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기억이 없는 내 어둑한 방에도 불이 들어오길
대문사진출처-픽사베이
유난히 흰 깃털을 가진 새를 볼 때, 스위치를 켠 것같이 심장 속 어둑한 방에 불이 들어올 때가 있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 후에 처음 쓴 에세이 ‘깃털’의 마지막 문단이다. 작가의 외할머니는 흰 새의 깃털 같은 머리칼을 가진 분이었다고 한다. 할머니의 흰 머리칼은 흰 새의 깃털을 보면 흰 머리칼을 한 할머니가 떠올랐던 모양이다. 그 기억은 작가를 어두운 방 같은 현실에 맞닥뜨릴 때 구원의 빛이 되었나 보다.
나이를 제법 먹었지만 나잇값을 못하고 산다는 자책감이 점점 깊어진다. 나이만 먹었지 무얼 이루었는지 회한과 함께 죄책감마저 든다. 어둑한 방에 갇혀 있는 상태처럼 온종일 갑갑한 마음이 풀어지지 않는다.
나에게 유난히 흰 깃털을 가진 새가 나타나서 내가 갇혀 있는 방에도 불을 밝혀주었으면 좋겠다. 경기를 탓하며 지금의 힘든 현실에 위안을 삼아 보지만 이 상황을 벗어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에게 유난히 흰 깃털을 가진 새가 언제쯤 나타날까?
누구에게나 애쓰는 대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있고, 목표가 장대해서 이루는 게 쉽지 않은 일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열심히 사는 이유는 행복해지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얻고 싶은 행복을 구체적으로 얘기해 보라고 하면 대부분 얼버무리기 일쑤다. 개인의 성취로 보면 재물이나 명예가 될 수 있겠지만 행복과는 무관하다.
그렇지만 대부분 열심히 추구하는 건 재물과 명예일 텐데 행복이라는 목표가 되기는 어렵다. 한강 작가는 흰 새의 깃털 같은 머리칼을 가졌던 할머니를 떠올리면 스위치를 켠 것같이 심장 속 어둑한 방에 불이 들어오는 것 같다고 한다. 분명 그 순간은 진한 행복감이 짜릿하게 와닿았을 것이다. 그리워할 만한 기억을 가진 사람은 힘들 때면 지난 시간을 떠올려서 잠깐 행복감에 젖을 수 있다.
아름답게 다가오는 지난 시절의 기억은 대부분 어릴 때가 아닐까 싶다. 그 기억 속의 대상은 분명 할머니이거나 드물게 할아버지가 될 것이다. 물론 자상한 엄마라면 그 기억의 등장인물일 수 있겠다. 하지만 아이일 때 엄마는 아직 사랑을 나눌 여유가 없는 철부지 어른일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내 기억 속 우리 할머니는 어렴풋해서 내 어두운 방을 밝혀주시기는 어렵겠다. 엄마하고 불러본 기억이 없는 내 어머니는 잔정이 없던 분이라 더 그렇다. 돌아볼 지난 시절이 없는 사람은 사는 게 어둑해지면 밝은 곳으로 스스로 걸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할머니와 함께 살 수 없는 요즘 아이들은 갈수록 어두워지는 세상을 어떻게 이겨내며 살아야 할까?
이혼율과 자살률, 출생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지금 젊은이들은 어두운 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어두운 방에서 나오려면 문을 찾아야 하는데 누가 불을 밝혀줄 수 있을까? 흰 머리칼을 한 할머니를 떠올릴 수 있어야 어두운 내 심장에 불이 들어와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