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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Aug 02. 2021

세 번째 이야기, 집은 외장재가 수명 좌우하는데

단독주택을 지으며 간과해서 후회하는 열 가지 - 집의 수명과 외장재료

집을 찾아가서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이 방송국마다 인기를 끌고 있다. 집을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프로그램 내용이 좋은 집을 지어서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단조로운 아파트 생활에서 벗어나 땅을 밟으며 살고 싶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시청률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집을 설계하는 건축사의 입장에서 보면 다분히 흥미거리로 제작방향이 잡히지 않는가 염려되는 부분이 없지 않다. TV 프로그램이다 보니 PD나 작가의 눈높이에 한정되고 시청률을 의식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단독주택은 이벤트성의 재미보다 일상적인 생활을 담아낸다면 흥미를 끌 수 없으니 시청률이 제대로 나오겠는가?     


 단독주택은 집 짓기는 힘들지만 그 집에서 살게 되면 행복한 일상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단독주택에 살아보니 집을 관리하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고 입을 모은다. 그중에서 외장 재료의 선택이 잘못되어 일어나는 문제는 극복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TV 화면에 나오는 집에 그런 문제가 있어보이는데도 그냥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만 하니 전문가 입장으로 보면 머리를 젓지 않을 수 없다.   


예쁘면 다 용서된다는데 '우리집'도 그럴까?     


대학시절 건축 재료 과목에서 집의 외장재는 빗물을 흡수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가장 중요하다고 배웠다. 단독주택을 짓고 살다 보면 집 관리에서 비와 관련되어 생기는 문제가 많다. 그런데도 요즘 지어지는 집을 보면 빗물을 의식하지 않고 시멘트 벽돌이나 목재, 노출 콘크리트 등 흡수율이 높은 재료를 예사로 쓰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비에 대한 흡수율이 높은 재료를 쓰면서도 처마 없는 경사지붕으로  외관 위주의 디자인을 강조하는 집을 보면 안타깝다. 한술 더 떠 페인트나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으로 벽과 경사지붕을 이어서 지어진 집을 보면 건축주의 입장을 생각했는지 알 수 없다. 바다가 가까운 곳에는 염분 섞인 해풍을 감안해서 철재 사용은 자제해야 한다. 건축상을 받았던 집인데 준공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철망에 붉은 녹이 흘러내리고 있는 걸 보았다.

비에 대한 흡수율이 높은 재료를 쓰면서도
처마 없는 경사지붕으로 된 외관 위주의 디자인을 강조하는 집을 보면 안타깝다


노출콘크리트, 시멘트 벽돌, 목재, 철재 등 빗물에 쉽게 오염되거나 부식되는 재료이다. 이런 외장재를 써서 특이한 디자인을 뽐내는 집이 주로 작품이라며 상을 받거나 미디어에 소개되는 경우가 많다. 건축상을 받거나 미디어로 소개되는 영광이 건축주가 받아야 할 고충을 상쇄할 수 있을까?

     

설계자는 집이 지어지고 난 직후에 멋들어진 디자인을 사진으로 남기면 그만일지 모른다. 하지만 건축주는 그 집에서 살면서 지어진 그대로 관리의 부담 없이 유지되길 바랄 것이다. 설계자가 자신의 집을 짓는다면 과연 유지관리가 어려운 외장재를 선택할지 물어보고 싶다.     

 

 천년을 바라보는 목조 한옥     


 봉정사 극락전은 1363년에, 부석사 무량수전은 1376년에 지어졌다고 하니 700년 가까이 당당하게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양동마을의 서백당은 1484년에 건립되었으니 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경주 손 씨의 종가로서 숱한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목조로 지은 집이 어떻게 오백 년을 넘어 천년을 바라보며 당당하게 지금도 집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일까?     


 한옥은 목재를 골조로 하며 흙으로 친 벽으로 외벽마감을 삼은 집이 아닌가? 외장재 중에 가장 취약한 나무와 흙으로 집을 지었는데 어떻게 백 년을 넘어 오백 년이 지나고 천년을 바라보는 수명을 유지할 수 있을까? 오십 년만 지나도 안전진단을 받아야 한다며 불안해하는 이 시대의 집을 보면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목조로 지은 집이 어떻게 오백 년을 넘어 천년을 바라보며
당당하게 지금도 집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일까?

 

 목재나 흙벽에 비가 바로 닿았다면 오백 년이 아니라 백 년을 이겨내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수백 년을 지난 집이 지금도 법당으로, 주택으로 제 기능을 다하고 있는 것은 기단을 높여 집을 앉히고 길게 뽑아낸 처마를 둔 덕분이다. 장마철의 습도를 이겨낼 수 있도록 대비한 조상님의 집짓기 지혜가 천년가千年家를 장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그 시대의 재료로 집을 지으면서 목재나 흙벽이 가진 단점을 기단과 처마를 두어 극복했다. 풍우에 가장 취약한 재료로 집을 지었지만 오히려 수백 년을 버텨낼 수 있는 지혜를 담아내었다. 한옥은 화재에 대비하는 노력 이외에는 특별한 유지 관리가 필요 없었으니 보면 볼수록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통도사 자장암의 처마


 처마 없는 집의 외장재     


만약에 긴 장맛비가 그치지 않는 여름 한철을 보내야 한다면 집의 외벽은 물에 젖은 채로 있게 된다. 빗물에 대한 흡수성이 낮은 외장재를 썼다면 무슨 걱정이 있으랴마는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외벽이 물을 머금은 채로 여름을 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목재라면 이끼와 곰팡이가 생기게 될 것이며, 시멘트 벽돌은 백화가 진행되고 노출 콘크리트에는 이끼가 붙을 건 뻔한 일이다. 또 방청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철재는 붉은 녹이 흘러나오게 되는 걸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비가 많이 오지 않는 여름이라 하더라도 햇볕이 들지 않는 북쪽 벽은 마르지 않고 젖어있는 상태가 지속된다.

    백화가 일어난 시멘트 벽돌, 썩어가는 목재,오염된 노출콘크리트,
녹슨 철재의 외장재라면 상을 줄 수 있을까?

한두 해는 그냥 넘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십 년 안에 손보지 않고 넘어가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썩어 들어가는 목재, 이끼가 끼어 시커멓게 변한 노출 콘크리트나 시멘트 벽돌, 붉은 녹이 흘러내리는 철재는 방치하게 되면 보수가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 단독주택에 살기 위해서는 자질구레한 보수 작업은 손수 해버릇해야 하지만 외벽 전체가 문제라면 다른 이야기가 된다.


설계자는 집이 완공된 직후에 멋들어지게 사진을 찍어 작품이라며 뽐낸다. 또 이런 저런 경연에 출품해서 수상하는 영광을 얻기도 한다. 만약에 건축상의 출품 요건에 준공 후 오년이나 십년이라는 단서를 달면 어떨까 싶다. 백화가 일어난 시멘트 벽돌, 썩어가는 목재, 오염된 노출콘크리트, 녹슨 철재라면 상을 줄 수 있을까?


목재로 마감된 외장, 북쪽이라 비를 이기지 못해 검게 변하고 있다.


 목조로 지어도 오백 년인데 철근콘크리트 골조가 오십 년이라니     


 단독주택을 지어서 살려고 하는 건 여생을 그 집에서 보내기 위함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장재에서 계속 문제가 생긴다면 그 집에서 지내기가 얼마나 힘들겠는가? 아파트는 관리주체가 따로 있어서 각 세대는 외부에는 신경 쓸 필요가 없지만 단독주택은 집주인 집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외장재가 페인트칠이든지 목재든지 어떤 재료라고 해도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되는 집이 있다. 한옥처럼 처마를 길게 뽑아내어 지은 집은 십 년이 지나든 이십 년이 되어도 외장재의 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골조가 마감재로 드러나는 노출 콘크리트나 목조인 경우 처마의 유무는 집의 수명에 바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백 년을 살아도 괜찮은 집이라는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는 외장재의 선택이 가장 중요하다. 살아가면서 집의 내부 마감을 바꾸는 건 옷을 갈아입듯이 쉽게 할 수 있지만 외장재는 그렇지 않다. 살아갈수록 정감이 가는 집에서 살고 싶다면 주기적으로 바뀌는 패션 감각으로 지어서는 안 된다.


백 년을 살아도 괜찮은 집이라는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는 외장재의 선택이 가장 중요하다


 

필자 설계 부산 이입재 (설계 도반건축사사무소) - 경사지붕으로 처마가 길게 빠져 나와 있어서 외장재와 창호가 비를 맞지 않으니 가히 백년가라고 할 수 있다.

    


 단독주택을 지을 계획으로 어떤 집이 좋은지 살피고 있다면 짓고 나서 바로 찍은 사진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사소하다며 쉽게 선택한 외장재가 백년가百年家의 여부를 결정한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외장재 선택을 잘못한 이유 하나로 입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시작한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집도, 사람도 예쁘다는 것만으로 평생을 함께 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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