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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Dec 01. 2021

다우茶友를 기다리며

지란지교의 벗은 아닐지라도 늘 마음이 닿아있는 벗이 있으니 

인연이라는 말이 이만큼 귀할 수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아무런 이해관계없이 학연 혈연 지연이라는 얽힌 연분도 없는 만남, 차 한 잔 나눈 적도 없는데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며 하염없이 기다린다.


유안진 시인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라는 시를 읊조려 본다. 나에게도 이 시구 같은 만남을 가지는 벗이 있을까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다. 그렇게 찾아가고 그렇게 찾아올 벗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이야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그의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중략)


노산 갤러리 신작 부분

                                                                               

오래전에 교통사고로 잠시 입원을 했을 때 첫 병문안을 왔었던 인터넷 카페의 다우가 있었다. 경미한 사고였기에 주변에 알릴 일이 아니었는데 며칠 글이 올리지 않았더니 다우들에게 안부 전화가 왔었다. 다음날 바로 대구와 남원에서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병문안을 왔었으니 거리보다 마음이 가깝다는 게 맞나 보다.


그리고 며칠 뒤 운남에서 보이차를 만드는 한 카페지기님도 귀국길에 들르시기도 했었다. 이렇게 찾아준 다우들의 따뜻한 정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물론 나도 자주는 아니지만 다우들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마음이 가면 몸은 절로 움직이는 것이니까.


온라인의 만남은 지금 세상이 주는 혜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불쑥 쪽지로 그를 부르기도 하고 카페 창에 와 있는 그와 몇 시간씩 새벽이 오는 시간까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러다 전화를 넣어서 목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렇게 몇 년씩 정을 만들어가는 만남, 그러니 매일 기다리게 되는 건 거리가 가까운 벗이 아니라 마음이 닿는 온라인의 다우가 되는 것 같다. 어쩌면 이런 글을 쓰는 이유가 댓글로 그를 만나기 위해서일지도 모를 일이다.


내일 한 다우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다는 기별을 주었다. 나에게는 먼 길인데 그는 마음이 움직이면 거리는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보지 못한다고 해서 말하지 못할 게 없지만 그저 보고 싶어서 길을 나섰을 것이다.


그를 대접할 귀한 차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와 마시면 좋을 차가 있다. 그뿐이다.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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