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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로스엘 Feb 09. 2022

#11. 남편의 귀환

코로나 일기: 2022. 2. 9. (수)

  우리 남편, 공룡 씨가 드디어 생활치료센터에서의 격리 생활을 ‘청산’하고 무사히 집으로 귀환했다. 그것도 아주 꾀죄죄한 몰골로.


  손에는 지난주 생활치료센터 입소 당시 들고 갔던 쇼핑백 하나만 달랑 들었고(거기서 입었던 옷들은 소각을 해야 해서 가지고 올 수 없다.), 일주일 동안 면도기가 없어 면도를 못해 수염도 지저분하게(?) 나 있었다.      


  우리 남편은 수염이 많이 자라거나 멋있게 자라는 스타일이 아니다. 수염이 주로 코밑에만 듬성듬성 나고 턱에는 몇 가닥씩만 빈약하게 나기 때문에 나는 ‘이방 수염’이라고 놀리곤 한다. 그런데 이방 수염이면 어떻고 임금님 수염이면 어떤가. 남편이 무사히 집에 돌아왔으니 그것으로 안심이고 기쁜 일이다.   


  남편은 목소리가 아직 맹맹한 것이 증상이 조금 남아 있다. 지금쯤은 전염력이 없다고는 하지만 '만에 하나'를 위해 앞으로 며칠간은 집안에서도 서로 마스크를 쓰고 조심하기로 했다.     




  “엄마, 오늘 아침 뭐야?”

  “오늘 아침? 주먹밥이랑 과일.”

  “오늘 점심은??”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특별 도시락 갖다 주신댔어.”

  “그럼 저녁은?”

  “밥...”     


  아들이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방문 앞에 찰싹 붙어 연달아 물어본 질문들이다. 언제 들어도 항상 부담스러운 식단 체크 질문. 그러나 우리 아들이 매일같이 빼먹지 않고 하는 이 질문.

     

  오늘은 단번에 세 끼 식단을 물어보길래 저녁은 귀찮아서 그냥 ‘밥’이라고만 대답해 버렸다. 우리 집에서 ‘밥’이 의미하는 것은 밥에다가 몇 가지 반찬을 곁들여 먹는 일반적인 한국인의 식사를 의미한다.

     

  원래는 ‘밥’이라고 하면 아들이 ‘반찬은?’이라고 꼭 묻는데 오늘은 자기도 질문이 많다고 여겼는지 멈춰 주었다. 어쨌든 코로나로 인해 격리된 상태에서도 입맛이 저리 좋으니 역시 또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친정 부모님이 우리 동네 맛집으로 유명한 식당에서 사다 주신 특별 도시락

 

  더 다행스러운 일은 아들의 가래가 거의 없어졌다는 것이다. 면역력에 좋다는 ‘해죽순 차’를 아침저녁으로 부지런히 끓여다 마시게 한 보람이 있다(참고로 ‘해죽순’이란 진짜 죽순은 아니고 미얀마 청정 갯벌에서 자라나는 야자수의 어린 순을 의미한다. 우리 부모님께서 계속 갖다 주시는 영양 식품 중 하나이다.).        


  아들은 내일 격리 해제가 된다. 파이팅! 하루 남았다.




  나는 오늘 아침에 어제 했던 PCR 검사 결과가 ‘음성’이라는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역시 음성이라 그런지 아침 일찍 소식이 왔다.


  요즘 같은 때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맞지 않는 것 같다. 늦게까지 소식이 없으면 대부분 양성일 확률이 높으니까 말이다.  전염병에 좀 더 철저하게 대응하려면 양성이라는 소식이 더 일찌감치 와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제 검사를 받으면서 혹시나 (비록 코로나 관련 증상은 없었지만 무증상으로) 그 사이에 ‘양성’으로 ‘둔갑’했으면 어쩌지... 하고 내심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음성이었다. 이제 이대로 7일만 더 잘 견디면 나도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된다(나는 어제 담당공무원으로부터 예전 방역 지침대로 14일을 격리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어쩌면 내가 뉴스에서나 보던 슈퍼항체 소유자가 아닐까? 생각하면 할수록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제발... 울트라 초특급 파워를 가진 슈퍼항체가 내 몸 안에 있었으면 좋겠다. 아직까지 우리 집 한쪽 귀퉁이에 엉덩이를 반쯤 걸치고 앉아 웃고 있는 얄미운 코로나 씨가 이제는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게 말이다.



정말 슈퍼항체라는 게 존재할까?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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