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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로스엘 Feb 23. 2022

사골국 같은 독서

중학생 아들의 독서 습관

  우리 아들이 나에게 푸념 반 놀라움 반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어떻게 엄마랑 이야기를 하면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꼭 마무리가 독서로 끝나지??”     


  나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것이 무슨 주제이든 간에, 이를 테면 전갈에 대해 이야기를 하든, 가물치에 대해 이야기를 하든(오늘은 가물치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했다.), 게임에 대해 이야기를 하든 대화의 마무리가 결국엔 ‘그래서 독서가 중요한 거야.’라고 끝난다는 거다.      


  “우리 선생님이랑 엄청 비슷해.”     


  아들의 담임선생님, 그러니까 작년 중학교 1학년 때의 담임선생님도 무슨 말씀을 하시면 이야기의 마무리가 독서의 중요성으로 귀결될 때가 많았다고 한다. 작년 아들의 담임선생님은 국어 선생님이셨는데 아이들에게 독서가 중요하다고 항상 강조하신 모양이다.      


  나도 의도하는 것이 결코 아닌데도 어쩌다 보면 이야기가 독서 쪽으로 흘러가는 것이 신기할 때가 있다. 아들 입장에서는 학교와 집에서 늘 독서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셈이니 좀 지겨웠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어쩌니, 아들아. 그건 사실인 걸.     




  우리 아들은 매일 독서를 한다. 매일 30분이라도 독서를 하는 것이 오래전부터 습관이 되어 있어서 으레 해야 하는 것으로 안다. 지금은 방학 중이라 하루 2시간 이상은 책을 읽는 것 같다.      


  아들은 마치 사골국을 끓이는 것 같은 독서 습관을 가지고 있다. 자기가 꽂힌 책이 있으면 한 번만 읽고 끝이 아니라 읽고, 읽고, 또 읽는 것이다. 문학책은 반복해서 읽지 않는데 역사를 좋아해서 역사 관련 책은 늘 반복해서 읽는 습관이 있다. 

      



  초등학교 때는 만화로 된 한국사 책들과 삼국지에 심취했었다. 특히 10권짜리 <삼국지(시공주니어에서 어린이, 청소년용으로 나왔던 박상률의 삼국지)>의 경우 최소 다섯 번 이상은 읽었다고 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10권짜리 삼국지를 다섯 번 이상 읽다니. 읽고 또 읽어도 재미있다고 하니 말릴 수도 없었다.     


하도 읽어서 책이 많이 닳았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는데(이것도 처음엔 빌려 읽다가 결국 중고로 구입했다.) 여기에 또 꽂혀서는 15권짜리 시리즈를 지금까지 두 번 이상 완독했다.


  그러나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관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봐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 사실 역사를 다룬 대부분의 책들은 언제나 그런 부분을 경계하며 읽어야 할 것이다. 아들에게도 이 점에 대해서는 주의를 주었다. 역사 관련 책들은 가능하면 여러 저자의 책을 읽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나도 좋아하는 책의 경우는 반복해서 읽을 때가 있긴 하다. 그런데 그럴 때는 상당 기간의 시간차를 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아무리 좋아해도 다섯 번 이상을 반복해서 읽은 책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늘 사골국을 끓이듯 책을 읽는 아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질리지도 않나 싶어서.




  아들의 독서 습관에 대해 처음에 약간 걱정했던 부분은 독서 편식이 좀 있다는 점(역사 관련 책 위주)과 같은 책을 너무 반복해서 읽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특히 나는 아들이 순수 문학책도 좀 많이 읽었으면 했는데 그동안 너무 역사 위주의 책만 읽으니 속으로 걱정이 됐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 역시 독서 편식이 심한 편이긴 해서(난 반대로 너무 문학책만 읽는다.) 아들에게 문학책을 읽으라고 강요하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본인이 읽고 싶은 것 중심으로 자유롭게 읽게 해야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같은 책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는 것은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다는 결론에 도달해서 이제는 걱정하지 않는다. 반복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들도 많고, 실제로 수많은 위인들도 반복 독서를 한 것으로 유명하니 말이다.


  세종대왕도 세자가 되기 전에 <구소수간>이라는 책을 천백 번이나 읽었고, 다른 책들도 일독으로 그치는 경우가 드물었다고 하지 않는가.


  여하튼 이제 아들이 엄마인 나보다 한국사나 세계사에 대해서는 지식이 훨씬 두텁다. 나는 주로 교과서에서 접한 단편적인 역사만 알지만 아들은 호흡이 긴 책들을 반복적으로 읽음으로써 역사에 대해 훨씬 폭넓은 지식을 확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진로 등 관심 분야가 생겨서 점차 그것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의 책도 접하고 있고, 내가 추천해 주는 문학책도 간간이 읽고 있는 중이다.




  이제 며칠 있으면 개학을 하고 아들은 작년보다 많이 바빠질 것이다. 중학교 2학년부터는 학교에서 시험도 보기 시작하고 학습적인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매일 30분 이상 독서하는 습관은 계속해서 잘 지킬 수 있도록 신경 쓰고 격려해 주고 싶다.


  수학 문제 한두 개를 덜 풀더라도, 영어 단어 몇 개를 덜 외우더라도 책을 읽을 30분의 시간은 꼭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독서가 무거운 짐이 아니라 다정한 친구로 평생 아들 곁에 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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