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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Aug 09. 2021

다섯 번째 이야기, 넓은 잔디 마당이 짐이 되는 집

단독주택을 지으며 간과해서 후회하는 열 가지-넓은 잔디마당이 꿈이라고요?

단독주택에서 살고 싶아보고 싶은 이유로 넓은 잔디마당을 꼽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green green grass of home’이라는 노래는 녹색 잔디 깔린 고향집을 그리워한다는 내용이니 단독주택을 지어서 살고 싶다는 사람은 녹색의 잔디에 환상을 가지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그런지 단독주택을 보면 건물은 한쪽에 배치하고 잔디가 깔린 넓직한 마당을 두는 경우가 많다.     


단독주택을 지으면서 넓은 잔디 마당을 두어 ‘green green grass of home’의 꿈을 실현하게 되면 정말 노래 가사가 주는 느낌처럼 행복할까? 그렇지만 실제로 집에 넓은 잔디마당을 두면 마당도 정원도 즐길 수 있기보다 일거리가 되고 만다는 얘기를 해 볼까 한다.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 살다 보니 평면 설계는 내부에서 주거생활이 불편함이 없도록 만들어서 외부공간은 관상용이 되기 십상이다.   

  

잔디가 깔린 마당을 보기에 좋은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고된 노동이 필요한지는 입주해서 살아보면 알게 된다. 잔디를 깎는 정도야 기계의 도움을 받으면 별 어려움이 아니지만 잡초를 뽑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뒤늦게 알게 된다. 넓은 잔디밭은 골프연습장으로 쓰는 이외에 왜 필요할까?   

   

경주 양동마을 관가정 사랑채, 오른쪽은 사랑마당이고 왼쪽이 정지에 면해 있다. 안채 대청에 면해 안마당이 있고 사랑마당 끝에 사당 마당이 있다

 한중일 세 나라 전통가옥 외부공간의 차이     


우리나라의 집은 건물뿐만 아니라 마당도 꼭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집의 외부공간을 마당이라고 쓰고 고유한 공간적 역할을 가지는 건 우리나라 주거공간의 특징이다. 마당과 정원은 그 쓰임새가 다른데 한중일韓中日 세 나라의 외부공간을 비교해 그 차이를 살펴보자.  

   

중국은 담장 없이 건축물을 대지경계선에 붙여서 짓고 가운데를 비워 중정을 두고 집의 각 공간으로 들어가는 동선을 수용하는 데 쓴다. 일본은 현관을 통해 집안으로 들어가서 복도를 통해 방으로 가는 동선을 처리하므로 외부공간은 쓰임새가 없어서 정원으로 쓴다. 우리나라는 건축물을 대지의 한가운데 배치하고 방마다 외부에서 들어가게 되므로 각 영역의 마당은 내부 공간과 이어지면서 하나의 공간체계를 가지게 된다.   

  

중국 전통가옥의 기본이라고 하는 四合院은 입식 생활을 하는 주거방식이며 방마다 중정으로 출입구를 두고 있다. 실내의 난방기구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도 각 실을 드나드는 문이 내부에서 외부로 바로 개방이 된다. 중국 사람들이 잘 씻지 않는다는 얘기는 집의 얼개를 보면 공감할 수 있는데 겨울이면 실내에서도 두꺼운 옷을 입어야 한다.     


중국 전통 주거의 기본이 되는 사합원 모델링-미확인 출처에서 퍼 옴


일본의 주거는 우리나라처럼 좌식생활을 한다. 외출을 할 때는 겉옷을 걸치지만 집에 있을 때는 가벼운 옷차림이 되는데 난방을 하지 않으므로 실내 보온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본가옥은 복도로 집을 둘러싸고 그 안에 방을 배치하여 실온室溫이 유지될 수 있게 해야 하므로 한중일 삼국의 가옥 중 유일하게 현관이 존재한다. 주거생활이 집 안에서 주로 이루어지게 되니 외부공간은 정원으로 꾸미게 되어 정원문화가 발달되었다.  


일본의 전형적인 실내 전경-난방이 되지 않는 방의 온기를 보전하기 위해 복도가 방과 외부공간 사이에 있다. 넓은 실내는 칸막이벽으로 구획해서 쓸 수 있게 되어 있다.   

같은 동북아시아권의 한중일 세 나라가 주거방식의 차이로 집의 얼개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집의 외부공간이 주거생활의 내부 사정에 의해 그 쓰임새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 나라 주거공간의 외부는 중국은 ‘동선을 수용하는 공간’, 일본은 집 안에서 외부를 바라보는 ‘관상 공간인 정원’, 우리나라는 내외부가 하나로 쓰는 ‘기능 공간인 마당’으로 쓰게 되었다.    

 

 ‘우리집’인 韓屋의 고유 공간인 마당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는 집은 과거의 유물로서 조선시대의 집만 한옥이라 부르는 게 온당할까? 이 시대의 단독주택도 당연히 韓屋이라 불러야 한다. 과거의 집은 목조 와가木造瓦家이었고 이 시대의 집은 철근콘크리트 구조에 평지붕이라고 해도 우리나라 고유의 주거행태가 그대로 이어져 유지되어야 온당하다.

    

하지만 이 시대의 단독주택이 편리함을 포기하지 못해서 아파트 평면과 비슷하게 구성되고 마당은 관상 공간으로 처리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조선시대의 한옥을 그대로 옮겨 짓는 집도 잔디를 깔아 마당이라 부른다. 어떤 구조방식과 마감 재료를 써서 짓는다고 해도 이 시대의 ‘우리집’으로 손색이 없게끔 지어야 이 시대의 한옥이라 할 것이다.     


특히 마당이라는 우리 고유의 외부공간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韓屋이라 부르기에 주저해야 할 집이 대부분이다. 현관으로 들어가서 실내에서 주거 생활을 다하는 데다 외부공간을 정원으로 쓰는 집은 일식 주거와 다름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일층의 각 실을 외부공간과 연계해서 쓸 수 있게끔 얼개를 짜면 마당이라는 기능이 살아나게 된다. 거실과 큰 마당, 주방과 정지 마당, 테이블과 안마당, 서재와 작은 뜰을 연계시키게 되면 내외부가 하나의 공간 체계를 가지게 되면서 일상이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가게 될 것이다.    

 

관가정의 안마당과 대청 너머 뒤뜰이 있어서 한 여름에도 대청에는 시원한 바람이 드나든다. 내외부 공간이 하나가 되는 우리 한옥의 특징을 보여준다.


 몸이 편안한 집이라야 한옥        


마당을 살려서 집의 얼개로 구성하자면 대지의 가운데에 건물을 배치해야 한다. 정원도 마당도 아닌 넓은 잔디밭은 집을 쓰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집에서 생활하면서 제대로 쓰지 않는 넓은 잔디밭을 두게 되면 풀을 뽑는 노동만 가중될 뿐이지 않겠는가?     


단독주택 설계 과정의 초기에 얼개를 짜면서 일층의 내부 공간과 외부공간을 관련시켜 구성해보면 풍부한 생활 공간이 만들어질 수 있다. 거실과 테라스는 물론이고 테이블과 작은 뜰, 서재와 정원, 주방에는 뒤뜰을 여유 있게 두고 장독대, 텃밭, 작업공간을 둘 수 있다. 건물과 잔디밭이 아니라 크고 작은 마당을 일층의 실마다 관계 맺기를 하면 외부공간이 저절로 관리되게 된다.


이 시대의 한옥인 ‘우리집’에서 살아야만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한국인의 유전자가 담긴 몸이 편안해진다. 요즘 지어지는 단독주택이 우리집도 일본 집도 아닌 애매한 집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어떤 얼개를 가져야 한옥의 정서가 담긴 이 시대의 한옥이 될런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마당은 지금의 생활 방식에 맞는 ‘우리집’으로 지어 이 시대의 한옥에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팁이라는 걸 놓쳐서는 안 된다.      

    

필자 설계 경남 양산 심한재 배치도, 대지의 가운데 건물이 앉고 좌측에는 테라스, 마당, 안뜰과 주차장이 있고 뒤뜰에는 장독대, 텃밭 등 주방을 지원하고 있다.
심한재, 앞마당은 거실과 목재 테라스에 면해 있고 한실에서 툇마루를 통해 안뜰로 드나들 수 있다




 이 시대의 한옥으로 짓는 해법 중의 하나가 바로 마당의 정서가 오롯이 살아 있는 집의 얼개를 짜는 일이다. 넓은 잔디밭을 마당이라고 부르는 우愚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상들이 오랫동안 살아온 우리의 옛집에서 ‘우리집’의 얼개를 짜는 요소를 잘 찾아내면 집에서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옥韓屋은 우리나라 사람이 사는 집이다. 생활방식이 옛날과 지금이 다른데도 굳이 옛집의 모양새를 흉내 내어 지어서 불편하게 살 필요가 있을까 싶다. 이 시대의 한옥으로 지어야 한다는 건 한국인이라는 내 몸의 유전자가 바라기 때문이지만 모양새가 아니라 쓰임새에서 전통을 이어가야 올바르다는 걸 알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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