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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로스엘 Feb 20. 2022

내가 수영을 못하게 된 이유

언젠가는 할 수 있을까?

  나는 6살 때 종로에 있던 YMCA 유치원을 다녔다. 당시 우리 집은 덕수궁 근처여서 시청역에서 전철을 타고 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유치원은 굉장히 좋은 유치원이었던 것 같다. 30년도 훨씬 전인데 그 당시에 수영도 배웠고 원어민 선생님으로부터 영어도 배웠으니 말이다.      


  간식으로 자주 나왔던 빵도 정말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약간 마름모 모양의 페스츄리 빵인데 겉은 바삭바삭하면서 윤기가 좌르르 흐르고 속은 버터 향이 나는 촉촉한 빵이었다. 요즘엔 어제 뭘 먹었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6살 때 먹은 빵이 기억날 정도면 정말 맛있었던 거다.      


  아니면 6살, 한창 뇌도 성장하고 기억력이 좋을 때라 기억이 잘 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유치원 때 기억들이 꽤 많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 기억 중의 하나가 ‘수영’에 대한 것이다. 어찌 보면 그 시절의 좋은 기억력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수영을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부모님은 수영을 못하신다. 두 분 다 냇가 같은 곳에서 물고기 잡고 놀았던 기억은 있으시지만 안타깝게도 그 놀이가 수영 실력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하셨다. 내가 봐도 두 분은 모두 운동과는 인연이 멀다. 특히 우리 엄마는 ‘멀다’가 아니라 그냥 ‘없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이러한 두 분이(특히 우리 엄마가) 본인들도 못하시면서 나와 남동생에게는 반드시 가르쳐 주고 말리라 결심하셨던 것이 바로 수영이었다. 수영은 단순히 스포츠가 아니고 ‘생존’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하셨다.


  그렇게 해서 나는 6살 때 유치원에서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내 자주색 원피스 수영복(절대 잊지 못하는 자주색 원피스 수영복! 스츄리 빵과 더불어 나의 유치원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물’이다.)에는 엄마가 자주색에 대비되는 밝은 색깔의 실로 이름까지 새겨 주셨다.




  첫 시작은 순조로웠다. 물에서 발장구를 치며 몸 푸는 것도 재미있었고, ‘오리판’을 들고 수영할 때는 마치 내가 물개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수영할 때 잡고 있으면 물에 뜰 수 있게 해 주는 플라스틱으로 된 판을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오리판’으로 기억하고 그렇게 불러왔는데, 네이버 사전을 검색해도 이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우리 남편과 아들도 ‘오리판’을 모른다.).   


  어떻게 사전에도 없는 말을 이렇게 오랜 시간 알고 써 왔는지 미스터리다. 검색해 보니 요즘에는 ‘킥판’ 혹은 '킥보드'라고 한단다.


나는 이 킥판을 '오리판'이라고 불렀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왜 ‘오리판’ ‘오리판’일까?? 오리와 무슨 연관성이 있었나?  내 머릿속에는 이 단어가 각인되어 있는 것인가?


  어쨌든 나는 요즘에 '킥판', '킥보드'라 불린다는 물건을, 이 글에서는 어린 시절에 내가 불렀던 대로 '오리판'으로 부르도록 하겠다.




  잠시 오리판 이야기로 인해 삼천포로 빠졌는데, 이 오리판을 가지고 수영을 배울 때는 수영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리판과 작별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서 나의 수난은 시작되었다.     


  원래 겁이 많았던 나는 오리판을 잡지 않고 수영을 한다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그런데 어디 수영 강습이 그러한가. 진도를 나가기 마련이다. 오리판 없이 자유형을 배우던 그날, 나는 물이 무섭다는 것을 처음으로 강렬하게 경험했다.     


  사람이 물에 빠지면 부력에 의해 자연스레 물에 뜬다는 말에 대해 (그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라 해도) 나는 지금도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6살 때의 나는 물에 뜨는 경험이 아니라 하염없이 물에 빠지는 것을 경험했으니까 말이다.      


  오리판을 놓고 자유형을 시작하자마자 걷잡을 수 없이 물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걸 느꼈다. 마치 물 밑에서 누가 내 다리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처럼. 그래도 나는 필사적으로 수영장 가장자리로 가기 위해 온 힘을 다해 팔과 다리를 버둥거렸다.      


  그리고 그때 그런 내 모습을 본 수영 코치님께서 나에게 기다란 작대기를 내밀어 주셨다. 오!! 나를 구해주기 위한 생명의 작대기! 그 작대기를 꼭 잡은 순간 안도감이 밀려왔다.


  ‘오, 살았구나!!!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코치님께서 내가 그 작대기를 잡자 나를 끌어당겨 주시기는커녕 오히려 수영장 한가운데로 더 쑤욱 밀어버리신 것이다.


  죽을힘을 다해 팔다리를 허우적대며 겨우 수영장 가장자리 근처까지 왔는데 야속하게도 그 작대기는 나를 다시 수영장 가운데로 보내버렸다. 이때 처음으로 ‘이러다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을 해 본 것 같다.


  코치님은 내가 죽을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허우적대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유형을 익힐 것으로 생각하셨던 것 같은데(실제로 그날 많은 아이들이 자유형을 잘 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말 안타깝게도 정반대의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 뒤로 난 공포심에 사로잡혀 평생 오리판이나 튜브가 없이는 물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유치원에서 학부모들을 초청해서 아이들의 수영 실력을 보여주는 날이 있었다. 그동안 갈고닦은 수영 실력을 부모님들 앞에서 선보이는 날이었던 것이다. 당시에 아빠는 못 오셨고 엄마가 오셨었는데 잔뜩 기대감을 가지고 오셨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나는 오리판을 가지고 하는 수영 순서에만 참가를 하고 오리판 없이 하는 순서에는 참가를 하지 못했다. 그때 엄마는 내게 별말씀을 하지는 않으셨지만 아마도 무척 실망하셨을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신나게 물살을 가르며 자유로운 두 팔로 자유형을 하는데 나는 멀찌감치 서서 가만히 보고만 있었으니까.


  엄마가 그 당시 나에게 야단을 치시거나 뭐라고 하지 않으셨던 것이 정말 감사하다. 추측해 보건대 본인도 물을 무서워해서 수영을 못하시니 딸인 나를 이해하셨던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나보다 두 살 어린 남동생도 누나인 나와 똑같은 전철을 밟았다는 사실이다. 내가 유치원을 졸업한 후 초등학교에 다닐 때 동생 역시 YMCA 유치원을 다니며 수영을 배웠는데 그 녀석 또한 오리판과 떨어지는 순간 수영과 영원한 안녕을 고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우리 가족은 모두 다 물과는 완벽한 천적 관계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까지 된 걸 보면 이건 무슨 유전자 영향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을 무서워하는 유전자도 존재할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그런데 이보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맥주병’인 나와 남동생 모두 우리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자녀들의 수영 교육에는 무척이나 열을 올렸다는 점이다.


  우리 남편도 수영을 잘하고, 올케도 수영을 잘해서 유전자의 결합으로 인해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우리 아들과 남동생의 두 아이들, 즉 내 조카들은 모두 수영을 좋아하고 잘한다.        


  우리 아들은 자유형은 물론이고 배영, 접영, 평영 등 모든 수영이 가능하고 심지어 다이빙, 잠수도 매우 잘한다.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 얘는 물에 빠져도 죽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에 늘 안심을 한다.      


  아마 이 심정으로 우리 부모님도 나와 남동생에게 열심히 수영을 시키신 것일 텐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스럽긴 하다. 하지만 손주들은 다 수영을 잘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기시는 눈치다.




  아주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그 당시 코치님께서 만약 그 작대기로 날 구해 주셨다면 결과가 조금이라도 달라졌을까? 나도 수영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     


  어린 시절에 무언가에 대해 극심한 공포를 한번 경험하게 되면 어른이 되어서도 그것을 극복하거나 회복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어느덧 40대가 되어 버린 지금의 나. 종종 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해 볼 때가 있다.


  ‘수영을... 다시 한번 시작해 볼래?’     


  그런데 아직 내 안의 나는 준비가 안 된 모양이다. 항상 이 질문에 묵묵부답인 걸 보면.


  언젠가는 물에 대한 공포심으로 똘똘 무장한 6살의  내가 철벽같은 경계심을 풀고 나와 슬쩍 고개를 내밀어 주길 기대해 본다. 오리판이나 튜브 없이 자유롭게 물살을 가르는 경험을 꼭 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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