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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May 19. 2024

부처님오신날, 빈자일등

2024년 부처님오신날에 부쳐

불교경전 현우경에 빈자일등이라는 얘기가 있다. 부처님 생신을 축하하는 수많은 등이 밝혀져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불어온 센 바람에 등불이 다 꺼지고 말았다. 그런데 오직 허름하고 작은 등불 하나만 꺼지지 않고 바람이 거셀수록 더 밝게 타오르고 있었다.


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 어떤 연유로 저 등만 꺼지지 않고 밝게 타오르는 것이옵니까?"

"비록 하찮아 보이는 작은 등이지만 이 등을 켠 여인의 지극한 정성이 깃들어 있기에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그 꺼지지 않은 등은 가난한 노파가 켠 등이었다. 노파는 너무 가난해서 등불을 켤 기름을 살 돈이 없었다. 그래서 그 노파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기름을 사서 등불이 켰던 것이다. 왕이 켠 크게 호화로운 등도, 권력과 재물을 가진 고관대작이 밝힌 등도 노파가 정성을 다해 올린 등불보다 못하다는 가르침이다.


양산 통도사 자장암


올해 부처님오신날에도 절을 찾아 등을 달았다. 요즘은 종이 등이 아니고 비닐로 만든 등에다 초를 켜지 않고 전기로 불을 밝힌다. 비가 와도 불이 꺼질 일이 없고 바람이 불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비바람에 등불이 꺼져 정성 타령을 할 필요가 없다.


부처님오신날에 등불을 켜는 건 중생의 어리석음을 어둠이라 보고 불을 밝혀 제대로 살피라는 의미와 부처님이 어둠을 밝히는 광명과 같은 분이 오심을 축하하는 뜻도 있다. 어두운 밤길을 등불도 없이 가는데 멀리서 등을 들고 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 사람은 장님이라 등불이 필요하지 않을 터라 왜 등불을 들고 다니느냐고 물었다.


"나는 등불이 필요치 않지요. 그렇지만 어두운 밤길을 등불 없이 다니는 사람이 나와 부딪힐까 염려되어 그러는 것이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無明무명이라고 한다. 세상이 어두운 게 아니라 탐욕과 분노에 가득찬 사람들은 눈이 어두워 제대로 앞을 보지 못하는 걸 경계한 가르침이다. 어둔 방에 바늘이 떨어져 있다면 찾지 않고는 잠을 잘 수 없을 것이다.


 어두운 방에서 바늘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서 손을 바닥에 대고 온 방을 헤매고 다닌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이 불을 밝히니 금방 바늘을 찾을 수 있었다.


양산 통도사 극락암


부처님오신날에 불을 밝히는 의미는 무명을 밝히러 오신 광명과 같은 존재인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함일 것이다. 생각을 더해 보면 눈을 감고 살듯이 제대로 보지 못하는 어두운 내 마음을 밝히라는 의미도 있을지 않을까 싶다. 장님이 들고 다니는 등불은 어둠 속에서 분간하지 못하고 살아 내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걸 가르쳐 준다.


해가 갈수록 부처님오신날 절에 켜지는 등이 주는 것 같다. 요즘은 밤이 되면 낮보다 더 화려한 세상이 되니 어둠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서 그럴까? 스마트폰만 있으면 모를 게 없으니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지 못하고 살아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일까?


영취산이 보이는 연밭


지난 생에 덕을 짓지 않아 가난한 삶을 살고 있다고 여기는 노파가 밝힌 등불, 이 세상이 갈수록 흉흉해지고 있는 건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지 못해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부처님오신날에 등 하나 밝히며 나의 어리석음을 살피고 세상의 어둠 속에서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길을 찾을 수 있기를 축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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