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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mon LA Aug 25. 2024

글쓰기로 처박아둔 꿈을 꺼냅니다

글쓰기로 내 영혼을 자유롭게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죄가 아닌데 꿈이 있다고 말하는 이렇게 낯설고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이젠 "당신의 꿈은 뭐죠?"라고 물어보는 사람은 주변에 없다. 50이 넘어서일까. 아니다. 20대도 물어보는 사람이 적었다. "졸업하고 뭐 할 거야?" 이 질문이 설마 "당신의 꿈은?"과 같은 말이 아니라면.


사람마다 자신을 설레게 하는 단어가 있을 것이다. 나를 가장 설레게 하는 것은 '꿈'이라는 단어였다. 왜 나는 이 단어가 이리도 끌리고 설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 답은 어린 시절에 있었다. 어린 시절 엄마 아빠는 다투는 날이 많았다. 아빠가 퇴근하고 돌아오시는 시간이 되면 마음속의 불안감이 커져 안절부절못했다. 그런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책을 읽거나 뭔가를 끄적이며 메모를 했다. 거기엔 마음의 소원이 대부분이었다. 


'엄마 아빠가 안 싸우면 좋겠어요.'

'행복한 집이면 좋겠어요.'

'마법사가 되고 싶어요.'


그렇게 끄적끄적 대다 잠이 들곤 했다. 소원은 이루어진 날도 있고, 이루어지지 않은 날도 있다. 그래도 쓰고 있는 동안에 두려움과 걱정거리는 멀어졌다. 뭔가를 쓴다는 것은 나만의 왕국을 만드는 일이었고, 그 속으로 들어가 행복을 느꼈다.


그 뒤 자연스레 소원 노트를 만들었다. 바라는 일들이 있으면 무엇이든 적었다. 차곡차곡 은행에 저금하듯 한 줄 한 줄 소원은 쓰고 있다 보면 마치 이루어진 것처럼 황홀함을 느꼈다. 소원 노트 안에 적은 것 중 이루어진 일들이 생기곤 했다. 거기에 맛이 들어서인지 조금 자라서부터는 꿈 노트를 쓰기 시작했다. 부끄러워 친구들에게 솔직하게 말하지는 못해도 내 안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럼 그걸 쓰고 다시 읽으며 나만의 소왕국에서 에너지를 충전했다.


오랜만에 서재를 정리하다 2,30년 전에 쓴 꿈노트를 발견했다. 거기엔 10년 뒤, 20년 뒤, 무려 30년 뒤의 내 모습까지 적혀 있었다. 그 옛날 꿈꾸던 미래의 내가, 바로 지금의 나로 여기에 서있다. 그 기록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참으로 바빴다. 대학을 가고 졸업을 하고 직장생활, 결혼, 출산, 이민, 육아, 가사, 종교활동, 내 사업 등등. 숨차게 달려가다 조금 여유가 생겼나 싶었는데 유방암에 걸리고 말았다. 


처음엔 암이 나에게 절망을 가져다준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희망이 되어 갔다. 스무 살이 지나 지금까지 칙칙폭폭 대며 쉼 없이 달리다 망가져 버렸나 보다. 주변의 경관을 둘러볼 새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렸는데 고장 난 열차 덕분에 잠시 정착하게 되었다. 


완치판정을 받을 때까지 수리 기간은 4,5년, 이 시간 동안 잠시 머물고 있는 이 역에서 멈추어진 풍경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사색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이 멈추었는데 나 혼자 자유로울 수 있는 이 시간은 신의 선물일까? 


이 시간을 통해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수백 번도 더 자문해 본다.

"넌 뭘 하고 싶어?"

"너의 꿈은 뭐야?"

"반백 년 살았는데 만약 반백 년 더 살게 된다면 뭘 하며 지내고 싶어?"


"난…. (꿈이 있다고 말해도 될까?)"

"내가 하고 싶은 건…. (작가라고 말해도 될까?)"

"그러니까 내가 남은 인생에 가장 하고 싶은 건…. (글쓰기)"

"내 꿈은 글 쓰며 사는 거야, 작가야."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는데 내 안의 검열관이, 자격지심이, 열등감이, 두려움이 입을 틀어막으며 방해한다.


"이제 와서 작가는 무슨…."

"작가는 아무나 하나."

"그렇게 글 잘 썼으면 벌써 유명해졌지."

"50이 넘었는데 늦었어."

 

인정한다. 사실이기도 하다. 작가가 되려고 준비한 적도, 노력을 많이 하며 살아온 것도 아니었으니. 하지만 이제부터는 다르게 출발하고 싶다. 수리가 끝나면 내가 원하는 종착역을 향해 쉬엄쉬엄 완행으로 달려갈 것이다. 


사랑하는 일을 찾았다는 거,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사랑하는 일을 하며 산다는 거, 얼마나 멋진 일인가. 위기 속에 그 기회가 주어져 감사할 뿐이다. 


나에게 꿈이 뭐냐고 여전히 묻는 사람이 없다. 아니, 한 명 생겼다. 아들이다.


"엄마는 꿈이 뭐야?"

"엄마는 글 쓰며 사는 거야."

"좋아하는 일이 있다는 게 대단해. 엄마는 잘할 거야."

"그래 그래 믿어줘서 고마워."


다시 꿈노트를 만들었다. "어떤 자질을 원한다면 이미 그걸 갖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라."라고 윌리엄 제임스는 말했다. 작가의 자질? 습작, 연습, 졸작, 쓰레기 같은 글이라도 매일 쓸 각오가 그 자질이 아닐까?


2층 다락방에 오래 처박혀 여기저기 뭉개지고 뽀얀 먼지가 가득한 나의 꿈, 그동안 처박아둔 꿈을 이렇게 꺼내게 되었다.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살포시 가슴에 끌어안았더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그동안 팽개쳐서 미안해. 이젠 그러지 않을게."


나는 역시 글을 쓸 때, 꿈을 꿀 때 행복하다. 이 길로 가다 보면 걸림돌이나 방해물이 생길 것이다. 그럼에도 목표지점은 수정하지 않는다는 원칙하에 출발하려고 한다. 죽을 수도 있었는데 덤으로 얻은 인생, 이제 그냥 사랑하는 일을 하며 나머지 인생을 느릿느릿 걷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끄적끄적…. 

'뭐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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