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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Apr 19. 2024

단독주택을 지으며 아이디어를 챙겨가는 건축주

단독주택은 아파트와 다른 집이라야 되는데

작업 대가를 지불하고 의뢰했던 계획안을 받아갔던 건축주는 결국 연락이 없다. 아마도 계약했던 건축사와 우리 계획안으로 설계를 계속 진행하고 있는가 보다. 계획안을 전달하면서 건축주의 설계지침을 그대로 도면으로 옮겼을 뿐이라고 얘기를 했었다.     


그 말은 이 계획안에는 나의 건축 의도가 들어가 있지 않다는 것이다. 건축주가 제시한 지침은 아파트 평면과 다름없는 집이 될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한 층에 들어갈 실들을 두 개층으로 나누어서 충실하게 구성했을 뿐이다.     


첫 상담에서 나누었던 얘기     


어느 대지이든 불리한 조건이 있기 마련이다. 이 대지는 남향으로 도로에 면해 있지만 건너편에 5층 연립주택이 있어 겨울에는 햇볕이 들지 않는다. 단독주택에 살면서 겨울 햇볕이 들지 않으면 안락한 주거 여건을 보장받을 수 없다.     


이러한 여건을 타개할 수 있는 묘책을 그날 얘기하면 안 되는 데 우를 범하고 말았다. 그동안 우리 사무소를 방문했던 건축주들에게도 늘 그렇게 해 온 게 사실이다. 이 대지는 겨울에 집으로 햇볕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만 얘기하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라고만 했어야 현명한 대처였을 것이다.    

 

겨울에 그늘지는 땅인데 어떤 재주가 있어 햇볕이 집안을 가득 채울 수 있단 말인가? 사실 이 팁이야 말로 건축주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고 두 번째 만남에서 얘기했었다. 그런데 그런 묘책을 내놓을 수 있는 건축사라면 믿음이 갈 테니 계약을 하는 게 옳지 않았을까?      


건축주라면 당연히 그런 판단을 할 것이라고 믿고 속없이 얘길 했었다. 그런데 건축주는 정보만 챙겨가고 계약은 아마도 설계비를 싸게 부른 건축사와 했던 것 같다. 사실 그 묘책이 큰 그림에서 보면 아주 중요하지만 세세하게 챙겨야 하는 게 얼마나 많은지 모르니 안타까운 일이다.       


전달된 계획안을 평가해 보면     


첫 상담 때 내가 건축주에게 제시했던 묘책은 거실을 3층에 두자는 것이었다. 동지 기준으로 일사각을 검토해 보니 3층에 거실을 두니 햇볕이 충분히 들어올 수 있었다. 그래서 낮에 쓰는 거실과 주방을 3층에 두고, 침실은 밤에 쓰는 공간이니 2층에 두어도 집을 쓰는데 지장이 없다.     

    

2층에는 방이 세 개 들어가는데 방은 전면도로와 서쪽의 막다른 도로에 면하도록 배치했다. 인접대지 쪽으로는 계단실과 욕실을 두어 옆집과 프라이버시에 대해 시비가 없도록 했다. 현관은 일층에 있어 실내에는 신발을 벗고 다니게 된다.       


좌-3층 평면도, 우 2층 평면도

다락은 거실 상부에 두었는데 거실 면적의 절반 가까이 쓸 수 있겠다. 다락은 수납 및 서재 등 다목적실로 사용할 수 있으니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공간이 된다. 다락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출입을 할 수 있다.     


이 정도 평면이면 여느 아파트와 비교해서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공용공간과 사적 공간이 구분되어 손님이 밤늦은 시간까지 머물러도 부담이 없겠다. 음악 감상이나 대형스크린으로 박진감 넘치는 음향으로 영화를 볼 수도 있겠다. 이런 점으로 봐도 아파트와 차별되는 주거생활을 누릴 수 있다.  

   

그렇지만 단독주택으로는 부족한 안     


건축주에게 전달한 이 계획안은 건축주의 지침을 적용했다고 앞서 언급했다. 이 안에는 건축사로서 제시할 나의 의지는 들어 있지 않다는 말이다. 어떤 조건이라고 할지라도 단독주택은 아파트와 완전히 차별되어야 한다는 게 나의 단독주택 작업 의지이다.     


박스 안에 갇혀 사는 집이 아파트인데 이 계획안도 마찬가지라 볼 수 있다. 외부 공간이 없는 단독주택에서 지내는 생활은 갑갑하기 그지없다. 작은 마당이라도 가질 수 있어야만 안팎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주거 일상을 만들 수 있다.     


필자 설계 울산 다가구주택 원명재의 4층에 있는 단독주택 마당
필자 설계-부산 에코델타시티 상가주택 이안정 3층 단독주택에 있는 마당


실내 공간이 아무리 넓다고 해도 결국 내부 공간일 뿐이다. 거실과 식탁이 마당과 이어지는 집을 떠올려야 우리 식구가 살고픈 단독주택이라 할 수 있다.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을 제안할 수 있는데 건축주는 설계비를 아낀 대가가 얼마나 아쉬운 지 모르고 집을 짓고 말겠다.  

   

그 밖에도 내부 공간에서도 소소한 부분까지 여러 가지 대안을 검토하며 결정을 해야 한다. 안마다 장단점이 있으니 대안을 놓고 더 좋은 결론을 찾아야 한다. 공사비와 지가를 포함한 집을 짓는 비용에서 설계비가 차지하는 비용은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런데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다는 걸 알면서도 다시 시작하지 않는 게 참 안타깝다.          




아전인수 격인 글로 읽힐 수 있지만 설계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집 짓기는 그대로 실패가 되고 만다.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짓는 집을 설계비를 아끼는 걸로 시작하니 그야말로 사상누각을 짓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부디 이 계획안을 잘 다듬어서 건축주의 가족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집을 지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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