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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로스엘 Feb 04. 2022

#2. 이상한 동거

코로나 일기: 2022.2.2.(수)

  남편이 양성 판정을 받자마자 중학생 아들과 나 역시 부리나케 보건소로 달려갔다. 보건소에 도착한 것이 8시 40분경. 검사는 9시에 시작하는데 이미 검사 대기줄은 200미터 이상은 되어 보였다. 보건소 건물을 벗어나 길가에까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9시부터 12시까지 운영을 하는데 ‘조기 마감 가능’이라니 사람들이 서두를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그 북새통 속에서도 다행히 주차 자리를 찾아 차를 주차한 뒤 나와 아들도 그 긴 행렬에 동참했다.      


  “신속항원검사 받으시는 분들은 나와서 따로 서 주세요!”

     

  보건소 직원이 돌아다니며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줄이 너무 길어서 앞쪽에 있는 안내판이 안 보이다 보니 직원들이 직접 와서 안내를 하는 것이었다. 직원의 안내를 듣고 우리 줄에 서 있던 사람들 몇몇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갔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확산에 따라 검사 규칙이 바뀌어서 이제는 아무나 PCR 검사를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아들과 나는 확진자와 밀접 접촉한 상태였고, 보건소로부터 검사를 받으라는 안내를 받았기에 PCR 검사 대상이었다.


  “엄마, 나 처음으로 코로나 검사 받아 보네.”


  나는 선제 검사 때문에 세 번 정도 검사를 받은 적이 있는데 아들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밀접 접촉을 한 일이 없어 그동안 검사 받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게. 너한테는 특별한 경험이 쌓이는 날이다.”     


  나는 아들을 안심시켜 주고 싶어서 애써 웃으며 농담처럼 이야기했는데 내 걱정과 달리 이 녀석은 별로 무서워하거나 걱정하는 눈치는 아니다. 그래도 내 앞에 서 있는 아들의 뒷모습이 어찌나 짠한지. 나보다 키도 훌쩍 크고 덩치도 크지만 엄마 눈에는 여전히 아기 같은 아들이다.     

 

  그러니 진짜 ‘아기’들을 데리고 검사를 받으러 온 부모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우리 앞에 바로 그런 가족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젊은 부부와 네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여자 아이.


  이 귀여운 꼬마 숙녀는 검사를 받을 때 예상한 대로 자지러지게 큰 울음을 터뜨렸다. 얼마나 놀라고 아팠을까. 그 아이를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은 또 얼마나 아프고 속상했을까. 덩치 큰 중학생 아들이 검사를 받아도 마음이 이렇게 짠하고 아픈데...


  눈물의 검사를 마치고 떠나가는 아이를 보고서도 아들은 덤덤하게 검사를 잘 받았다.     


  “엄마, 나 코피 나는 거 같은데...”

  “뭐라고? 코피??”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코피는 아니었다. 아마 코를 깊숙이 찔러서 뭔가 흐르는 느낌이 들었던 게지. 추워서 못 참겠다...라고 느껴질 즈음 우리는 검사를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다.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었어.”


  아들과 내가 검사를 받으러 간 사이 남편은 보건소로부터 전화를 받은 모양이었다.     


  “재택치료를 할 건지 생활치료센터에 들어갈 건지 결정해서 알려 달래.”     


  사실 남편의 증상은 그리 심각한 건 아니었다. 열은 거의 없었고, 인후통과 기침, 콧물이 있었지만 심각한 통증이나 무기력증 같은 것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아들과 나를 위해 생활치료센터에 들어가기로 했다.     

 

  남편이 생활치료센터에 들어갈 경우, 아들과 내가 음성이라면 아들은 수동 감시 대상자가 되어 다중시설만 이용하지 못하고 일상생활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2차 접종 완료 후 90일이 넘어서 미접종자로 분류가 되기 때문에 7일 격리를 해야 한단다. 만약 남편이 재택치료를 받을 경우에는 내 격리 기간이 14일로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생활치료센터에 들어가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리가 당장 없을 수도 있어서 며칠 기다려야 할 수도 있고, 가까운 지역이 아닌 먼 지역에 배정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도 일단 아들과 나를 위해 남편은 신청을 해 두기로 했다.     




  아들과 내가 검사를 받고 온 후부터 우리 집은 본격적인 ‘코로나 시대’에 돌입했다.


  남편은 그야말로 본격적인 ‘골방 살이’를 시작했다(골방에서도 마스크를 계속 착용). 곳곳에 하도 소독 스프레이를 수시로 뿌려 대서 집안 전체에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곤 했다.


  남편은 화장실을 갈 때만 골방에서 나왔는데 소독약을 들고 다니며 자기가 만진 곳마다 다닌 곳마다 소독약을 뿌렸다.     


  아들은 아빠의 식사 배달 담당을 맡았다. 내가 음식을 만들어 쟁반에 올려 주면 아들이 골방 앞으로 배달을 하고 수거를 해 왔다. 그럼 나는 남편의 식기에 소독약을 뿌린 다음에 따로 설거지했다. 설거지를 한 후 싱크대를 또 소독했다.      

 

  수시로 환기도 해야 했다. 우리 집안을 떠돌아다니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강한 바람에 모조리 빠져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남편이 안방보다 더 깊숙이 있는 골방에 ‘처박혀’ 있으니 우리가 거실에 있으면 육성으로 대화하기힘들었다. 그래서 중요한 얘기는 전화로 하거나 카톡으로 했다. 한 집에 있으면서도 한 집에 있지 않은 것처럼 웃픈 광경이 연출되는 것이다. 아들과 나도 혹시 모르니 서로 마스크를 쓴 채 생활했다.

     

  “엄마, 나 이렇게 마스크 오래 쓰고 있는 거 처음이야.”     


  그래, 나도 그렇다. 그러나 어쩌겠나. 그래도 아들은 불평하지 않고 마스크도 잘 쓰고, 심부름도 잘해 주었다. 골방에 갇혀 있는 아빠가 자기도 안쓰러웠던 것 같다. 식사 배달 심부름을 얼마나 열심히 하던지.     




  아들과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골방에 있던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 나 생활치료센터 들어갈 수 있대. 자세한 일정은 이따가 다시 연락 준다고 했어.”     


  남편의 생활치료센터 입소가 결정됐다는 전화였다. 자리가 없어서 며칠 걸릴 수도 있다더니... 기다리고 있던 전화이면서 한편으로는 왠지 마음이 무거워지는 전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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