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에세이
병원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전철역으로 향했다. 전철역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에스칼레이터인데 내 앞에 50대 부부로 보이는 부부의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폭이 좁은 에스칼레이터라 그 부부 뒤에서 유심히 살펴보니 남편의 눈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남편은 꽤 건장한 체구를 한 50대 후반으로, 부인으로 보이는 여성의 팔을 꼭 쥐고 있었다.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지팡이도 없이 버스에서 내려 전철역으로 내려가는 에스칼레이터가 아주 익숙해 보였다. 불편한 눈 때문에 수없이 이 병원을 방문했으리라. 그의 발 움직임을 보니 어디에 계단이 있고, 단사가 얼마나 되며, 계단 입구에서 몇 걸음 걸어야지 에스칼레이터를 탈 수 있는지 훤히 꿰뚫고 있는 듯 보였다.
남편이 아내의 팔을 꼭 잡은 채 부부는 계속 대화를 하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아내의 표정은 밝았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남편의 간병이 귀찮거나 힘들다기보다 함께 다닐 수 있는 것이 감사하고 즐거운 표정이다.
문득 그들 부부에게 나와 내 남편을 대입하게 되었다.
'나라면, 저렇게 보이지 않는 남편을 밝은 표정으로 환하게 웃으며 힘이 되어 줄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한 날도 있으리라. 하지만 나의 암투병 기간 동안 남편이 보여준 헌신과 사랑에 살아가면서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들 부부의 모습은 기억하고 싶은 동화이야기처럼 머릿속에 잔잔히 떠올랐다. 그러면서 그 남편이 세상 행복하게 웃으며 걸을 수 있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에게 세상은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부인의 미소는 보인다는 것을. 그만이 볼 수 있는 아내의 미소가 그에게 살맛 나게 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한자 사람인(人)은 서로 버팀목이 되어 의지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사람 인을 연상케 하는 부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