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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로스엘 Feb 17. 2022

'그곳'에 가 볼 때가 되었구나

덕수궁 돌담길

  누구에게나 아끼고 사랑해서 자주 찾는 장소가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도 그런 곳이 있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포근해지고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곳.  갈 때마다 나에게 행복감과 평안함을 마음 가득 넘치게 흘려 보내주는 곳. 바로‘덕수궁 돌담길’이다.

      

  사실 ‘덕수궁 돌담길’이라고만 한정 짓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긴 하다. 덕수궁 돌담길을 포함한 그 ‘일대’라고 해야 하나.


  난 이곳에서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2학년 까지 약 4년 정도를 살았다(내 나이가 벌써 40대 중반이니 30년도 훨씬 넘었다.), 따지고 보면 그리 오래 산 곳도 아닌데 지금까지 내 마음 속에서 한 번도 1등의 자리를 빼앗긴 적이 없는 곳이다.


  내가 덕수궁 돌담길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히 어렸을 때 근처에 살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내 인생 최대로 순수하고 맑았던 때의 추억들이 간직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그곳만이 가진 고풍스러운 숨결이 너무나도 좋기 때문이다.


  나는 아날로그적인 사람이라 그런지 현대적이고 분주한 곳보다는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주는 곳, 혹은 시간이 천천히 숨을 고르며 가는 곳을 사랑한다.

     



  덕수궁 돌담길 일대는 그야말로 도심 속 작은 유적지나 다름없다. 덕수궁은 물론이고 곳곳에 오랜 역사를 가진 건물들이 없어지지 않고 여전히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1년에 두세 번 정도는 반드시 이곳을 찾는다. 이곳에 가면 답답했던 가슴도 숨이 쉬어지고, 몽글몽글 솟아나는 추억들에 설레고, 에너지가 가득 충전되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유치원을 졸업한 뒤(철을 타고 종로에 있던 YMCA 유치원을 다녔었다.) 덕수궁 인근에 있는 덕수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덕수초등학교를 다니다 2학년 때 전학을 갔다.


  학교에 가려면 덕수궁 돌담을 끼고 쭉 올라가야만 했다. 그러면 항상 그 길목에는 지금도 그렇지만 의경들이 서 있곤 했다. 당시에는 ‘의경’이라는 말을 몰랐기 때문에 그냥 어린 내게는 모두 ‘군인 아저씨’들이었다.

      

  내가 책가방을 메고 돌담길을 따라 올라갈 때면 그 군인 아저씨들이 자주 말을 걸곤 했다. “꼬마야, 안녕? 이름이 뭐니? 학교 가니?”... 뭐 이런 특별하지 않은 질문들을 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런데 당시에는 그 평범한 질문들이 얼마나 부담스러웠는지 모르겠다. 아니, 질문에 대답하는 게 부끄러웠다고 하는 게 더 맞겠다. 어쨌든 그래서 군인 아저씨들이 웃으며 말을 걸어도 대답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발걸음을 재촉하곤 했었다.    

 

  아마 그 의경들 입장에서는 어린 꼬마 여자아이가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당시에만 해도 우리는 모든 교과서를 다 들고 다녀야 해서 책가방이 무거웠다.) 인적이 드문 돌담길을 걸어 혼자 학교에 다니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을 것 같다.      

     



  당시에는 그 돌담길을 따라 학교에 가는 아이들이 정말 별로 없었다. 나도 우리 집 주변에 사는 친한 친구가 딱 한 명밖에 없었으니까. 그 친구는 예원학교 근처에 있는 정동 아파트에 살았었다(그 친구네 놀러 갔을 때 친구의 어머니가 해 주셨던 팬케이크가 정말 맛있었는데!).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건물이 매우 낡아서(참고로 덕수초등학교는 1912년에 개교했다.) 걸을 때마다 나무로 된 바닥이 삐걱삐걱 소리를 내곤 했다. 그랬던 학교가 요즘에 보니까 수영장까지 갖춘 좋은 시설의 학교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난 왁스 냄새가 밴 삐걱거리던 낡은 마루가 지금도 무척이나 그립다.


  이처럼 덕수궁 돌담길은 나의 등굣길이었다.       




  우리 집 가까이에 정동제일교회가 있었는데 주일마다 정동제일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정동제일교회는 미국의 선교사였던 아펜젤러 목사님이 1885년에 설립한 한국 개신교 최초의 교회 가운데 하나로 100년이 훌쩍 넘은 깊은 역사와 전통을 가진 교회라고 할 수 있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문화재 예배당의 모습은 볼 때마다 고풍스럽고 아름답다.


    

정동제일감리교회 문화재 예배당 모습


  정동교회 바로 맞은편에는 ‘학생사’라는 오래된 식당이 있었다. 이 식당은 원래 ‘학생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주변 학교(이화여고 등)의 학생들이 드나드는 분식집이었는데 오래전에 ‘덕수정’으로 간판을 바꾸고 오징어볶음, 부대찌개 등을 파는 한식 밥집으로 탈바꿈했다. 지금도 식당의 간판을 보면 '(구)학생사'라는 이름이 작게 쓰여 있다.  


  나는 ‘학생사’라는 이름이 익숙했었는데 간판이 ‘덕수정’으로 완전히 바뀌었을 때의 그 아쉬움이란.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이 식당을 좋아한다. 이 식당의 오징어볶음은 진짜 최고의 맛이다. 그런데 너무 인기가 많아 피크 타임에 가면 대기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매콤하고 쫄깃쫄깃, 정말 맛있는 '덕수정'의 오징어볶음



     

  작년 가을에 친구 명과 함께 덕수궁 돌담길을 찾은 적이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내내 만남을 미루다 몇 년 만에 겨우 얼굴을 본 거였다. 사는 곳도 제각각이다. 우리는 같이 덕수궁 산책도 하고, 돌담길도 걷고,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점심도 먹었다. 돌담길이 보이는 작은 카페에서 커피와 차를 마시며 수다도 떨고.

      

  내가 제안을 해서 이곳에서 만났는데 다들 너무 좋다고 난리였다. 가을이 물든 덕수궁 돌담길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는 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여서도 좋았지만 나는 오랜만에 찾은 덕수궁 돌담길이 친구들 이상으로 반가웠다.

  

   



  어느 덧 계절이 바뀌고 있다. 아직 쌀쌀하긴 해도 강도와 질감이 확실히 달라진 바람의 냄새를 맡으니 마음이 설레고 두근거린다. 이 설렘과 두근거림이 나에게 ‘그곳’에 또 가야 한다고 속삭이는 것 같다.


  새 봄의 에너지를 얻고, 좀 더 힘찬 발걸음을 내딛기 위한 연료를 채우러.


  메말라서 갈라지기 시작한  감수성의 대지를 촉촉하게 적셔 주기 위해서.


  햇살이 봄을 머금어 조금 더 따끈따끈해지면... 나는 또다시 그곳에 갈 것이다.   


   

2021년 10월 9일, 친구들과 돌담길을 걸으며 발견한 소박하지만 아름다웠던 예술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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