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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로스엘 Feb 11. 2022

#13. 돌아온 투 팍스(Two Parks)

코로나 일기: 2022. 2. 11. (금)

  남편과 아들이 모두 격리 해제가 되어 돌아온 후로 함께 집안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남편이 생활치료센터에 있고 아들은 자기 방에 콕 박혀 격리를 하는 일주일 여 동안 거실, 부엌, 안방, 서재를 홀로 독차지하다가 덩치 큰 두 사람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니 왜 이리 집이 좁게 느껴지는지(참고로 우리 남편은 키가 185cm, 곧 중학교 2학년이 되는 아들은 174cm이다.). 특히 아들 같은 경우는 격리 기간 동안 전보다 살짝 토실토실해져서 더 커진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 마음이란 참 간사한 것 같다. 남편과 아들이 무사히 격리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는 허전했던 집은 물론 마음까지 꽉 차는 기분에 뭉클하고 행복했는데 이제는 ‘집이 좀 좁아진 느낌이네...?’라는 생각이 들다니 말이다.     


  게다가 남편은 다음 주 화요일까지는 재택근무이고(앞으로도 당분간은 시간표를 짜서 직원의 50%만 출근을 한다고 한다.), 아들은 지금 방학인 데다가 학원도 다음 주쯤에야 슬슬 보낼 생각이어서 집의 ‘포화 상태’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격리 해제 후 다시 만난 두 박 씨 부자(일명 ‘투 팍스(Two Parks)’)는 반가움에 못 이겨 어제 싸움을 재개하였고, 깔끔했던 거실에는 다시 반갑지 않은 스펀지 총알들이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집안 곳곳을 굴러다니는 스펀지 총알들


  내가 이 스펀지 총알들을 달가워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지만 매우 설득력이 있다. 바로 우리 로봇청소기 이모님이 돌아다니며 청소를 하실 때 이 총알들을 삼켜 컥컥거리실 때가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로봇청소기 이모님이 배탈이 난 대부분의 원인은 바로 이 스펀지 총알들이었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면 로봇청소기 이모님의 배를 ‘열어(?)’ 총알을 제거해야만 하는데 이게 얼마나 번거로운지 모른다. 간단한 수술, 아니 시술이라고는 하지만 은근 손이 많이 간다.     


  로봇청소기 이모님이 가장 자주 복통을 일으키는 곳은 우리 아들 방이다. 이 총알들이 작은 데다가 동그래서 그런지 치운다고 치워도 보이지 않는 구석에 몰래 처박혀 있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남편과 아들은 오늘 아침에 둘이 같이 아들 방을 청소하고 소독했다. 격리 기간 동안 한 번도 방을 안 들여다봐서 몰랐는데 일주일 만에 들어가서 본 아들 방은 그야말로 ‘반 거지 소굴’이 되어 있었다. 일주일 동안 청소를 제대로 안 해서, 아니 전혀 안 해서 그런지 방 여기저기에 옷과 책이 널려 있고 과자 부스러기들도 곳곳에 떨어져 있었다.     


  다행히 청소 박사 남편의 주도로 아들 방은 금세 예전의 ‘안정’을 되찾았다. 덕분에 내 속도 평안함과 후련함을 되찾았다.      


  다만 역시나 청소를 못해 여기저기 이끼가 끼고 더러워진 아들의 어항 두 개가 마음에 걸렸는데, 귀신 같이 엄마의 마음속을 읽어낸 녀석이 “오늘 어항 청소할 거야.”라고 호언장담을 해 주었다.


  살짝 살이 오르니 내 눈에는 더 귀여워진 우리 아들. 아직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고 있어서 제대로 된 얼굴은 밥 먹을 때만 보는데 도치 엄마 눈에는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르겠다.      




  생활치료센터에서는 고혈압으로 힘들어하다 집에 돌아온 지 하루 만에 혈압이 안정세로 돌아왔던 남편은 오늘도 다행히 안정적인 혈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귀가 말썽이다.


  “여보, 나 귀가 너무 아파.”     


  남편은 생활치료센터에서 지내는 동안 24시간 내내 마스크를 쓰고 지냈다고 한다. 밥 먹고 샤워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모든 시간을... 즉 잠을 잘 때도 KF94 마스크를 쓰고 지낸 거다. 그랬으니 귀가 아플 만도 하다.      


  남편의 룸메이트였던 중학생 빼미 군도 역시나 그렇게 생활을 했단다. 거기에서는 되도록 항상 마스크를 쓰라고 안내를 한다고 한다. 하긴 코로나 환자들이 모여 있으니 서로 조심하기 위해 그래야 할 것 같긴 하다. 남편도 남편이지만 아직 어린 빼미 군도 참 답답하고 힘들었을 것 같다.      


  남편의 귀를 보니 마스크 줄이 걸리는 부분이 빨갛고 짓무른 것이 보인다. 그런데 집에 와서도 계속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귀가 쉴 틈이 없는 거다.


  남편은 요즘 거실 소파에서 혼자 잠을 잔다. 거실에서 혼자 자니까 잘 때만이라도 마스크를 벗으라고 했다. 마스크도 마스크 줄이 두껍고 편한 것으로 착용하고 있다.      


  이번 주까지는 서로 조심하자는 의미에서 우리 가족은 잠도 따로 자고 식사도 따로 하기로 했다. 식사 시간이 되면 남편과 아들은 부엌 식탁에서, 나는 거실 구석에 있는 2인용 테이블에서 먹는다.


  잘 때는 아들은 아들 방에서 자고, 나는 안방, 남편은 거실에서 따로 잔다. 그리고 온 가족이 낮에는 계속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고 있다.       




  남편과 아들의 격리가 해제되었다고는 하지만 우리 가족은 여전히 코로나 씨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중이다. 혹여 방심하다가 코로나 씨가 다시 얄밉게 비집고 들어올 틈을 내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힘들지만 좀 더 노력해 볼 생각이다.    


  두 명의 박 씨들, '투 팍스'가 돌아온 우리 집.


  집이 갑자기 복작거리기는 하지만 서로가 있어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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