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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Oct 21. 2021

가을비를 바라보며

찬 비는 그리움을 부르고

시월이면 가을 분위기에 젖어야 하는데 갑자기 찾아온 추위에 옷깃을 여민다.

가을 옷을 챙기기도 전에 장롱 깊숙이 넣어둔 두꺼운 옷을 찾아 입었다.

봄도 그렇지만 가을이라는 계절은 이제 계절에서 빼야 할 듯싶다.


승학산 자락에 있는 우리 집은 밤이면 산에 사는 생명의 소리가 창을 넘어 들려온다.

가을이면 달라지는 풀벌레 소리에 계절의 변화를 실감한다.

그런데 이른 추위에 벌레들도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오늘은 가을비가 내린다.

단풍이 들기도 전에 말라 떨어지는 잎새를 보니 애가 쓰인다.

이 비가 남아있는 이파리에는 가을색을 입혀주었으면 좋겠다.


혼자 몸도 귀찮은 여름에도 오랜 습관으로 차를 마셨다.

가을이라 바람에 찬 기운이 돌면 기다리던 벗이 찾아온 듯 차에서 반가운 향미가 돈다.

늘 마시던 차가 달라진 건 아닐 테니 가을이 나를 그렇게 바꾸어 놓는다.


찬바람이 불면 보고 싶은 사람이 떠오른다.

그와 둘이 앉아서 차 한 잔을 놓고 무슨 얘기든 오래도록 얘기하고 싶다.

무슨 주제를 놓고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사람이 그리워서 그리하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마주 앉아만 있어도 좋은 그런 사람이 그리운 것일 테다.

그리운 사람과 차 한 잔 하며 아무런 얘기라도 나누고 싶은 계절이 가을이니까.

이 글을 쓰면서 그런 사람을 떠 올린다.


죽마고우, 언제부턴가 그 친구는 어릴 적 추억 속으로 숨어버렸다.

철이 들어 의형제까지 맺었던 친구, 이제 그는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눌 그런 상대로는 멀어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그가 그리운 건 지난날의 기억 속 그가 내 앞에 앉아주길 간절히 바라기 고 있는 것일까?


떠올리려고 애를 써야 할, 생각을 해봐야 한다는 건 없는 것이나 다름없을 터.

그냥 가을비가 내리는 오후에 차 한 잔 놓고 누군지 모를 그리운 사람을 기다린다.

누구라도 그리워할 수 있는 가을이니까.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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