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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Dec 03. 2021

내소사로 가는 순례 버스 안에서 차를 마시다

길은 목적지로 이끄는 수단인데 모르고 가면  길에서 길을 잃는다

꿈꾸듯 바라는 일이 있다. 모든 걸 내려놓고 마음먹은 대로 혼자 어디론가 떠날 수 있길 꿈꾼다. 한 가지만 두 가지만... 이렇게 내려놓으려니 지닌 게 너무 많아서 꿈만 꾸는지 모른다.

 

주변에 혼자 하루, 이틀, 혹은 여러 날을 잡아 툴툴 털고 떠나는 이들이 없는 게 아닐 터이다. 그분들은 나처럼 일상에 묶인 게 없어서 그렇게 떠날 수 있는 것일까? 그들은 나에게 말하길 떠나면 그뿐 일 텐데 스스로 일에 매여 산다고 한다 


혼자서 떠나는 연습이 부족한 나는 이렇게 여럿이 가는 길에 항상 동참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짜인 단체 여행 일정에 서둘러 돌아 나오며 되뇐다. 다음에는 꼭 단출하게 와서 내가 필요한 시간을 쓰리라고... 


7월 순례코스 중 세 번째 절인 내소사來蘇寺, 독특한 절 이름이라 그 유래를 찾아보니 확실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 원래는 소래사라고 했다 하는데 언제부턴가 내소사로 불린다고 한다.   


수령 천년이라는 느티나무, 내소사의 주인은 바로 이 나무가 아닐까?

 

절 마당으로 진입하는 방법으로 두 가지가 있다. 누각이나 강당이 가로막아 우회하여 들어가는 것과 누각 아래를 지나는 방법이다. 두 방법이 다 주 공간 - 聖域으로 들어가기 전에 마음을 움츠리게 하여 맞닥뜨리는 감동을 크게 한다.

 

이 누 아래를 지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으니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마음을 숙여야 한다. 특히 조선조에는 관리들이나 양반들이 말을 타고 절 앞까지는 오지만 부처님을 뵙기 위해서는  내려서 걸어 들어올 수밖에 없었겠다. 머리를 숙이면 부딪힐 일이 없다는 걸 배웠을까?

 

큰 절이라도 대웅전 앞마당은 그렇게 크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사찰 전체 공간의 중심은 대웅전이 아니라 마당이기 때문이다

 

내소사 대웅전은 아주 재미있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대웅전 왼쪽 벽화가 미완성으로 되어있는 유래가 아주 흥미롭다. 그리고 대웅전의 꽃문살을 보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문이 있을까 싶다.


*대웅전 내부에 목재 하나가 비어 있는 곳의 전설

  대웅전을 건축 할 당시에 목수가 3년동안 나무만 다듬기만 하자 절에 있던 사미승이 장난으로 그 중 하나를 감추었는데 목수가 나무를 다 다듬고 나서 나무를 헤아려 보니까 하나가 부족했다. 나는 법당을 지을 자질이 아직 부족하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공사를 포기 할려고 했는데 그때 사미승이 감추어 두었던 나무 목재를 목수 앞에 내놓자 목수는 부정을 탄 재목을 쓸 수가 없다고 하여 그것을 빼고 대웅전을 완성하다 보니까 이렇게 하나가 비어 있는 모습으로 남아 있다.     [출처] 부안 능가산  내소사 사찰 탐방|작성자 moongyu3502

 

 

 

이런 문살이 또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이 문살을 만든 장인의 정성에 머리를 숙인다

 

 

조용히....

밖에는 관광객이든 참배객이든 시끌벅적 절을 누비고 다니지만 스님과 템플스테이 중인 분들은 수행 중이라 한다. 출가를 한다는 것, 머리를 깎던지 잠시 살아 보던지 전생의 복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데...

   

 

산 중턱에 있는 전각을 본다. 15분 정도면 오를 수 있다고 하는데 멀리서 바라만 볼 수밖에 없다. 성지 순례라 이름하여 절을 찾지만 마음에는 새기지 못하고 눈에만 담아가니 여느 관광객이나 무엇이 다를까?

   


이번 삼사-선운사 개암사 내소사 순례길의 버스 안에서 차 이야기를 할 기회를 잠시 얻게 되었다. 차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건 일방통행의 강의가 되기에 차를 마시면 어떻게 삶이 바뀌는지 알려드렸다. 차를 마시지 않는 사람의 삶은 일방통행이라면 차를 마시면 소통의 삶이 된다.


차를 마시면 그 행위 자체가 나누는 일이 된다. 차가 없는 집과 차를 마시는 집이 어떻게 다를까?  온 가족이 모여 저녁을 먹고 거실에 모여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우리네 집의 저녁 풍경을 보면 보통 TV에 집중하니 서로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누기가 쉽지 않다. 우리 집도 TV를 보는 건 비슷하지만 차를 같이 마시니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간다.

 

나는 사무실에서 업무상 손님을 만나도 차를 내고 대화를 나누니 시작도 차, 마무리도 차가 된다. 커피 한 잔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면 업무에 필요한 이야기가 끝이 되지만 차는 다른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누게 된다. 사무실에서 차를 마시면서 술로 진행하는 경우보다 훨씬 깊이 있는 인간관계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30분 정도 차 이야기가 끝이 나고 미리 우려 온 보이차를 내었다. 전날 숙차를 끓여 진하게 PET병에 담아왔었다. 버스에 있는 생수통에서 끓는 물만 희석하면 훌륭한 차 한 잔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조금만 나누어 달라고 하는데 아쉽게도 500cc만 들고 왔다 보니 몇 분만 마시게 되었다. 다음 달 순례길에는 1.8L 두어 병을 만들어와야겠다. 이렇게 차를 권하기가 쉽고 차를 마시기를 다들 좋아하는데 주변에 차 마시는 사람들이 왜 적을까?  


그건 차를 권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고 너무 어렵게 마시기에 그렇다고 본다. 편하게 마시고 나누어 마시고 함께 마시면 되는 게 차이고 특히 보이차가 좋다. 아마 얼마 가지 않아서 순례단의 많은 분들도 보이차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싶다.


절을 찾는 사람들이 많지만 제대로 찾는 이가 얼마나 될까? 절 구경을 오는 사람이 많을 것이고 바라는 바가 있어서 빌면 얻어질 거라며 엎드리는 사람들이 나머지 부류가 되지 않을까 싶다. 부처님은 구원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큰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신데 왜 해결사로 보는지 안타깝다.


보이차를 마시는 사람만 해도 그렇다. 보이차는 일상에서 편하게 마실 수 있는 기호음료인데 투자의 대상으로 보거나 만병통치약처럼 알려지기도 한다. 알고 마시면 더 좋은 차인지라 배워 보려고 하면 큰 가르침을 내리는 선생님이 너무 많기도 하다. 

길을 알고 가면 목적지에 쉽게 닿게 되지만
모르고 가면 길에서 헤매다 마는 것이니 


종교도 그렇지만 차도 제대로 알면 양약이 되고 모르고 당하면 독약이 된다. 종교도 그렇지만 차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라 잘 알고 대하면 삶이 풍요로워지지만 그렇지 않으면 큰 고통을 겪게 된다. 길은 알고 가면 목적지에 쉽게 닿게 되지만 모르고 가면 길에서 헤매다 마는 것이니.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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