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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로스엘 Feb 10. 2022

#12. "엄마, 나 격리 좀 더 하면 안 돼?"

코로나 일기: 2022. 2. 10. (목)

  어제 남편이 격리 해제되어 생활치료센터에서 집으로 돌아왔고, 재택 치료를 받는 아들과 공동 격리자로 함께 있었던 나를 위한 구호 물품들(식료품)이 집으로 배달되었다. 남편은 생활치료센터에 있었기 때문에 남편 몫의 식료품은 오지 않았다.  

   

  오늘 아들의 격리가 끝나는 날인데 격리 끝나기 하루 전에야 나와 아들을 위한 식료품들이 도착을 한 것이다. 늦게 오긴 했지만 뒤늦게라도 이렇게 식료품들을 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마침 즉석밥도 살까 하던 참이었는데 잘 됐지 뭐야! 하면서.          

     

어제 도착한... 나와 아들을 위한 식료품들




  남편은 생활치료센터에 있는 며칠 동안 혈압이 계속 높았다. 기침이나 콧물, 열 같은 증상은 경미한 수준이었지만 혈압이 150 이상으로 치솟고 그것 때문인지 늘 머리가 띵하고 무겁다고 했었다. 혈압이 며칠째 안 떨어지자 생활치료센터의 의료진이 머리가 많이 아프거나 하면 먹으라고 혈압약 하나를 처방해 주었다.      


  생활치료센터에서는 의료진이 직접 격리자들을 만나지 않는다. 뭔가 이상 증상이 보고되면 전화로 의료 상담을 해 주고 필요에 따라 약 처방을 해 준다. 격리자들은 워낙 많고 의료진은 적기 때문에 사실 연락도 신속하게 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혈압약을 처방받기는 했지만 가급적 진료를 받고 먹는 게 좋다는 의료진의 조언과 혈압약은 한 번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하기 때문에 되도록 안 먹는 게 좋다는 부모님들의 걱정 어린 말씀을 따라 남편도 먹지 않기로 했었다. 다행히 증상이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 남편도 나이 40이 넘었으니 혈압에 문제가 생긴 것일 수도 있겠다 싶어 부랴부랴 혈압측정기를 주문해서 오늘 아침에 받았다. 어제 격리 해제가 되었으니 당장 병원에 가기도 조심스러워 일단 집에서 며칠 혈압을 더 측정해 보고 다음 주쯤 병원에 가 보기로 한 것이다.     


“여보, 나 혈압 확 내려갔는데?”

“뭐라고? 얼만데?”

“120.”

“진짜?? 다른 쪽 팔로 다시 한번 재 봐.”     


(잠시 후)     


이번에도 120.”

“잉??”     


  다시 재도 결과는 같았다.     

 

“아무래도 생활치료센터에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일시적으로 혈압이 올라간 거였나 봐.”     


  집에 온 지 하루 만에 남편의 혈압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생활치료센터에서 며칠 동안 내내 혈압이 150 이상이었는데 이렇게 확 내려가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안심도 되었다. 얼마간 지켜보기는 해야겠지만 왠지 괜찮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왜냐하면 생활치료센터에 들어가기 전까지 남편은 한 번도 혈압 때문에 문제가 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남편이 그곳에서 많이 힘들었나 보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짠한 마음이 들었다. 집에 오니 마음도 안정되고 편안해져서 혈압도 정상으로 돌아온 모양이다. 사람의 마음이 몸을 지배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엄마, 나 격리 좀 더 하면 안 돼?”

“뭐라고??”     


  오늘 정오에 격리 해제가 된다는 기쁜 소식을 아들에게 알렸더니 생뚱맞게 돌아오는 대답이 ‘격리 더 하면 안 되겠냐’라는 것이었다. 아들의 환호성을 기대했는데 이건 뭐야. 예상치 못한 어이없는 반응에 풍선에서 바람이 빠져나가듯 김이 빠져 버렸다.

      

  일단 아들 말로는 그 이유인즉슨 아직 자신에게 가래가 조금 남아 있기 때문에 (다른 가족들을 위해)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그렇다면 ‘엄마, 나 격리 좀 더 하면 안 돼?’가 아니라 ‘엄마, 나  더 격리해야 할 것 같은데.’라고 말해야 맞지 않을까? 왠지 ‘격리 좀 하면 안 돼?’는 격리를 더 하게 해 달라는 요청의 뜻으로 받아들여지니 말이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 아들에게는 이 격리 기간이 오히려 행복한 시간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선 자기 방 안에서만 지내니 엄마의 잔소리가 제로였다는 점. 평소 같았으면 이래라저래라 뭔가 잔소리를 들었을 텐데 완벽히 엄마의 ‘감시’와 ‘잔소리’로부터 차단이 될 수 있었지 않은가. 그것도 '법의 보호' 속에서. 심지어 격리 기간 동안은 매일 한 시간씩 게임도 할 수 있었다. 그래... 생각할수록 꿀이었겠다 싶다.

    

  게다가 매일 할아버지, 할머니가 격리하는 손주를 위해 손주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부지런히 날라다 주셨다. 평소 같았으면 한 달에 한 번 정도 먹을까 말까 했던 음식들을 매일 먹었으니 얼마나 행복했을까. 오늘도 아들의 요청에 따라 친정 부모님이 햄버거를 사다 현관 앞에 놓고 가셨다.     

     

아들은 한 번에 버거를 두 개씩은 먹는다.


  오늘로 아들의 격리가 해제되어 친정 부모님의 ‘점심 배달’도 끝이 난다. 아들로서는 참으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젠 다시 우리 집 규칙에 따라(엄밀히 말해서는 엄마인 나의 규칙에 따라) 그 음식들을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먹게 되었으니 말이다.      


“엄마, 나 오늘 격리도 끝났으니까 게임 조금만 더 하면 안 돼?”     


이 녀석은 항상 이런 식이다. 뭔가 항상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킬 구실을 찾는다. 그런데 그 모습이 또 너무 웃기고 귀여워서 대부분 홀딱 넘어가고 만다.     


“그래, 그럼 30분만 더 해.”

“겨우 30분..?”

“응.”     


그래도 난 정해진 기준을 많이 넘기지는 않으려 하고, 다행히  아들도 그 기준에 잘 따라와 준다.     




  오늘로써 아들까지 격리 해제가 되었다. 두 부자가 코로나에 걸려 그동안 얼마나 내 애를 태웠는지. 남편은 생활치료센터에서, 아들은 집에서 치료를 받으면서(사실은 치료를 받았다기보다는 병을 잘 견뎌낸 것이 맞겠다.) 지낸 일주일의 시간이 마치 아주 오래전 일처럼 느껴진다.

      

  두 사람이 뿜어댄 코로나 바이러스에 무너지지 않은 나의 기특한 면역력을 다시 한번 칭찬하며... 아무쪼록 2월 16일, 내 격리가 해제되는 그날까지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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