도 바다가 보이면 그렇지 않은 땅보다 더 높은 시세에 거래되고 있으니 조망권은 곧 돈이라고 할 수 있다. 부산에서 바다에 면한 주거지는 초고층 아파트가 병풍처럼 둘러서 있어서 바다 조망권을 독점하고 있다.      


해운대의 백층이 넘는 아파트, 그렇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이는 해운대 앞바다는 얼마나 환상적인 풍경일까? 바다가 보이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매일 그 풍경에 취하는 일상을 보내며 살고 있을까? 모르긴 해도 바다 풍경을 즐기며 지내는 시간은 몇 달로써 유효기간이 지나고 말 것이다.      


바닷가에 있는 집에 살아본 사람들은 고개를 흔들며 이건 아니라고 할 분이 많을 것이다. 집 안으로 들어오는 염분 섞인 해풍과 해무가 일상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해운대에는 초고층 아파트는 창문을 개방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이런 아파트는 자연 환기가 불가능해서 주방에서 할 수 있는 음식도 한정되는 생활을 해야 한다. 조망을 우선해서 지은 해운대의 초고층 아파트는 바다를 보고 산다는 특권을 누리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아야 되는 셈이다.      


해운대 초고층 아파트에서 보이는 바다 풍경


 눈에 팔려 경관이 좋은 집을 찾는다면     


오감 중에서 가장 민감한 부위는 눈이라고 한다. 오죽하면 몸이 천 냥이라면 눈이 구백 냥이라고 했을까? 외부의 정보 중 70% 정도를 시각으로 받아들인다고 할 정도로 다른 감각에 비해 시각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 결국 눈에 보이는 것에 지나친 점수를 주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는 얘기이다.     

 

시각으로 느끼는 즐거움이 민감한 만큼 금방 식상해져서 눈은 끊임없이 다른 대상을 찾는다. 아무리 경관이 좋은 터를 찾았다고 해도 눈길이 머무는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익숙해지면 평범해지는 이치로 본다면 경관이 좋은 집터를 굳이 비싼 돈을 지불할 필요가 있을지 생각해 볼 일이다.   

시각에 의한 판단으로 집터를 찾고, 
외관에 힘을 주는 디자인으로 집을 짓는 오류를 저지르기 쉽다

   

결국 경관이 좋은 터에 집을 지어서 누리는 시각적인 즐거움은 아주 한시적이라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각에 의한 판단으로 집터를 찾고, 외관에 힘을 주는 디자인으로 집을 짓는 오류를 저지르기 쉽다. 좋은 집이라는 기준을 세우는 데 있어 눈은 오감 중에서 가장 후순위로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호텔이나 펜션 등 숙박시설은 남향 우선이 아니라 조망이 먼저라고 하겠다. 배우자가 아니라 애인을 삼을 사람은 알기 어려운 심성보다 준수한 외모를 살필 게 뻔한 일이다. 애인이 펜션이나 호텔이라면 우리집은 당연히 배우자라고 할 수 있다. 알 수 없는 마음을 잘 살펴 평생 같이 할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처럼 우리집도 속을 꽉 채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필자 설계 경남 양산 심한재, 남향 대지에 강으로 향하는 전망도 열려 있지만 강둑이 가로막아 강은 보이지 않는다

 

  삼대가 적선을 해야 얻을 수 있다는 남향집     


우리 조상님들은 마을이나 집터의 조건에서 배산임수라는 좌향坐向을 우선시했다. 든든하게 뒤와 좌우에 산이 받쳐주고 앞으로는 열려 있어야 좋은 집터라고 했다. 물 좋고 정자 좋은 터는 없다고 하지만 남향집을 지을 수 있는 조건을 우선시했었다.     


동서 향 집은 계절에 관계없이 햇볕이 집 안으로 들이치지만 남향집은 계절을 가려서 들어온다. 햇볕이 필요한 겨울에는 실내로 깊숙하게 들어오지만 여름에는 처마 아래에 그친다. 동향이나 서향집에 살아본 사람들은 여름에 집 안으로 무작정 드는 햇볕이 얼마나 견뎌내는 게 힘든지 잘 알 것이다.     

동서 향 집은 계절에 관계없이 햇볕이 집 안으로 들이치지만
남향집은 계절을 가려서 들어온다


삼대적선의 공덕을 지었는지 모르지만 정남향으로 앉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열대야를 지낸 아침 동쪽에서 비추는 햇볕이 건너편 동향 아파트 발코니 창을 덮고 있는 걸 보면 아찔해진다. 조망은 이미 익숙해져 생활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게 되었는데 동이나 서향 집에서 보내는 여름은 이만저만 고역이 아닐 것이다.


집을 짓는데 남향을 우선하는 건 다른 그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라 할 것이다. 오죽하면 삼대가 적선을 해야 남향집을 얻을 수 있다고 했을까? 남향한 터를 얻었으면서도 눈에 보이는 경관에 팔려 동이나 서로 향하는 집을 짓는다면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또 있을까 싶다.     


필자 설계 경남 밀양 이안당, 마을이 동향으로 경사져 있어 동쪽으로 좌향을 잡고 거실을 앞으로 뽑아내어 남향의 햇볕을 집 안에 들였다


 양명陽明한 집이라야 길택吉宅     


집을 표현하면서 양명하다고 하는 건 집안에 건강한 기운이 가득하다는 얘기이다. 단독주택에서 무작정 햇볕을 집안으로 들이면 陽의 기운이 너무 과하게 된다. 그래서 한옥은 처마를 길게 내어 집 안으로 들이는 햇볕이 조절되도록 했다.     


한옥은 백토를 깐 마당에 햇볕이 내리면 반사된 고운 빛이 집안으로 들어 양명한 기운이 가득 차게 된다. 겨울에 아무리 햇볕이 좋다고 해도 직사광선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마당에 반사시켜 창호지를 거쳐 처마 아래에 골고루 들도록 했다. 부드러운 빛이 집 안을 은은하게 밝히니 얼마나 안락한 공간 분위기인지 상상해 보자.    

남향 햇살을 외면하고 지은 집은 양명한 기운을 가지지 못하니
아파트보다 못하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볕을 조절해서 집 안에 들여야 양명한 분위기가 가득한 길택이라 하지 않겠는가?. 햇볕을 잘 받아들이려면 남향으로 열리도록 하고 개구부 배치를 잘해서 빛을 조절하면 좋겠다. 남향에서 드는 햇볕은 집의 기운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을 앉히면서 경관을 보느냐 남향을 받아들이느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하겠다. 경관을 보고 짓는 집은 오래가지 않아 눈에서 멀어지고 만다. 남향 햇볕을 외면한 집은 양명한 기운을 가지지 못하니 아파트보다 못하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경주 양동마을 무첨당

내면을 살피지 않고 인물만 보고 선택한 배우자처럼, 경관에 팔리고 외관에 치중한 집에서 사는 게 맘에 찰리 없을 것이다. 여생을 단독주택에서 보내려고 지었건만 편치 않는 집이 되어 있다면 이를 어쩌랴. 사람도, 집도 눈길이 가는데 팔리기보다 속을 잘 살펴야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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