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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Oct 19. 2021

우리집은 안녕하신지요?

행복한 삶을 위한 집 이야기 1 - 歸家라는 말을 생각해보면서

  집이라고 하면 그냥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그리움, 포근함, 돌아가야 하는 곳, 편히 쉴 곳으로 우리가 '집에 간다'라고 할 때 그 집은 물질적인 건물인 house가 아니라 정서적인 집인 home이다. 아침에 집을 나서서 일터나 학교가 파하고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서둘러 돌아오고 싶은 그 집이다.   

  

 내가 어릴 적에는 저녁이 되면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밥 짓는 냄새가 온 동네에 가득했었다. 밥때가 되어 아이들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오면 재미있게 놀다가도 각자 집으로 달려갔다.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에게 집이 주는 이미지는 고향이고 엄마로 각인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입대를 해서 논산훈련소 시절, 야외 교장에서 훈련을 받고 내무반을 향해 구보를 하다 보면 어둑한 길가에서 바라다 보이는 집집마다 밥 짓는 연기가 굴뚝에 피어올랐다. 불 켜진 창문으로 새어 나오는 백열등 불빛을 바라보노라면 얼마나 집 생각이 간절했었던지 모른다. 우리집은 엄한 아버지에 잔정이 많지 않은 어머니라 그렇게 따뜻한 가정이 아니었었는데도 집은 곧 그리움이었다.     

집은 그리움, 포근함, 돌아가야 하는 곳, 편히 쉴 곳인데


 저녁이 되면 안방에서 낮은 촉수의 백열등 아래 밥상을 펴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연속극을 들으며 밥을 먹었지요. 엄하신 아버지의 훈계는 밥때마다 이어졌다. 돌아보면 그 이야기가 세상을 살아가는 지침이 되었고 아버지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나에게 집은 정겨운 그리움의 대상은 아닐지 몰라도 내 세계가 만들어졌었던 보금자리였음이 틀림없다.    

 

 아버지가 아무리 엄했어도, 어머니의 품이 따스하지 않았었을 지라도 우리집은 밥을 같이 먹는 곳, 식구들을 기다리는 곳, 돌아가야 하는 곳이었다. 6인치 블록으로 벽을 만들고 슬레이트로 지붕을 이어서 지었기에 외풍이 심해 겨울이면 방안에도 얼음이 어는 허술한 집이었을망정 해가 지면 찾아들었던 '깃'이었다. 하긴 그 시절에는 해가 지면 갈 곳이 집이 아니면 따로 없었긴 했었겠지만.     



 누구에게나 생활의 중심은 집이 되어야 할 텐데 이 시대에는 어떨까? 귀가 시간은 따로 정해놓지 않아도 저녁밥 먹기 전이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집에서 나를 기다려 함께 밥을 먹을 식구가 있어서 서둘러 돌아가는 사람은 분명 그 생활의 중심은 집이라고 보면 되겠다.   

  

 저녁밥을 식탁에 마주 앉아 함께 먹으며 지난 하루를 돌아보며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는 광경을 떠올려 본다. 이 시대에는 그런 집이 몇 집이나 되냐며 드라마에서나 보는 일이라고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해가 지면 가족 모두 모여서 저녁 시간을 보내는 곳이 집이라는 게 당연해야 하는데 그런 집이 얼마나 될까?   

해가 지면 가족 모두 모여서 저녁 시간을 보내는 곳이 집이라는 게 당연해야 하는데 그런 집이 얼마나 될까?   

   

 하루 중 한 끼라도 식구가 한 자리에서 밥을 먹는 집이 흔하지 않다고 한다. 거실이 있지만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하루를 돌아보는 대화를 나누는 집도 드물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한 집에 살기는 하지만 함께 밥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려면 미리 약속을 해야 할 지경이니 이를 어떡해야 할까?     


 집을 나서는 시간도, 귀가하는 시간도 가족 구성원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주말이나 휴일마저도 각자 일정을 잡아서 움직이니 식구가 한 자리에 앉기가 쉽지 않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아니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따로 날을 잡지 않으면 밥 한번 같이 먹기가 쉽지 않은 게 요즘 세태라고 한다.    

 

 우리집도 그렇다고 하면 가족 모두가 잠을 자기 위해 방만 쓰고는 밖으로 나돈다고 봐야 한다. 수백, 수천 가구가 모여 사는 아파트 단지의 밤 아홉 시나 열 시경 아파트를 돌아보자. 그 시간에도 의외로 식구 중에 아직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는지 불이 꺼진 집이 많다.     


 식구 중에 귀가 시간이 늦어지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늦은 시간까지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집을 보면 보는 내가 서글퍼진다. 그 집은 사람을 들이지 않고 내쫓는 것일까? 한 집, 두 집... 몇몇 집이 아니라 너무 많은 집이 불이 켜져 있지 않으니 '우리집'이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늦은 시간까지 불이 켜지지 않는 집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혹시 우리집도 그중에 하나가 아닌지?  밤 아홉 시가 넘어도 불이 켜지지 않는 집에 살고 있는 분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우리집은 안녕하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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