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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로스엘 Feb 22. 2022

담력이 필요해

전갈과 함께 살 수 있을까?

  다른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는데  중학교 2학년이 되는 우리 아들의 꿈은 생물학자다. 여러 생물 중에서도 특히 물고기에 관심이 많아서 주로 물고기를 키웠다.      


  지금 키우고 있는 철갑상어와 몇몇 물고기들 외에도 가장 대중적인 구피를 비롯하여 블랙네온테트라, 백운산, 글라스캣피시, 하프빅, 카디날테트라, 코리도라스, 라스보라, 오토싱, 네온테트라, 안시, 라미노즈테트라, 베타, 칼라테트라 등을 키워 본 적이 있다.




  철갑상어 같은 경우는 원래 두 마리가 있었는데 작년 여름에 이사를 하면서 한 마리가 먼저 용궁으로 떠나 버렸다. 철갑상어는 22도 이하의 차가운 물에서 사는 ‘냉수어’인데 뜨거운 한여름에 이사를 하는 과정에서 물 온도가 높아져 그만 죽고 만 것이다.     

 

  아들은 두 마리의 철갑상어에게 각각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 꼬리지느러미가 날카로운 녀석은 ‘철이’, 꼬리지느러미가 둥근 것은 ‘갑이’였다. '철갑상어'라는 단어에서 한 글자씩 따와서 지은 이름이다. 이 중에서 예기치 않게 일찍 용궁으로 떠나 버린 것은 둥근 꼬리지느러미처럼 성격도 둥글었던 ‘갑이’였다. 


  먹이를 주면 갑이는 먹이가 자기 앞으로 내려올 때까지 밑에서 조용히 기다렸다가 납죽 받아먹곤 했다. 움직일 때도 느릿느릿 여유가 있었다. 반면 철이는 먹이를 주면 먹이가 내려오기도 전에 무섭게 달려들어 먹고 움직임도 무척이나 재빨랐다. 그래서 아들은 먹이를 많이 못 먹는 갑이가 안쓰러워 갑이 쪽으로 따로 먹이를 떨어뜨려 주곤 했는데 그것조차 철이에게 뺏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랬던 갑이가 이사 스트레스와 급격히 상승한 물 온도를 못 견디고 떠나버린 것이다. 갑이가 죽은 후 한동안 철이도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움직임도 느려지고 자꾸 몸통이 뒤집어졌다.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갑이 또한 이사하는 과정에서의 후유증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내가 느끼는 주관적인 관점에서는 갑이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던 같지만 말이다.     

  

  모두가 걱정을 했었는데 워낙 튼튼했던 녀석이라 그런지 아들이 물 온도에 신경을 써 주고 먹이도 잘 주고 하니까 금세 기력을 되찾고 지금은 멀쩡하게 잘 지내고 있다. 원래 물고기들은 한 번 기력을 잃으면 회생이 쉽지 않은데 건강하게 살아난 것이 신기하고 다행이었다.

      

한여름 이사 속에서도 씩씩하게 살아남은 철이.




  물고기뿐이랴. 몇 년 전에는 새우들도 많이 키웠었다. 체리새우, 블루벨벳 새우, 노랭이 새우, 야마토 새우 등 빨갛고 파랗고 노란 여러 색깔의 새우들이 어항 한 가득이었다. 알을 품은 새우들도 여럿 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렇게 번성하던 새우들이 갑자기 단체로 용궁을 향해 바쁘게 떠나 버렸다. 당시에는 아들도 어렸고 우리 부부도 지식이 부족해서 왜 그렇게 순식간에 새우들이 죽어갔는지 원인을 잘 몰랐다. 막연하게 pH 농도 때문이 아닌가 추측을 했을 뿐이다.




  이 외에도 우리 집을 거쳐간(?) 생물들이 꽤 있다. 장수풍뎅이(애벌레 시절부터 성충이 될 때까지), 달팽이, 햄스터 등.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햄스터다. 작고 노르스름한 햄스터였는데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아들이 학교 방과 후 수업 시간에 받았다며(당시 과목 이름이 ‘창의과학’이었다.) 집에 가지고 왔었다.      


  나는 솔직히 키우고 싶지 않았지만... 왜냐하면 아무리 봐도 그냥 작은 ‘쥐’였고, 나는 쥐가 무서웠다. 그렇지만 당연히 아들은 너무 키우고 싶어 했고 남편도 햄스터를 귀여워했다. 결국 우리는 그 햄스터의 이름을 ‘누룽이(털 색깔이 노르스름한 누룽지 같다고 해서)’라고 짓고 키우기로 했다. 나도 자꾸 보다 보니 누룽이가 귀여워졌다. 특히 그 까맣고 빛나는 눈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그런데... 어느 날 1박 2일의 짧은 여행을 하고 돌아와 보니 누룽이가 잠을 자듯 죽어 있었다. 왜 누룽이가 죽었는지 역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당시 우리는 집이 너무 추워서였던 것으로 추측했다. 그때는 한겨울이었고 여행을 가면서 보일러를 ‘외출’로 하고 갔는데 그것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했던 것이다.

      

  누룽이의 죽음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물고기나 곤충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물고기나 곤충들이 죽었을 때는 그렇게 충격이 심하지 않았는데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던 동물이 죽으니 충격이 컸다. 그 이후로 다시는 햄스터를 키우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커다란 두 개의 어항도 모자라 ‘전갈’을 키우겠다고 조르기 시작했다. 전갈이라니!?!?


  “엄마, 나 전갈 키우고 싶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키우고 싶어 하는 눈치다. 전갈, 전갈 먹이 등에 대해 검색도 많이 하고 수시로 조르는 걸 보면.     


  “전갈은 독이 있어서 안 돼.”

  “내가 키우고 싶은 아시안포레스트 전갈은 독이 꿀벌의 벌침 정도밖에 안 돼. 그리고 공격적이지도 않대.”

     

  이름도 거창하다. 아시안포레스트 전갈? 아시아 숲에 살아서 그런 건가? 여하튼 아들의 설명에도 그다지 안심이 되지 않았다. 그 아시안 어쩌고 전갈이 100% 순할 거라고 어떻게 보장을 한단 말인가? 그래도 아들은 자기가 모아 둔 돈으로 사겠다며 끈질기게 조르는 중이다.     


  심지어 오늘은 귤을 먹다가 난데없이 “엄마, 귤도 전갈 키우라고 하잖아.”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깐 귤껍질을 보여 준다. 어이없게도 귤껍질을 전갈 모양 비슷하게 까 놓았다.          


까 놓은 귤껍질이 정말 전갈을 닮았다.


  그런 아들이 황당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아들은 내가 이런 애교에 약하다는 것을 잘 안다. 고로 이것은 엄마의 약점을 알고 있는 아들의 얍삽한 전략이다.


  얼마나 키우고 싶으면 저럴까 싶은 마음에 당장 “그래, 키우자!!”라고 하고 싶은데... 쉽사리 허락이 안 떨어진다. 전갈 자체도 섬뜩하고 무서운데 전갈 먹이가 말린 사료 같은 게 아니라 꿈틀이 ‘밀웜’이라고 하니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치기 때문이다.


  아들 말로는 다 자기 방에 두고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하는데 정말 만에 하나 그중 한 마리가 탈출을 감행해서 성공이라고 한다면???


 그 ‘만약’을 가정하면 온몸에 닭살이 돋는다. 하지만 생물학자를 꿈꾸는 아들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쿨하게 받아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서 머리가 복잡하다.      


  나는 알고 있다. 전갈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 아들은 전갈 다음에는 도마뱀을 키우고 싶다고 할 것이고, 도마뱀 이후에도 뭔가 새로운 생물체가 또 등장하겠지.     




  아들의 꿈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는 멋진 엄마가 되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현실적으로 내가 너무 담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다.      


  전갈이나 꿈틀거리는 벌레를 봐도 끄떡없어할 수 있는 종류의 담력은 어떻게 하면 키울 수가 있는 걸까? 이러다 영영 아들 방에 출입을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설마 이 모든 게 엄마를 방에 못 들어오게 하려는 고도의 술수는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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