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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Nov 30. 2021

아는 것만큼 보이는 것에 대하여

개암사에서 차를 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모든 것은 덧없다.  쉼 없이 정진하라'


붓다께서 열반에 드시면서 남기신 유훈이다. 모르는 것을 부끄러운 일로만 돌리면 그만이 아니라 모른다는 건 어리석음이어서 그로 인해 삶을 망가질 수 있다. 다들 눈으로 세상을 보지만 본 것을 꼭 같이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무학대사는 부처는 상대방을 다 부처로 보지만 돼지는 돼지로 본다고 했다. 그래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나보다 


3년을 기약하고 매달 세 절을 찾는 108 고찰 순례단에 참여해서 7월은 변산반도 일원의 세 절을 찾았다. 선운사, 개암사, 내소사를 차례로 돌아보는 일정이었다. 선운사는 동백꽃으로, 내소사는 국보급 꽃문살로 이미지를 가져온다. 그중에 개암사는 죽염을 굽는 절로 알고 있을 뿐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세 절 중에서 규모도 가장 적어서 기대를 하지 않고 휘~둘러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개암사에서 정말 알지 못하면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알고 보면 다시 보게 되는 것처럼 개암사 대웅보전의 특별한 면모를 보고 감탄해 마지않을 수 없었다. 개암사에서 내 눈을 뜨도록 해 준 분은 문화재 해설사로 자원봉사를 하는 분이었다. 우선 그분께 감사를 드린다. 

 


고찰 순례라고 길을 나서보니 큰 절, 작은 절 할 것 없이 대부분 고졸함은 사라지고 온통 새 절을 만들어 놓았다. 기존의 문화재는 옛 것에 대한 고증을 받아서 고쳐지었겠지만 그 옆에 붙여 짓는 전각들을 보자니 안타까운 마음에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세 절은 그나마 옛 집의 정취가 유지되고 있어 고맙기 이를 데 없었다. 



팔작지붕의 당당한 모습에 기둥과 보, 기단까지 그 제 모습을 갖추고 있어 자연스러움이 그대로 다가왔다. 단청도 올리지 않고 불화도 없어서 '집 그 자체를 드러냄' 그대로였다. 한국 목조 건축의 특징은 자연과 하나 되고자 하는 자연스러움이라고 하는데 그 표준으로 삼을만했다.  


어간, 가운데 칸으로는 그 절의 주인 되는 스님만 출입하는 곳이다. 그 상징적인 자리에 놓여 있는 불사 권선용 기와가 눈에 거슬린다

대웅보전의 현판을 주목해서 보자. 바로 이 사진부터 개암사 대웅보전의 특별함을 보게 된다. 대웅보전이라고 쓴 현판이 다른 전각의 크기와 차이가 난다. 평방平防을 가릴 만큼만 소박하게 만들어 달았는데 포작이 끝나는 처마 아래에 있는 용머리를 가리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작게 만들어 달았다고 한다. 


대웅보전 내부는 불단을 뒤로 물리고 천장을 3단으로 접어 올려 내부 공간이 넓고 높게 되어 있다. 내부 공간은 용들로 장식되어 있는데 불국토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용과 봉황이 장엄하는 불국토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사방팔방으로 뽑힌 부재들 끝을 용머리로 장식되어 용들이 여기저기서 꿈틀대는 생동감이 느껴진다. 날개를 활짝 편 극락새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용과 봉황이 얼마나 많은지 내부에만도 용 9마리와 봉황 13마리, 바깥으로는 용 2마리와 봉황 9마리가 있다고 한다.

여기에다 화려하게 꾸며진 닫집 속에서도 용 5마리가 부처님을 호위하고 있다. 불전의 내부는 부처님이 주재하는 하늘 세계, 정토의 세계를 상징화하고 있다. 불교세가 강했던 시절의 사찰들에서는 - 불국사가 대표적으로 - 가람 전체가 불국토를 상징하도록 구성되었다. 조선조로 오면서 상징화의 범위가 법당 내부로 축소되어 그만큼 불교세가 위축되었음을 느끼게 하지만 정토에 대한 희구는 본질적인 소망임을 보여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김봉렬 교수의 글을 부분 인용> 


전각 처마 밑으로 우측 모서리에는 우백호의 개념으로 호랑이 머리를 새겼습니다.
좌측에는 좌청룡으로 용머리를 새겨 좌청룡 우백호가 어우러진 길지임을 말해 줍니다.


이 건물의 큰 특징은 정면에 올려진 포작들의 아름다운 장식성이라고 할 수 있다. 포작을 받치는 주두는 꽃잎 모양으로, 첨차는 연꽃 줄기로, 소로는 연꽃 봉오리 모양로 입체적으로 조각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위로 올라가면서 연꽃들이 환하게 핀 형상이다. 



이렇게 기둥 위에서 펼쳐지는 불국토의 표현을 보면서 절을 조성하면서 불국토에 대한 염원이 어떠했는가를 알 수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순례길에서 들었던 내용과 관련 문헌에 나온 대웅보전에 대한 자료로 알아가는 즐거움에 마음이 그득해졌다. 개암사는 작은 절이지만 그 안에 담긴 중중무진의 세계는 끝이 없다.  


지금 마시고 있는 차를 음미하면서 생각에 잠겨본다. 이 차 한 잔에 담긴 세계는 얼마나 넓고 깊을까? 1000년, 2000년을 거슬러 올라가서 염제 신농이 차를 발견한 그때부터 인간에게 가장 이로운 음료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찻잎으로 녹차, 백차, 청차, 황차, 홍차, 흑차... 보이차로 만들어 마신다. 햇차, 묵은 차, 좋은 차, 나쁜 차, 싼 차, 비싼 차로 다투기도 하지만 차가 가지는 진정한 의미를 담아 마시는 이가 얼마나 될까? 알고 마시는 차와 모르고 마시는 차는 분명 같은 차라도 다른 차이다. 


차를 알 아기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받아들이는 마음과 나누는 마음이 우선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차를 제대로 마시고 있다 할 것이다. 어쩌면 차를 알고 마신다는 건 차에 대한 지식만큼 차를 대하는 정서가 아닐까 싶다.


선운사 강당에서 차를 마시는 모자-허락 없이 찍어서 죄송합니다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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