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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Jul 04. 2024

또 다른 단독주택인데 당호는 심한재-설계 시작

통도사가 있는 영축산 자락에 짓는 단독주택 지산심한


계약서를 작성한 지산마을의 한 카페


2017년에 양산시 원동면에 심한재라는 당호로 단독주택 설계를 시작해서 2019년에 준공을 했다. 단독주택을 스무 채가 넘게 작업을 하면서 목조로 지어내기는 심한재가 처음이었다. 철근콘크리트조로 짓는 집은 설계를 아무리 잘했어도 시공 중에 여러 가지 사정으로 변경되기 일쑤였다.


일본의 삼나무 중목조는 프리컷으로 제작되어 오기에 현장에서 바뀌어질 수가 없다. 건축주의 마음이 바뀌어도, 현장인부의 거친 손에도 변경될 수 없으니 설계대로 지어질 수 있었다. 보통 집을 지으면서 건축주가 겪어야 하는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으면 죽어 저승을 가서 집 세 채만 지었다고 하면 무조건 천당행이라고 할까?


설계자는 물론 건축주도 지어낸 결과에 만족할 수 있었던 심한재,


시공자는 복잡한 설계도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지만 집들이의 융숭한 음식상을 받고 웃을 수 있었다. 중목조로 한번 작업을 해보니 또 작업을 하고 싶어 설계의뢰가 들어오길 기대했었는데 계약을 하게 되었다.


통도사가 있는 영취산이 바라다보이는 지산마을의 카페에서 건축주께서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1994년에 단독주택-관해헌을 처음 설계하게 되면서 일 년에 한 채 이상 작업을 하게 되었다. 계약서를 뒤져보니 2003년에 작업했었던 남천동 만당滿堂 설계비를 20 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 액수로 받고 있다. ㅎ


 내가 제시한 설계비를 조정 없이 흔쾌히 받아들여준 건축주 부부께 맘에 꽉 차는 집으로 화답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설계비는 작업에 필요한 시간의 대가이기에 여유 있는 설계기간을 필요로 한다는데 동의를 해 준 것이다. 단독주택 서른 평을 설계하는데 무슨 시간이 삼 개월이나 필요하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단독주택을 거의 쉰 채 이상 설계를 했지만 최근 작업한 심한재는 51 평이었고 대부분 4-50 평 가까이 되었다. 이번 지산리 단독주택은 서른 평 이하로 작업해야 하는데 이 면적에도 불구하고 손색이 없는 집이 되어야 한다. 150 평의 대지에 30 평으로 짓는 단독주택은 나에게는 새롭게 도전하는 '미션임파스블'이 될 것이다.  


이제 대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대지로 들어가는 진입부, 동쪽이며 遠景이 열리는 쪽이 된다. 저 경사진 땅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대지의 배후가 되는 원경의 산이 통도사가 있는 영축산, 靈山의 정기가 우리 대지에도 미치길 기대하게 한다.
대지를 조성한 석축이 드러나는 북쪽, 도로에 면해 있으며 냇물 넘어 지산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있다.
대지의 북쪽과 서쪽, 도로에 면해 있으며 집터의 안정을 위해 담장을 설치해야 할 것 같다.
대지를 감아도는 북서쪽에 면한 막다른 도로의 끝, 우리 집으로 들어올 수 있는 레벨을 가진다.
대지의 남쪽면, 인접대지에 면하며 양명한 햇볕을 받을 수 있는 쪽이다.
집터를 조성해 집을 지었지만 사람이 살았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살아보지도 않고 허물어야 하는 이 집을 왜 지었을까? 영축산이 내려다보며 꾸짖는 듯하다 


대지는 석축으로 성토해서 조성한 인공지반의 땅이다. 동으로 원경이 펼쳐지며, 북쪽에서 서쪽으로 막다른 도로에 석축을 쌓아 5미터가량 높이 대지가 조성되어 있다. 남쪽에 인접해서 대지가 있는데 추후 집이 지어지면 땅을 돋우어서 우리 집터보다 높은 레벨이 될 것이다.


 집이 지어졌다고 가정하면 대지의 여건이 사방으로 노출되어 불안정한 상태이므로 눈높이정도 담장을 둘러야 한다. 특히 영축산을 배후로 하는 서측은 안정적인 공간을 위해 막아야 하지만 산의 능선을 바라보기 위해 열기도 해야 한다. 집 밖에서 보면 안이 노출되지 않아야 하고 집 안에서는 밖의 경관을 들일 수 있어야 하는 집터이다.


집 밖에서는 건너편 도로, 서측의 도로, 남측의 인접대지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막아야 하고, 집 안에서는 동쪽으로 열린 원경을 관망할 수 있도록 해야 할 뿐 아니라 대지의 뒷면이 되는 서향의 영축산 정상도 바라볼 수 있어야 하니 생각이 깊어진다. 밖에서는 시선을 막아 집의 안정을 확보하고 집 안에서는 밖으로 열리는 모순 같은 묘수를 풀어야 하는 숙제가 있다.

 

통도사 산문, 이 길로 영축산으로 들어간다


건축물을 설계하면서 설계자에게 대지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캔버스와 같다.

어떤 집을 설계해야 하는지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내기 위해서는 대지를 제대로 읽어내야 한다.

물 좋고 정자 좋은 땅은 찾기 어려우니 땅이 가진 장점은 극대화시키고 단점이 있다면 보완해서 승화시켜야 할 것이다.


건축주께서는 집의 당호를 미리 지었는데 내가 앞서 설계한 양산 원동 주택  당호와 같은 심한재心閑齋였다.

心閑齋, 마음을 한가로이 쉴 수 있는 집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 대지는 안으로 잠긴 땅이 아니라 밖으로 나 있는 조건인데 마음을 늘 한가롭게 유지할 수 있도록 풀어내어야 한다.


대지가 말해주는 얘기를 듣기 위해 시간을 넉넉하게 가지고 다시 다녀와야겠다. 원동 심한재와 헷갈릴 수 있어서 지산심한으로 표기하기로 한다.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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