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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로스엘 Feb 07. 2022

#8. 혼자 보는 <런닝맨>은 하나도 재미가 없다

코로나 일기: 2022. 2. 6.(일)

  우리 가족은 일요일마다 정해진 루틴이 있다. 오전에 다같이 예배를 드리고 점심을 먹은 뒤 도서관에 가서 일주일 동안 읽을 책들을 빌려온다.


  도서관에 다녀와서는 좀 빈둥대다가 5시부터는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런닝맨>을 시청한다. 런닝맨을 보고 나면 바로 <1박 2일>로 넘어간다.


  이 두 예능 프로그램은 우리 가족이 모두 애정하는 프로그램이고, 주말의 대미를 장식하는 우리 가족 모두의 중요한 이벤트이기도 하다. 이걸 다 보고 나면 주말이 끝났구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일요일, 이 가족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거실에 모인 것은 달랑 나 혼자였다. 남편은 생활치료센터에 있고, 중학생인 아들은 자기 방에 갇혀 있으니 말이다.


  아들은 자기 방에서 좋아하는 유튜브 방송을 보는 듯다. 익숙한 유튜버의 목소리가 방문 밖으로 간간이 흘러나오는 걸 보면.


  아들은 '정브르'라는 유튜브 방송을 즐겨 본다. 이 방송에서는 다양하고 이색적인 곤충, 물고기 등을 직접 기르거나 관찰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솔직히 나는... 징그럽기만 하고 재미가 없다. 하지만 생물학자가 꿈인 아들에게는 매우 유익하고 흥미로운 방송이다.



 

  비록 혼자지만 우리 가족의 중요한 일요일 이벤트인만큼, 나는 런닝맨을 보기 위해 거실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TV를 보면서 먹으려고 과자 봉지까지 하나 뜯었다.


  그런데 평소 그렇게 재미있었던 이 프로그램이 웬일인지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진짜 요즘 아이들 말로 '노잼', 아니 '핵노잼'이었다(참고로 <1박 2일>은 올림픽 방송 때문인지 결방을 했다.).


   가만히 이유를 생각해 보니 런닝맨은 아무 잘못이 없다. 오늘따라 재미가 없었던 건 옆에서 깔깔대며 방정맞게 웃어대는 아들과 남편이 없어서 그런 것 뿐이다. 사실 돌이켜 보면 난 런닝맨 자체가 재미있어서였다기보다는 그걸 보면서 요절복통하며 배꼽을 잡는 아들과 남편을 보는 게 더 웃겨서 웃었던 것 같기도 하다.


  혼자 휑한 거실에 앉아 런닝맨을 보고 있자니 어찌나 적막한지. 와그작와그작 과자 씹는 소리와 런닝맨 멤버들의 깔깔거리는 웃음 소리만 그 적막을 깨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이 느껴졌다. 런닝맨 멤버들이 '이래도? 이래도 안 웃을 거예요?'라고 열심히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


  '유재석도 코로나에 걸렸다 온 후로는 얼굴이 좀 안 됐네...'


  런닝맨 멤버들의 열띤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늘 난 런닝맨을 보면서 이런 생각만 들었다. 그런데 진짜 그렇게 생각을 해서 그런지 유재석 씨 얼굴이 왠지 전보다 까칠해 보이기는 했다.



  

  오늘 새벽에 보니까 아들에게 산소포화도 측정기, 체온계, 소독제, 마스크 등 각종 물품과 자가격리통지서를 포함한 서류들이 도착해 있었다. 아들이 확진 판정을 받고 방에 격리된 지 3일 째 되는 날에야 도착을 했으니 빨리 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사이 별일 없었으니 다행이라는 심정으로 고맙게 받았다.


아들에게 온 재택치료 관련 물품들


 그런데 공동격리자인 나에게는 아직까지도 감감무소식이다. 나도 앱도 깔고 뭘 해야 할 텐데... 내일쯤이면 연락이 오려나. 하긴 확진되어 치료가 필요한 재택치료자들만 관리하기에도 일손이 부족한데 공동격리자들에게까지 어떻게 신속하게 연락을 해 주겠나 싶기도 하다.



  

   남편은 어제부터 혈압이 높아졌다. 지금까지 한 번도 혈압이 문제가 된 적은 없었는데 무엇이 문제일까. 혈압이 높아져서 그런지 머리가 좀 무겁고 두통이 있다고 한다.


  스트레스 때문에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이것도 코로나 증상 중의 하나인지 알 수가 없어 답답하다. 생활치료센터의 의료진은 나중에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는데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나중'보다는 많이 늦는 것 같다.  


  하루하루 계속되는 기다림들. 요즘은 정말 혼란과 혼돈, 그 안에서 인내가 필요한, '기다림의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증상이 중증인 분들은 마냥 기다리기가 힘들 텐데... 적잖이 걱정이 된다. 초조하게 연락과 처치를 기다리는 들과 그걸 알면서도 일손이 부족하다 보니 한계에 부딪치고 있을 보건소 직원 분들.  양쪽의 입장이 다 이해가 돼서 안타까울 뿐이다.



  

  코로나는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 가긴 했지만 분명한 깨달음 하나는 확실히 남겨 놓았다.


  평범한 일상이 그 무엇보다 제일 소중한 것이라는, 당연하다고만 생각해서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귀한 깨달음을.


  그저 다음 주 일요일에는 온 가족이 모여 런닝맨을 함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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