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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확행은 매일 마시는 인생차

행복은 추상적이라 바람이지만 소확행은 구체적이라 일상에 있다

by 김정관

오래 기억에 남아 있거나 경험해 보지 않았던 좋은 일이나 대상을 두고 '인생'이라는 접두사를 붙입니다.

다시 마시지 못할 차를 만나 잊을 수 없을 향미를 맛본다면 그 차를 두고 '인생차'라고 하겠지요?

나에게 인생차를 꼽아 보라고 하면 어떤 차를 들 수 있을지 생각해 보니 몇 가지가 떠오릅니다.

15년 전에 대연동 도림원에서 마셨던 홍인과 근래에 마시게 된 두 가지 차를 꼽을 수 있겠네요.


보이차를 마시는 사람에게 노차는 환상 속의 차라고 하겠지만 기대에 만족할 차를 만나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날 도림원 원장님이 노차 한 번 마시자며 우려주신 홍인은 그야말로 환상으로 가졌던 그 향미였습니다.

그 향미를 잊을 수 없어서 한 번 더 마실 수 있을지 도림원을 찾아 원장님께 부탁을 드려 보았습니다.

원장님은 웃으며 그날 우렸던 홍인은 소장한 분께 한 번 우릴 양을 얻어왔던 차였다고 하더군요.


두 번째 인생차로 꼽을 수 있는 차는 삼 년 전에 마시게 된 천년보이차 첫물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년보이차 이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는 생차를 즐겨 마시면서도 달고 쓴 정도로 음미했었지요.

이른 봄 처음 나온 일아이엽 찻잎으로 만든 첫물차가 그 이후의 차와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보이차는 차나무의 수령(樹齡), 산지마다 다른 향미도 차이가 있지만 첫물차가 우선이 되게 되었지요.


세 번째 인생차는 최근에 마시게 된 호태호(好太號) 백앵산 얼가즈 야생차를 꼽아야 하지 싶습니다.

거의 스무 해 보이차 생활을 해 오면서 수백 종류를 마셨고 꽤 많은 양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환갑이 지나고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매일 마시는 차'가 '지금 마시는 차'로 다르게 다가옵니다.

수령 1200년, 1300년, 2000년 아생차를 마시면서 몸이 받아들이는 향미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내 손으로 우려 마시는 차는 카페에서 돈만 지불하면 손쉽게 마실 수 있는 커피와는 분명 다릅니다.

잊을 수 없는 인생차는 기억으로 남기지만 지금 마실 수 있는 인생차는 소확행이 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대하는 보이차는 지금 마시는 차에 집중하게 되니 그 밖의 차는 소용이 없습니다.

차를 고르고 물을 끓여서 차 주전자에 물을 붓고 우러 나길 기다리는 시간, 매일 인생차를 마시고 있습니다.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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