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이로스엘 Feb 08. 2022

#10. 오랜만에 맡은 바깥공기가 달다

코로나 일기: 2022. 2. 8. (화)

  집에만 콕 박혀 지낸 지 9일째다. 공식적으로 격리가 시작된 것은 2월 2일이지만, 작년(‘작년’이라는 단어가 왠지 아직 낯설다.) 1월 30일부터 자체적으로 격리를 했으니 어쨌든 열흘 가까이 내내 집에만 있었다. 유일하게 외출을 한 것은 딱 두 번. 보건소에 가기 위해서였다. 그 딱 두 번의 외출 중 한 번이 바로 오늘이다.     


  오늘은 내가 공동 격리자로 격리된 지 6일째 되는 날로 PCR 검사를 받는 날이었다. 격리 시작하고 6일 혹은 7일째 되는 날에 PCR 검사를 받으라고 안내를 받았는데 남편이 내일 생활치료센터에서 나와 격리 해제가 되니까 오늘 받기로 한 것이다.




  지난번에 보건소에 검사를 받으러 갔을 때 워낙 줄이 길었기 때문에 오늘은 조금 서둘러 일찍 나갔다. 도착하니 8시 30분이었고, 내가 다섯 번째로 도착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평일이라 그런지 전보다는 확실히 사람이 적었다. 검사를 다 받고 나온 시간이 9시 20분이었는데도 줄이 그다지 길지 않았던 걸 보면.      


  비록 그다지 반갑지 않은 PCR 검사를 하러 가기 위한 외출이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밖에 나와 진짜 땅을 디디고 바깥공기를 마시니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날씨도 많이 풀려서 많이 춥지도 않고 미세먼지도 양호하고... 살짝 봄기운까지 느껴졌다. 그 기운을 힘입어 무사히 면봉의 짜르르함을 견뎌내고 나왔다. 그런데 ‘아뿔싸!’     


  바보처럼 보건소 직원 분께 나의 격리 기간에 대해 문의한다는 것을 까먹고 그냥 오고 만 것이다. 모처럼 외출했다고 들뜨고, PCR 검사에 온통 신경이 쏠려 정작 중요한 질문을 잊어버렸다.  




  어제 저녁에 재택 치료자 모니터링과 격리 체계를 간소화한다는 내용이 뉴스와 신문에 크게 보도가 되었다. 그중에서 2월 9일부터 감염자의 가족 중 백신 미접종자(나는 2차 접종 후 90일이 지나서 미접종자로 분류된다.)는 7일만 격리하면 된다는 내용이 눈에 확 들어왔다. 즉 이제까지는 14일을 격리했는데 9일부터는 7일만 격리하면 된다는 것이 아닌가!


  그럼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내일이 2월 9일이고, 7일만 격리하는 거라면 나는 내일 격리 해제가 되어야 하는 것인데. 그런데 날짜가 너무 애매하게 딱 걸리긴 했다. 9일부터 시행인데 9일이 격리 7일째 되는 날이니 말이다.       

 

  이 중요한 걸 안 물어보고 그냥 오다니!      


  결정적인 순간에 제 기능을 못한 몹쓸 기억력을 탓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얼마 되지 않아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으니 나의 격리를 모니터링하는 담당 공무원이라고 한다.


  "왜 아직까지 자가격리 앱을 깔지 않으셨나요?"    

  “저 그게 깔려고 했는데요, 앱에다가 담당 공무원 ID를 입력하라고 하는데 제가 몰라서... 보건소에 문의하려고 전화했었는데 통화가 안 됐어요.”


  자가격리 앱을 깔라는 안내 문자를 받은 것은 지난 일요일, 그런데 그 앱에 입력해야 할 담당공무원 ID를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아, 그러셨군요... 제가 지금 알려 드릴게요.”   

  

  내 대답을 들은 담당공무원은 당황하면서 미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요즘은 워낙 ‘카오스’ 상태이니 이 상황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여하튼 그렇게 나는 격리된 지 6일째 되는 날에 마침내 휴대폰에 자가격리 앱을 설치할 수 있었다.      



  아, 그래! 이 분께 여쭤보면 되겠구나! 마침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이렇게 전화를 해 주시다니!


 죄송해하시는 그분께 도리어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문의한 결과, 나는 그대로 14일을 격리해야 한단다. 격리 해제일이 2월 16일이니까 2월 14일에 두 번째 PCR 검사를 받으라고 다시 한번 친절하게 안내를 해 주시기까지 했다.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에 나는 또다시 공포의 PCR 검사를 받고 음성 판정을 받으면 최종적으로 격리 해제가 된다. 결국 예전의 방역 지침대로 격리를 하는 셈이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였다.      




  어쩜 이렇게 절묘하게 피해 가는지. 그런데 참 다행히도 나는 프로 집순이가 아닌가. 그러니까 지금까지 심하게 답답함을 느끼지 않고 잘 지내고 버텨 왔다.


  내가 만약 외향적이고 외출하는 것을 즐겨하는 사람이었다면 예전 방역지침에 따라 7일을 추가로 격리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짜증이 치밀었겠지만, 워낙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집순이기에 크게 실망하거나 짜증 내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집순이 성향'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은 것 같다.


  게다가 내일은 남편이 돌아오고 아들도 뒤이어 다음 날 격리 해제가 되지 않는가! 물론 당분간은 계속 마스크를 쓰고 서로 조심해야 하겠지만 그래도 온 가족이 한 집에 가까이 모여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자체로 마음이 꽉 차는 느낌이다.       




  내가 격리를 마치고 나갈 즈음엔 바깥공기의 맛이 오늘과는 또 달라져 있겠지. 입춘도 지났고 그때쯤엔 확실히 겨울보다는 봄에 가까운 달달한 공기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지금 중요한 것은... 오늘 시행한 나의 PCR 검사 결과! 아무쪼록 ‘음성’이길 간절히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9. 보고 싶은 투 팍스(Two Parks)!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