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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로스엘 Feb 07. 2022

#7. 슬기로운 격리 생활

코로나 일기: 2022. 2. 5, (토)

  토요일. 원래 같았으면 수업을 하러 갔을 텐데(나는 매주 토요일마다 초등학생들과 철학 수업을 하고 있다. 평일에는 초등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데 지금은 방학이라 수업이 없다.) 남편과 아들의 코로나 확진으로 격리에 들어가게 되어 수업을 못하게 되었다.


  2차 접종 후 90일이 지나 버렸기 때문에 14일간 격리를 해야 해서 다음 주도 수업을 못한다. 수업을 안 하니 몸은 편한데 마음은 무겁다. 아이들에게도 미안하고 부모님들께도 죄송스러운 마음이 든다.      


  감사하게도 부모님 중 한 분이 귤을 보내 주신다고 한다. 긴 시간 격리를 하려면 당 보충이 꼭 필요할 것 같다면서. 우리 교회 담임목사님께서는 아들에게 맛있게 먹고 빨리 나으라고 치킨 기프티콘을 보내 주셨다. 어떤 분은 아들을 위해 과자를 엄청나게 많이 보내 주시기도 했다. 그 따뜻한 마음들이 진정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코로나가 당당하게 비집고 들어온 우리 집. 불청객임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씨는 아주 여유롭게 우리 집 어딘가에서 생활하는 중이다.


  나는 계속 ‘그분’을 쫓아내려고 온 힘을 다해 낑낑거리고 애쓰다가 이제는 그냥 제풀에 지쳐 빨리 돌아가길 기다리며 일상을 보내고 있다.


  생활치료센터에 있는 남편도, 자기 방에만 콕 박 지내고 있는 아들도 이 시기를 나름 알차게 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아들은 보건소 재택격리관리팀에서 전화가 와서 생활치료센터 어플을 깔도록 안내를 받았다. 하루에 두 번, 맥박, 산소포화도, 체온을 재서 기록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키트와 관련 물품, 격리 통지서 등 각종 서류는 내일 아침 일찍 보내 준다고 한다.      


  아들은 방에 격리되어 있고 나와 접촉할 수 없기 때문에 직접 전화를 받아 담당 직원 분이 알려주시는 대로 스스로 모든 것을 하고 있다. 마냥 어린 줄 알았는데 척척 알아서 잘하니 대견하고 안심이 된다.          


  그리고 나름 시간표도 작성하였다. 격리 중이라고 해서 너무 불규칙적으로 생활하면 안 좋을 것 같다고 했더니 자기도 동의하면서 직접 시간표를 짠 것이다. 그런데 다음 주에 학교 수업이 있다는 것을 깜박해서(게다가 격리 중인 걸 잊었는지 '집 복귀'라고 해 놓아서 한참 웃었다. 복귀는 무슨. 내내 집, 아니 자기 방에만 있는데.) 수정이 필요하긴 하다.


  그래도 어쨌든 스스로 시간표를 짜서 계획적으로 생활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할 뿐이다. 격리 기간에는 특별히 매일 게임을 1시간씩 할 수 있게 해 주었더니(원래는 1주일에 한 번, 1시간~1시간 30분씩만 게임을 한다.) 좋아라 하면서 적어 넣은 게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다.

  

아들이 문자로 보내 준 시간표 사진(아들, 글씨 좀 어떻게 안 되겠니?)




  남편은 생활치료센터에서 중학생 룸메이트 빼미 군(우리 아들보다 1살 위 중학생으로, '빼미'는 야행성 ‘올빼미’에서 따온 애칭)과 잘 지내고 있다. 나는 남편의 안부를 물을 때 빼미 군의 안부도 꼭 함께 묻는다.     

 

  ‘뭐 해?’

  ‘응, 지금 아침 먹어.’

  ‘빼미 군은?’

  ‘아직 자. 어제 늦게 자는 것 같더라고.’

  ‘그래도 너무 안 일어나면 깨워서 밥 먹으라고 해.’

  ‘응, 알았어.’     

 

  이런 식이다. 나는 빼미 군이 자꾸 식사 시간에 밥을 안 먹고 잠을 자는 게 걱정이다. 지난번에는 무려 오후 1시에 기상을 한 적도 있었다. 나는 혹시 건강에 문제가 있어 그러는 거 아닌지 걱정이 돼서 남편한테 흔들어 깨워 보라고 하기도 했다.      


  '여기 들어오기 전부터 방학이라 낮과 밤이 바뀌어서 생활했었대. 어제도  새벽에 자는 것 같던데.’

  ‘그래도 지금은 정상 컨디션이 아니니까 제때 밥을 잘 먹어야지. 당신이 신경을 좀 써 줘.’     


  이렇게 나는 원격으로 남편의 중학생 룸메이트까지 챙기고 있다. 빼미 군의 부모님으로부터 가끔 전화가 오는데 빼미 군은 퉁명스럽게 전화를 빨리 끊으려고만 한단다. 사춘기가 틀림없다. 에휴... 걱정하시는 부모님 속도 모르고.


  남편은 생활치료센터에 있으면서 중국어 공부도 하고, 성경도 읽고, ‘밀리의 서재’를 통해 책도 읽고 있다. 책을 한 권 가지고 갔었는데 왠지 재미가 없다며 ‘밀리의 서재’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넷플릭스도 유튜브도 다 재미가 없고 차라리 책을 읽는 게 낫다고 했다.


생활치료센터에서 남편이 먹은 음식들. 아주 맛있진 않아도 하나도 남김없이 잘 먹고 있다고 한다.

  



  나는 나대로 격리 생활을 보람 있고 ‘즐겁게’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선 3주 전에 블로그를 처음으로 시작해서 블로그에도 재미를 붙이고 있고(블로그 초보자들을 위한 수업을 듣고서야 겨우 용기를 내서 시작할 수 있었다.), 그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브런치에도 글을 쓰게 되어 양쪽에 글을 쓰느라 나름 바쁘다. 글을 쓰다 보면 시간도 잘 가고 생각도 잘 정리가 되어서 좋은 것 같다.

    

  독서도 틈틈이 하고 있다. 아들과 같이 읽으려고 청소년 도서도 읽고, 지금은 김승옥 작가의 단편소설집을 읽고 있다.       


  그러나 역시 무엇보다 열정을 기울이는 것은(혹은 기울여야 하는 것은)집안 관리다.


  친정 부모님이 매일 갖다 주시는 식재료들을 ‘소진’하기 위해 무던히 애쓰고 있고, 계속해서 발생만 하는 쓰레기들을 정리해서 모아 놓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다. 빨리 쓰레기들을 내다 버릴 날이 오면 좋겠다.


  다행히 음식물 쓰레기는 미생물 음식물 처리기가 잘 먹어주고 있다. 식욕이 왕성하고 소화력이 뛰어난 미생물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요즘 같이 격리를 할 때 정말 꼭 필요한 아이템이 아닐까 볼 때마다 생각한다.


  청소는 우리 집의 가사도우미 로봇청소기 이모님이 상당 부분 잘 맡아 주고 계신다. 가끔 물통에 물이 부족하다고 큰 소리로 떼를 쓰시기도 하고, 엉뚱한 곳에 가서 걸리시기도 하지만 대부분 큰 문제 없이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청소를 해 주신다.       


  수시로 아들의 건강상태도 체크하고 있다. 아들은 여전히 가래가 있고, 목소리가 맹맹한 것이 슬슬 코막힘 증상도 나타나는 것 같다. 자꾸 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말아야 할 텐데. 괜찮냐고 물어보면 늘 괜찮다고 명랑하게 대답하는 아들이다.


  나는 불쑥불쑥 엄습해 오는 건강염려증 때문에 불안할 때도 있다. 혹시나 나도 그 사이 양성으로 바뀌었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슬며시 고개를 드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분명 양성이 되면 고열, 인후통 등 뭐라도 증상이 생길 거라고 보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괜찮은 것 같다(고 믿고 싶다.).


  손으로 이마를 만졌을 때 전해지는 서늘함이 참 다행스럽다. 목이 아픈지 확인하기 위해 계속해서 일부러 침을 꼴딱꼴딱 삼켜 보기도 한다. 재채기를 할 때는 움찔움찔 놀라기도 하고.

      



  남편은 생활치료센터에서, 아들은 자기 방에서, 나는 나대로 내게 허락된 공간 안에서...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잘하고 있다고 모두를 칭찬해 주고 싶다.


  아, 남편의 룸메이트 빼미 군도 빼먹을 수 없다. 아직 어린데 혼자 씩씩하게 낯선 곳에서 잠도 잘 자고 양호한 컨디션으로 잘 지내고 있으니 기특하다. 잠을 너무 많이 자는 것 같긴 하지만...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것보다야 잠이 많은 편이 훨씬 낫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슬기로운 격리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모두를, 우리 가족뿐만이 아닌 모든 분들을 응원하고 싶다.      




  요즘 들어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낸 것, 그 자체가 대단히 의미 있고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런 하루가 계속 쌓이다 보면 결국 오늘도 내일도 매일같이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게 아닐까.


  격리 생활을 하면서 깊이 느끼고 배우고 실천하게 된 것이  있다. 


  ‘내일’을 염려하기 전에
우선‘오늘’을 잘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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