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밤에 마시는 차는 매일 다른 향미를 음미하는데
하루에 차를 바꿔 마시는 횟수는 최소 네 번, 더 많을 때도 있지요.
식전 차로 숙차, 오전 차는 녹차이고 점심 후에는 홍차나 청차를 마십니다.
생차는 늦은 오후에 마시지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에 마시는 밤 차도 생차입니다.
밤에 마시는 생차는 하루를 잘 보냈는지 돌아보며 향미에 침잠하게 됩니다.
낮에 마시는 차는 일과를 보조하는 역할이라 어제 마셨던 차의 복사본이나 다름없지요,
하지만 밤에는 차가 주역이 되어 그날 보냈던 하루의 분위기에 맞게 마시게 되니 원본입니다.
한 편 밖에 없어서 마시는 만큼 줄어들어 어느 때가 되면 다시 마실 수 없는 차가 있습니다.
그 차를 마시게 되는 날은 아마도 낮에 있었던 일로 마음을 다독여야 하기 때문일 겁니다.
외근이 별로 없이 주로 사무실에서 하는 일이 많은 게 제 직업입니다.
제가 만약 차를 마시지 않았으면 하루 일과는 리듬 없이 얼마나 지루했을까요?
밤 시간에도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는 것도 차를 마시기 때문일 겁니다.
분주한 낮 시간에는 복사본 차 분위기지만 밤 차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원본입니다.
날마다 선택의 갈림길에 서서 바라보아야 하는 이정표는 '속도'가 아닌 '방향'입니다.
매일 해야 할 일도, 그날 마시는 차도 내가 신중하게 선택한 것이어야 할 것이어야 하겠지요.
어제 했던 일을 반복하기보다 오늘 하는 일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밤마다 마시는 차의 향미가 다르게 다가오는 건 어제와 다른 오늘을 보냈기 때문이랍니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