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갈 일만 남았다.
건강 걱정을 유난스럽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엄마가 그랬다. 나는 허약체질로 태어나 항상 병치레를 하다 보니 엄마의 건강에 대한 잔소리를 달고 살았다.
세월이 지나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어보니 내 모습 안에 엄마가 자리 잡고 있었다. 아이는 그렇게 약하게 태어난 것도 아닌데도 아플까 봐 잔소리를 건네기 일쑤였다.
이렇게 극성을 떨었는데도 몇 년 전 나는 암환자가 되고 말았다. 암사이즈는 무려 6센티. 이지경이 될 때까지 모르고 있었다니 스스로가 한심하고 비참했다. 건강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막상 암진단을 받고 보니 공포스럽고 불안한 마음보다는 잔잔한 마음의 파도를 느꼈다. 바닥을 치기 전 몸부림칠 때가 가장 공포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막상 바닥을 치고 나서야 알았다. 그 바닥은, 불안함의 목적지는 의외로 평온하다.
암병동엔 바닥을 친 사람들 투성이다. 의사가 아무리 최악의 상황을 이야기해도 좀처럼 포기하지 않는다. 가장 밑바닥에서 1%의 희망만 있어도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일어서려 한다. 희망은 배부른 선택사항이 아니다. 전부다.
"의사가 항암제를 주면 좋겠어요. 아예 약이 없다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특수한 암으로 수술도 항암제도 없다는 병원 의사의 이야기를 듣고도 희망을 놓지 않고 싸운다. 한 걸음만 뒤로 물러나도 죽음의 문턱을 밟게 된다. 거기엔 타협이 없다. 한 발만이라도 앞으로 내디뎌 죽음과 멀어지려 처절하게 애쓴다.
지금까지는 바닥을 치면 바스스 부서지는 것이 아닐까 두렵고 불안했는데 암병동에서 본 바닥에는 오히려 희망과 감사와 위로가 물결친다.
죽음과 사투하는 그들과 함께 바닥을 치고 나서 나의 불안은 사그라들었다.
죽는 게 아니라면 뭐든 길이 있다는 것을, 불안은 마음이 만들어낸 그림자였을 뿐이라는 것을 바닥을 치고야 겨우 알았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만큼 불행하지 않다.
-세네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