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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로스엘 Feb 06. 2022

#5. 기다려도 오지 않는 문자

코로나 일기: 2022.2.3.(목)

  “엄마, 나는 왜 문자가 안 와?”

  “그러게, 이상하네. 요즘 확진자가 워낙 많아서 결과가 늦게 오는 걸 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남편이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하려고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을 즈음, 나는 보건소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정확히는 2월 3일 오후 1시 26분에 발송된 문자.     



  임 oo 님 코로나 19 PCR 검사 결과 음성입니다(검사 일자 2022-02-02).     

 


  어제 한 PCR 검사 결과가 ‘음성’이라는 반가운 문자였다. 원래는 문자가 아침 7시~8시 사이면 오는데 요즘은 검사기관의 검사량 폭증으로 결과 통보가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오후 1시가 넘어서야 문자가 온 것이다. 그런데 같은 시간에 함께 검사를 받은 아들은 아무런 소식이 없다.     


  “엄마, 나도 음성이 확실해. 내가 면역력이 진짜 좋아. 어렸을 때 빼고는 감기에 걸린 적도 없잖아.”     


  아들은 초조해하는 나에게 너스레를 떨며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였다.      

 

  “너 아무 증상 없지? 목이 아프다거나 열이 난다거나...”

  “응, 나 아무렇지도 않은데.”     

 

  정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아들은 음성일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음성인데 튼튼이 아들이 양성일 리가 없잖아...라고 믿으면서.     




  남편이 생활치료센터로 떠나고 오후 3시가 훌쩍 넘었는데도 아들의 검사 결과에 대해 아무런 소식이 없자, 남편과 나는 보건소에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정말 몇십 통은 전화를 한 것 같은데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아 답답했다.      


  전화 연결이 안 돼서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던 그때 불안하게 울리는 카톡 알림음.     


  ‘여보, OO이 양성이래.’     


  남편에게서 온 청천벽력 같은 소식. 남편이 어떻게 보건소와 통화가 된 모양이었다.     


  ‘순차적으로 연락 준대. 아무래도 나랑 부대끼면서 놀아서 그런가 보다...’     


  남편은 자기 때문에 아들이 코로나에 걸린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 같았다.      

 

  코로나가 제일 나쁜 게 바로 이런 점이다. 나만 혼자 아프고 끝나면 괜찮은데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주었다는 자책감을 주니까. 실제 몸으로 느끼는 증상은 별로 심각하지 않다 하더라도 그 자책감 때문에 더 힘들고 아픈 병이다. 아빠가 아들이랑 집에서 놀아준 게 무슨 잘못이라고.     




  “OO아, 너 양성이래...”

  “....... 진짜? 그럼 나 어떡해...... 나 다음 주에 종업식도 못 가는 거야......?”     


  아들은 다음 주에 학교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워낙 학교, 선생님, 친구들을 좋아하는 녀석이라 중학교 1학년 마무리를 즐겁게 잘하고 싶어 했다. 종업식에 못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들은 말없이 자기 방 침대로 올라갔다(우리 아들은 2층 침대를 쓴다.). 그리고선 마스크를 쓴 채로 베개에 얼굴을 묻어 버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얼굴도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아들이 소리 죽여 울고 있다는 것을. 중학생이 된 후 아들의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남편에게는 살짝 미안하지만 남편의 확진 소식을 들었을 때는 너무 황당하고 당황스럽긴 해도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들이 확진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그야말로 하늘이 노래지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아, 어떡해.......’     


  정신이 아득했지만 정신을 차려서 할 일은 해야 했다. 담임선생님께 우선 바로 전화를 드렸더니 감염 경로 파악을 위해 가족, 학원 등의 동선을 알려달라고 하셨다.

     

  정말 다행인 것은 남편 회사 직원 분의 가족들이 확진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부터 우리 가족 모두 보건소 출입을 한 것 외에는 일절 외부 출입이 없었고 만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아들은 먼저 확진이 된 아빠에게서 병이 옮은 것이고.     


  “어머님, 아직 공식적으로 안내는 안 했지만 다음 주는 저희도 원격 수업을 하게 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OO이가 상태가 괜찮으면 수업에 참여할 수 있어요.”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등교 수업이 아니고 원격 수업이라니 무사히 종업식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굳이 먼저 친구들에게 확진되었다는 말을 할 필요도 없다. 코로나에 걸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도 아들로서는 큰 부담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좋은 소식이었다.      


  “OO아, 담임선생님이 그러시는데 너희 다음 주에 원격수업이래!”

  “정말? 우리한텐 아직 아무 말씀 없으셨는데......”

  “아마 곧 학교에서 연락이 올 거야. 그러니까 종업식도 참석할 수 있어. 잘됐다!”     


  다음 주에 원격수업을 한다는 소식을 전하자 아들은 좀 안심이 된 것 같았다.      


  “선생님이 나 확진됐다고 애들한테 말씀하시진 않을까?”

  “네가 수업에 안 빠지고 참석하고 있는데 굳이 말씀하시겠어? 대면 수업이면 몰라도 원격수업이니까 괜찮을 거야.”

  “그렇겠지...?”     


  담임선생님과 통화 후 학원에도 전화를 돌렸다. 다행히 영어학원은 대면 수업과 줌 수업을 병행하고 있어서 아무 문제가 없었고, 수학학원은 어쩔 수 없이 쉬기로 했다. 그리고 시댁과 친정에도 이 소식을 알렸다. 양가 어른들은 걱정하시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이제껏 고요했던 집안에 큰 돌이 두 개나 던져진 셈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두 번째 돌은 첫 번째 돌보다 더 사이즈가 거대한 돌이다. 손주의 확진 소식이라니.     


  정신없이 전화 통화를 마치고 나서 다시 정신 줄을 붙잡고 혼자 집안 소독을 하기 시작했다. 아들은 양성이라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자기 방으로 들어간 상태였다.      


  환기를 하고 거실 소파며 텔레비전 리모컨이며 문 손잡이들이며 집안 전체에 소독 스프레이를 뿌렸다. 아까 남편이 생활치료센터로 떠난 후에는 아들과 함께 소독을 했는데, 이젠 나 혼자다. 혼자서 소독 스프레이를 뿌리는데 자꾸 눈물이 나서 앞이 흐리게 보였다.     




  소독을 마치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보건소로부터 아들에게로 전화가 걸려왔다. 남편에게 물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재택치료를 할 것인지 생활치료센터에 갈 것인지 물었다.      

 

  “아이 아빠가 오늘 생활치료센터에 들어갔는데 혹시 같은 방에서 지낼 수 있나요?”     


  혹시나 해서 물었는데 그것은 장담할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질문을 하긴 했지만 예상했던 답변이었다.      


  아들은 당연히 혼자서 시설에 들어가기를 꺼려했기 때문에 재택치료를 하기로 결정했다. 남편과 아들이 모두 코로나에 걸려 남편은 생활치료센터에, 아들은 집에... 참 기가 막힌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2022년 2월 3일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것 같다. 남편의 생활치료센터 입소와 아들의 확진 소식으로 머릿속이 하얘지고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날. 그래도 난 엄마니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수없이 다짐했다. 아들 앞에서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더더욱.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천둥, 번개, 회오리바람이 몰아치고 있는데 겉으로 볼 때는 매우 침착한 모습으로 보낸 하루였다. 역시, 엄마는 위대해. 그런데 신기하다. 억지로라도 평온을 찾으려고 노력하니 왠지 진짜로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은 이 느낌이.


  참으로 길었던 하루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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