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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로스엘 Feb 06. 2022

#6. 알고 보니 내가 면역력 대장이었어

코로나 일기: 2022. 2. 4. (금)

  어제 우리 집에 몰아닥쳤던 폭풍우는 다행히 하루 만에 거의 잦아들었다. 그것은 아마도 남편과 아들의 상태가 심각하지 않아서일 거다. 만약 둘 중 누군가가 중증이었다면 폭풍우는 잠잠해지기는커녕 지금쯤 우리 집을 집어삼켰겠지.      


  남편의 증상은 인후통, 콧물, 코막힘, 가래 등으로 조금씩 다채로워지고 있긴 하지만 상태는 양호하다. 아들은 어제 오후까지만 해도(그러니까 정확히는 양성이라는 판정을 듣기 전까지는) 완전히 무증상이더니 갑자기 밤부터 가래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남편의 생활치료센터 룸메이트인 중학생 빼미 군도(낮과 밤이 바뀌어 야행성으로 지낸다길래 ‘올빼미’와 비슷하다고 붙여 본 애칭이다.) 가래 증상만 있다고 했는데. 둘이 중학생이라고 증상까지 비슷한 게 신기했다.      


  “엄마, 나 양성이라는 말 들으니까 몸에서 알아서 반응을 하나 봐.”      


  웃프지만 그럴싸하다. 나도 그렇다. 일종의 ‘건강염려증’이랄까. 처음에 남편이 확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괜히 이마가 뜨거운 느낌이 들더니(실제로 체온을 재 보니 정상) 아들이 확진되었다고 하니까 왠지 또 몸이 으슬으슬한 느낌이 들었다.   

   

  ‘여보, 나 오한 있는 거 아닐까?’

  ‘몸이 아프고 쑤셔?’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럼, 괜찮아.’     

 

  전화통화도 아니고 카톡 메시지이긴 했지만 남편의 ‘괜찮아’ 소리를 들으니까 진짜 금방 괜찮아졌다(남편은 룸메이트 빼미 군에게 방해가 될까 싶어 모든 대화는 카톡으로만 한다.). ‘괜찮아’라는 말이 이렇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말일 줄이야. 요즘 같은 때는 제일 듣기 좋고 반가운 소리 같다. ‘괜찮아’.  

   

  본인이나 가족이 코로나에 걸렸는데 상태가 심각하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울까. 상상만 해도 머리가 어지럽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역지사지’를 몸소 느끼고 체험했다. 뉴스로만 접하던 코로나를 실제로 맞닥뜨리면서 그동안 코로나에 확진되어 많은 고통을 겪은 분들에 대해 강 건너 불구경하듯 너무 무심했던 것을 깊이 반성했다.

     



  “어떻게 너만 음성일 수가 있냐. 신기하네. 이걸 끝까지 잘 유지해야지.”     


  안 그래도 평소에 뭘 많이 갖다 주시던 친정 부모님이 사위에 이어 손주마저 확진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매일 찾아오시기 시작했다(친정 부모님은 근처에 살고 계신다.).


  매일 오셔서는 현관문 앞에다가 과일이며 간식거리며 소독제며 각종 식품과 물품들을 놓고 가시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아들이 가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가래 없애는 약까지 갖다 놓으셨다.      


  보건소에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뭘 하라는 연락이 없고(확진자 폭증으로 보건소도 마비가 되었을 것 같다.), 그야말로 ‘각자도생’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덕분에 우리 집 냉장고는 터지기 일보 직전이 되었다. 오늘은 내가 혼자서 아들을 돌본다고 무리할까 봐 아들이 좋아하는 메뉴로 점심거리까지 사 가지고 오셨다. 내일도 오신단다. 아들이 뭘 먹고 싶어 하는지 말해 달라며.




  정말 어떻게 우리 가족 중에 나만 음성이 나왔을까.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고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반인 평균에 못 미치는 저질체력에다가 심지어 백혈구 수치도 낮은 내가...!      


  작년에 건강검진을 했는데 백혈구 감소증이 의심된다면서(재작년에 비해 백혈구가 반으로 줄었었다.) 3개월 후 재검사를 받으라는 말까지 들은 나였다. 다행히 지난달 재검사 결과 수치가 올라서 정상 궤도에 오르기는 했지만.      


  게다가 우리 가족 중에 2차 접종 완료 후 90일이 지난 사람은 나밖에 없다. 남편은 얀센 백신을 접종한 뒤 작년 12월에 부스터 샷을 맞았고, 아들은 2차 접종을 완료한 지 오래되지 않아 둘 다 90일이 넘지 않은 상태였다. 그야말로 항체가 나보다 분명 쌩쌩한 사람들인데 도대체 왜 제일 항체가 시들시들한 나만 음성인 것인지.      


  백신 접종 후에도 제일 아팠던 것도 바로 나다. 근육통에 고열에 오한에... 정말 끙끙 앓았었다. 반면 아들은 거의 증상 없이 멀쩡했고, 남편은 타이레놀을 한두 번 먹고는 괜찮아졌다. 그런데 실제 코로나 바이러스를 만났을 때는 내가 더 막강했던 것이다. 백신 맞고 심하게 앓았던 게 강력한 항체가 생성이 되느라고 그랬던 것일까? 어디서 그런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한데 가물가물하다.     





  당신이라도 음성이라 다행이야.’     


  남편이 카톡으로 이런 말을 했다. 그래, 남편 말이 맞다. 나라도 음성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만약 나까지 양성이었다면... 요즘엔 생활치료센터도 언제 들어갈지 기약할 수 없으니 아마 꼼짝없이 아들과 둘이 집에서 재택치료를 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확실한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나는 두 사람과 달리 분명히 심한 증상이 나타났을 테고... 그랬다면 나에겐 내 한 몸 추스르기도 어려운 상태에서 아들까지 돌봐야 하는 극한의 상황이 발생했을 것 아닌가.      


  아픈 몸을 겨우 일으켜 식사 준비에 빨래... 뭐, 빨래는 미룬다고 해도 설거지는 해야 할 테고... 물론 아들이 도와주고 하면 어찌어찌 살았겠지만  몸과 마음이 참 힘들고 고달팠을 것 같다.    

 

  우리 친정 부모님은 또 얼마나 근심 걱정에 애를 태우셨을지 안 봐도 알 수 있다. 지금도 전전긍긍하시는데 내가 아들이랑 둘이 집에 갇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끙끙 앓고 있으면 아마 밤잠도 제대로 못 주무실 거다. 지금도 하루에  번씩은 전화하시는데 아마 전화통에 불이 나겠지. 우리의 '생사'를 확인하시려고.

      



  생각할수록 참 감사하다. 나라도 건강한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물론 끝까지 이 상황을 장담할 수는 없다. 나도 언제까지고 음성이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그래도 지금 이 순간, 내가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아들을 부족함 없이 돌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미리 겁먹고 걱정하지 말아야지. 걱정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나. 편안한 마음으로 지금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고 최선을 다해야겠다.


  'Take it easy!'


   오늘도 스스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며 이 말을 되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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