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묘생, 우리의 삶

우리가 사랑하게 되는 이유

by Kyle

오늘은 저희 집 상전, 짜장이와 함께 예방접종을 다녀왔습니다.

갑작스러운 외출에 당황한 얼굴로 째려보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고, 그러면서도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구나’ 싶더군요. 그래도 언제나 곁에서 웃음을 주는 이 작은 생명체를 보고 있자면, 그저 사랑스럽기만 합니다.


이 작은 아가씨의 이름은 “짜장”으로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웃기는 짜장”의 그 짜장입니다.

반려동물의 이름을 먹을 것의 이름으로 지으면 오래 산다는 뻔한 속설과 호기심은 많지만 겁도 많아서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보며 떠오른 유행어가 이름의 기원이라면 기원이랄까요.


IMG_9714.HEIC
IMG_9980.HEIC
처음 우리에게 온 날(좌)과 쇼파 쿠션 위에서 잠든 어린 짜장(우)

아가씨와의 처음 만남은, 의지와 우연 그 사이 어딘가쯤이었을 겁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너무 많은 반려동물들이 버려지던 그 시기에 저희 부부는 임시보호라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근처 보호소에 연락처를 등록해놓았고, 그 연락처를 통해 연락이 왔습니다.


그날도 와이프는 박사과정의 괴로움으로, 저는 이직한 회사에서의 적응으로 힘겨워하던 아주 평범한 하루였던 것 같습니다. 마음은 지쳐 있었지만, 세상은 그저 무심히 흘러가던.


어려서부터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왔고, 마지막으로 함께 했던 고양이를 먼저 떠나보낸 저와

동물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키워본 경험이 전무했던 와이프.


그래서 보호소에 연락처를 남긴 그때부터,

그리고 아가씨를 처음 마주한 순간부터,

“아… 우리는 이 아이를 임시보호가 아닌 입양을 하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결국 아가씨를 정식으로 입양했고,

그렇게 로스앤젤레스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 저희와 함께 묘생을 살아오고 있습니다.

tempImageDCJNfQ.heic 훌쩍 자라버린 짜장의 모습

이제는 훌쩍 자라서 어른 고양이가 되었지만 저희는 아직도 처음 아가씨와 함께 했던 기숙사에서의 생활들을 기억합니다. 뒤뚱거리면서 호기심 가득한 모습으로 이 방 저 방을 둘러보는 모습이나, 그 작은 몸을 이끌고 노트북 거치대 아래에 들어가서 새근새근 자는 모습들은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가끔 자신의 커진 덩치는 생각하지도 않고 시도를 해보지만, 겨우 엉덩이 정도만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저희는 한참을 웃기도 합니다.


IMG_0206.HEIC
tempImagesoDZ5p.heic
tempImage7iHBKe.heic
tempImagevGlPSi.heic
창가에서의 묘생을 즐기는 짜장

아가씨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역시나 창가입니다.

기숙사에서는 쌩쌩 달려나가는 자동차들을, 얼바인에서는 앞마당으로 날아드는 새들과 담벼락을 뛰어다니는 청솔모들을 하루 종일 쳐다보고 있기도 했습니다. 이 곳 라스베이거스의 사막 풍경은 그에 비하면 많이 심심하지만, 그래도 종종 날아다니는 새들과 조깅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낮잠도 자며 창가를 떠날 줄을 모릅니다.


어찌보면 별 일 아닌 그런 장면들이, 돌아보면 참 고맙고 귀한 순간이었구나 싶습니다.


모든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저희도 아가씨가 저희의 곁에서 오래오래 함께 하기를 늘 바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저희의 곁을 먼저 떠나는 그 날이 오겠지만, 부디 그 때까지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묘생을 즐기고, 먼 훗 날 우리가 다시 함께 만나는 그 날을 또 다시 기약할 수 있도록 말이지요.


tempImageZE9d83.heic


사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작은 생명체가 우리의 곁에 오는 순간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그리고 깊게 사랑에 빠지고야 말 것이며,

그러한 사랑이 깊어지던 그 어느 날, 이 아이들이 우리보다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너갈 것이라는 사실을.


그 숨막히고도 잔인한 진실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을 사랑할 수 밖에 없나봅니다.


아직은 그 작별의 순간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저 지금처럼 사랑스럽고 건강한 모습으로 오래오래 우리 곁에 있어주기를 그래서 우리와 함께 더 많은 것들을 보고 추억할 수 있기만을 바랍니다.

tempImage4DedQa.heic 창가에서 잠든 아가씨의 발바닥

아가씨는 이제 노여움을 풀고 다시 창가에서 낮잠을 청하고 있습니다.

조용히 잠들어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 찰나의 순간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언제나 지금처럼 내일도 모레도 그녀의 행복한 묘생을 바라며,


이만, 총총.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