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땜

by lemon LA

"20년 전 걸린 암이 액땜이었나 봐. 그 후로 20년 동안 인생이 무탈하고 평온했어."


새롭게 배우는 캘리그래피 수업에서 만난 70대 어르신이 하신 말씀이다. 그 말에 괜스레 봄향기가 낫다.


"20년 전 암투병을 할 때는 내 인생에 왜 이런 일이, 했는데 그 후로 그게 노후 삶에 얼마나 큰 방패 역할과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는지 몰라." 가끔 함께 시간을 보낼 때면 이런 이야기를 해주신다.


액땜의 '액()'이란 불행한 일이나 재앙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구속이나 억압을 뜻하는 '멍에'와도 비슷한 말이다. '땜'이란 어떤 액운을 넘기거나 다른 고생으로 대신 겪는 일을 의미한다. 그 어른실 말씀대로 암이 액땜을 해주었다고 믿는다면 얼마나 다행하고 행복한 일인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명상록》에 나와 있는 표현이 떠오른다. "인생에서 육신은 아직 굴복하지 않는데 정신이 먼저 굴복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죽음의 문턱 앞까지 다녀온 사람들은 대체로 두 가지 양상을 띤다. 자신에게 처한 불행한 상황 앞에 힘없이 무너지거나 새로운 전환점으로 받아들이거나. 나도 어쩌면 암이 다시 재발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미래를 가슴 한편에 품고 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계절의 흐름이란 겨울 다음에 봄이 오듯 시간의 흐름일 수 있지만 마음의 계절은 내가 원하는 곳에 머물 수 있다. 고통을 끌어 안은채 시간의 계절이 흘러도 마음의 계절은 여전히 겨울, 겨울, 겨울에 머물 때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인생의 고통과 시름을 겨울에 묻어버리고 따스한 봄처럼 살아가는 이도 있다.


봄은 시간이 흘러 찾아오는 계절이 아니라 마음 안에서 품고 사는 계절이 아닐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 주어진 하루를 봄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해라.
행운은 잘 조율된 영혼이자 좋은 충동이며
좋은 행동인 동시에 좋은 습관이기 때문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