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하다 방향을 잃었을 때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아직 안 쓰여 있다면 꼭 써야 합니다.
-토니 모리슨-
한 줄인데 압도된다. 이것이 유명한 작가가 글을 쓰는 명분이다.
과연 다르다. 무명인 나는? 아직 명분은 무슨. 갑자기 거대한 명분을 만들자니 머릿속이 하얘진다.
유명작가와 무명작가 사이의 간극. 간극이란 원래 사물이나 시간 사이의 틈을 의미한다. 틈은 금방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체감온도가 있다면 간극은 쉽게 매울 수 없을 것 같은 심도처럼 느껴져 나에겐 '간극'의 단어가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이 간극의 길이는 만리장성 길이와 흡사할까? 지구와 달과의 거리와 비슷할까? 단순히 거리만 계산하면 불가능에 가까워 포기하고 싶어 진다. 하지만 현대 과학기술의 발달로 달나라도 갈 수 있게 되었으니 무명작가가 유명작가가 되는 기적도 있으리라.
글쓰기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와 글쓰기를 그만두어야 하는 이유에 대한 다양한 글을 읽어본 적이 있었다. 계속 글을 쓰면 뜻하지 않게 좋은 기회가 온다는 작가들과 아무리 글을 써도 아무런 기회가 오지 않고 시간낭비라는 의견을 제시하는 작가들도 있다. 긍정적인 쪽에 귀가 솔깃해지기도 하고, 부정적인 쪽에 묘한 설득이 되기도 한다.
왜 글을 계속 써야 할까?
나에게 글쓰기 명분은 무엇인가? (너무 거창하더라도 생각은 필요)
대부분의 글쓰기는 참으로 순수한 열정으로 시작된다. 남들은 모르는 자신 안의 끌림과 열정으로 글 한 줄 끄적대다 시작되기도 한다. 가끔 과거의 일기나 써둔 글을 다시 읽으면서 그때의 생각과 고민을 다시 재 고찰하기도 하고 현재 내 인생은 그 과거에서 얼마나 다르게 변화되었는지 파악하는 기준점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생각이라는 것이 그렇다. 과거의 그 시점에선 그것만이 진리 같고 옳은 것 같았는데, 시간을 타고 흘러가 먼 곳에서 다시 바라보면 꼭 그것만이 옳은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될 때가 얼마나 많은지...... 껍질은 같은 사람이지만 내면은 무한하게 변화를 거듭해 얼마든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게 사람의 매력이다. 모자란 과거가 후회스러울 때도 많다. 이제나마 그 모자람이 다르게 해석된다. 부족했던 것이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왜 글을 써야 하는지 작은 명분은 찾았다. 뭐라도 써두면 과거의 나를 그 글 안에서 만날 수 있어 그 시간이 애틋하다. 기억에서 어렴풋이 사라질뻔한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아직 안 쓰여 있다면 꼭 써야 합니다."라고 말한 토니 모리슨. 이것이 그녀가 글을 지속적으로 쓰는 명분이다.
어떤 작가일까?
토니 모리슨은 흑인 여성으로 1931년 2월 18일에 미국에서 태어났다. 여기까지만 소개하면 그녀는 그냥 평범한 흑인 여성이다. 그녀는 하워드 대학교의 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코넬 대학교에서 영문학 석사를 받은 후 1989년부터 2006년까지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인문학 석좌교수로 재직했으며 1993년에는 미국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대단하다!
토니 모리슨은 자신의 인생에 무엇을 담으려 애썼는지 그녀의 작품을 보면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1970년에 쓴 첫 장편소설 <가장 푸른 눈>에서는 인종차별을 겪은 흑인 소녀의 비극을 다룬다. 1973년 두 번째 소설 <술라>에서는 흑인 공동체 이야기를 통해 미국 사회의 윤리 문제와 가치 규범을 지적한다. 1977년 <솔로몬의 노래>에서는 노예였던 과거를 잊고 자신들의 모습을 찾아 나서는 흑인 남성에 대해 써 전미비평가협회상을 받는다. 1981년 <검은 아이>에서는 미국 흑인 중산층이 무조건 백인을 닮아가려는 내용과 백인들의 인종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을 다룬다. 이 외에도 <재즈> <어둠 속의 유희> 등 다수의 베스트셀러가 집필되었는데 결국 대부분의 내용이 흑인에 대해 새로운 사고와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그들의 변화를 돕는 글들을 남겼다.
흑인으로 1931년에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거의 조선시대 백정이나 상놈으로 태어난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녀는 차별, 멸시, 경멸, 가난과 친했을 것이고 존중, 평등, 부유, 성공과는 먼 세상에 속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글쓰기에 암울한 색깔로 덧칠하기보다 어둠을 뚫고 나오는 한 줄기 빛을 그려냈다.
그녀만의 글쓰기의 명분, 이것이 생명줄이 되었으리라.
브런치가 나에게 글쓰기를 충동질했다면 토니 모리슨은 글을 써야 하는 구실을 만들어 주었다. '아직 안 쓰인 책'이라니 흥미롭다. 아직 안 쓰인 책 중에 내가 쓰고 싶은 책을 찾는 것, 그리 어렵지 않다. 글쓰기를 하다 방향을 잃었을 때 다시 이 한 줄을 기억하려고 한다.
"아직 안 쓰인 책 세상에 많잖아. 정신 차려!"
오늘부터 나에게도 이것이 글 쓰는 명분이다. 무명작가인 나는 유명작가와의 간극(틈)을 이렇게라도 발버둥 치며 매워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