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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Dec 08. 2021

머리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다

찻자리에 앉으면 누구나 머리를 숙여야 한다


조선초의 문신으로 좌의정까지 오른 맹사성은 열아홉의 어린 나이에 장원 급제를 하였습니다.

스무 살에 경기도 파주 군수가 된 맹사성은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도가 높다고 하는 무명 선사를 찾아갔습니다. 


"스님이 생각하기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내가 최고로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어렵지 않지요. 나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많이 베푸시면 됩니다"  

"에이 참 스님도...그런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어렵사리 시간을 내어 찾아온 자신을 무시하는듯한 이 말을 들으니 부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태연하게 다시 얘기했습니다.


"세 살 먹은 아이가 아는 것을 여든 살 먹은 할아버지가 행하기는 어렵지요"


그러면서 스님은 차나 한 잔 하고 가라며 맹사성을 붙잡았습니다.

맹사성이 다시 자리에 앉자 스님은 차를 따릅니다.

그런데 찻잔이 넘치는데도 스님은 계속해서 차를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찻물은 방바닥으로 흐르는데도 그만두지 않고 따르고 있으니 맹사성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십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도 스님은 태연하게 계속 차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스님의 이런 행동을 의아해하는 맹사성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자신의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스님의 이 한마디에 맹사성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는 부끄러워서 황급히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문 높이가 낮은 문틀에 이마를 세게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지요."


그 후에 맹사성은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다 頓首不搏"을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고개를 숙인다고 하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팽주는 손님을 위해 정성을 다해 차를 내는 것이겠지요.

손님은 팽주가 내는 어떤 차이든 그 차를 겸손하게 마셔야 할 것입니다.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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