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던 길이 생겼다
파미르 고원.
히말라야, 톈산, 카라코람, 힌두쿠시 산맥 등 고산 지대가 모여 이루어져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곳.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을 정도로 척박한 고산지대를 좋아하는 내게 파미르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곳이었다. 늘 가고 싶다는 마음만 가지다 2022년 11월! 드디어 가게 됐다.
파미르 여행은 카자흐스탄에서 키르기스스탄을 거쳐 타지키스탄을 여행하고,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가는 순환 루트가 주를 이룬다. 당시 코로나 여파로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의 국경이 닫혔다. 일행과 나는 우선 대한항공이 취항하는 우즈베키스탄으로 들어가고, 타지키스탄을 여행한 뒤 다시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계획을 세우기 시작할 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내가 구매한 티켓은 11월 중순부터 12월 초까지 3주간의 왕복 티켓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11월에 여행 간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앙아시아 여행은 여름이 최적기다. 고산 지대에 눈이 내리면 길이 막히기 일쑤고 추운 날씨 때문에 여행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겨울을 피하는 게 당연했지만 나는 여건상 11월에 갈 수밖에 없었다.
폭풍 검색에 들어갔다. 중앙아시아 여행 카페에 가입하고, 블로그, 인스타그램을 뒤졌다. 여름철 내리쬐는 태양에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여행한 사람들의 정보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우선 이 계절에 여행이 가능한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한 블로거가 현지 여행사를 통해 여행했다는 글을 발견했다. 아! 그렇지! 현지 여행사에 직접 연락하는 방법이 있구나! 내가 왜 이 생각을 못했지?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면 빠른데 엄한 곳에서 찾느라 끙끙 대고 있었던 거다.
타지키스탄 현지 여행사를 검색해 몇 군데로 추렸다. 각각의 여행사는 예산에 맞춘 몇 박 며칠 일정, 자동차 또는 바이크로 파미르 고원을 돌아보는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또한 겨울에 운영하는지 여부를 알 수 없어 개별적으로 연락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문명의 발전과 인터넷의 발달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대부분의 여행사가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어 DM 연락이 메일보다 빨랐다. 서 너 개의 여행사 중 두 군데에서 답신이 왔다. A 여행사는 폭설 때문에 내가 문의한 루트가 불가능하지만 문화유적을 돌아볼 수 있는 다른 루트는 가능하다는 답신을 보냈다. B 여행사는 모든 게 가능하다고 했다.
A가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이미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가능하다’는 말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아니, 여행사에서 된다고 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밀어붙였다.
계약금을 지불한 우리는 파미르로 떠났고, 몇 가지 변수는 있었지만 광활한 자연 안에서 수없이 감동받았다.
비수기 여행지의 눈 쌓인 길과 텅 빈 게스트하우스를 보며 생각했다. 내가 이 길을 만들었구나. 갈 수 있을지 없을지 조차 몰라 막막하던 때, 가고 싶다는 간절하고 순수한 열망이 없던 길을 만들어낸 거였다. 마치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는데 내가 마음을 먹은 순간 길이 닦이고 건물이 지어지는 게임 속 세상처럼 말이다.
지금도 앞길이 막막해 보일 때 가끔 파미르 여행을 생각한다. 없던 길도 만들어 냈는데 이 세상에 못할 일이 뭐 있겠어?
그렇게 파미르는 내게 용기와 희망, 근거 없는 자신감의 키워드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