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우리 아들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날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아들은 나에게 신신당부를 해 두었다.
“엄마, 나 반 배정 결과 나오는 날에 친구들하고 미트(구글 미트(Google Meet))에서 만나기로 했어. 나, 그날은 하루 종일 미트 할 거야.”
어제는 새 학년 개학을 앞두고 반 배정 결과 발표가 있는 날이었다. 아들은 오전 10시부터 오후에 학원에 가기 전까지 내내 방에서 구글 미트를 통해 친구들과 만났다. 점심도 자기 방에서 먹었다. 반 배정이라는 것이 워낙 아이들에게는 중요한 문제니까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었다.
이미 모든 학교생활을 경험한 어른의 입장에서는 사실 중학교 때의 1년짜리 반 배정이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지만 지금 아이들에게는 그 1년이 전부처럼 보이니 말이다.
작년에 아들은 중학교에 처음 입학해서 매우 행복한 학교생활을 했다. 정말 자기는 ‘최고의 반’을 만난 것 같다며 학교 가는 것을 마치 놀이공원 가는 것처럼 좋아했다. 첫 중학교 생활이라 어떨지 은근히 걱정도 되었었는데 정말 걱정거리가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우리 집에도 아들의 친구들이 몇 번 놀러 온 적이 있었는데(코로나 때문에 자주 모여 놀지는 못했다.) 방에서 웃음소리가 끊이지를 않았었다.
같은 반 친구들 외에도 학원에도 정말 친한 친구들이 몇 명 있고, 교회에도 같은 학교에 다니는 절친이 있어서 설마 그중에 누구 한 명과는 같은 반이 될 수 있겠지...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인생은 우리가 기대한 대로,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하필 그 순간이 중요한 '반 배정'을 앞두고 우리 아들에게 찾아왔다. 그것도 부모조차 경험해 보지 않아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모르는 순간이.
“엄마... 우리 반에 나랑 친한 친구는 한 명도 없어. 그런데 작년 우리 반 친구들도 한 명도 없어...”
“뭐라고? 에이, 설마... 작년 너희 반 아이들이 한 명도 없다고??”
그야말로 ‘놀랄 노’ 자가 아닐 수 없었다. 반 배정이 확정되고 난 후 어제저녁에 올해 새 담임선생님께서 반 단톡방을 만드셨는데 그 단톡방에 모인 아이들 중에 작년 같은 반이었던 아이가 한 명도 없다는 거다. 남자아이들은 물론이고 여자아이들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나나 남편 역시 이런 일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해서 말문이 막혔다. 친한 친구와 같은 반이 안 된 적은 꽤 있어도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한 명도 없이 새 학년을 맞이해 본 경험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통틀어 한 번도 없었으니까.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아들이 불편해하는 친구들 몇 명이 같은 반에 배정되었다고 한다. 소위 학교에서 이름을 날리는(?!) 친구도 있다고 하고. 작년 반에는 그런 친구가 하나도 없었다고 하니 이거야말로 ‘극과 극’ 체험이 되어 버린 셈이다.
작년 1학년은총 6개 반이었고(한 반 당 인원은 약 30명대 초반), 너무 과밀이어서 올해에 반이 하나 더 늘어 7개 반이 되었다. 그래서 올해 아들 반의 총인원은 25명이라고 한다.
아들의 작년 반 학생 인원은 총 32명이었는데 우리 아들만 (남녀 통틀어) 혼자 뚝 떨어져 배정이 된 것이다. 반이 10개가 넘는 것도 아니고 겨우 7개 반인데. 반면 어떤 반에는 작년 반 아이들이 8명이나 모여 있다고 한다.
솔직히 이것은 학교 측에서 너무 배려가 없었다고 본다. 어떻게 이렇게 반 배정을 할 수가 있을까? 반 배정이 어떤 방식으로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아무리 원망을 한들 어쩌랴. 원망을 해서 해결될 수 있다면 100번도 더 원망을 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부모로서 깊은 실의에 빠진 아들을 잘 위로하는 것, 아들이 이 상황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어떤 위로도 아들에게 먹히지가 않는다. ‘새로운 반에서도 분명 좋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을 거야.’와 같은 상투적인 위로는 지금 아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나는 그런 아들이 안쓰러워서 무리수를 던지기까지 했다.
“우리 전갈도 키우고 가물치도 키우자!”
최근에 전갈을 키우고 싶다고 하던 아들이 가물치(다행히 이 가물치 종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듯이 어마어마하게 커지지는 않는다고 한다.)에도 푹 빠져서 뭘 키울까 고민 중이었는데 그냥 둘 다 키우자고 말을 던져 버린 것이다.
이렇게까지 하면 아들의 마음이 풀어질 줄 알았는데 아들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하긴 아무리 전갈과 가물치가 좋다고 해도 사람 친구를 대신할 수 있겠는가.
아들은 어젯밤에 평소와 달리 금방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자기 방과 안방을 몇 번이나 말없이 몽유병 환자처럼 오갔는지 모른다. 나는 그 모습이 또 속상해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말았다.
“네가 지금 그렇게 잠도 안 자고 고민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일도 아니잖아. 너무 최악의 상황만 생각하지 말고 일단 부딪쳐 봐. 그때 고민해도 안 늦어.”
내가 그 말을 한 뒤로 아들은 다시 안방에 찾아오지 않았다. 그냥 다 받아줄걸...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다. 어른들의 눈에야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잠을 못 잘 정도로 고민되고 힘든 일일 텐데 답답한 마음에 그 심정을 헤아리지 못했다.
‘아들아, 엄마가, 정말 정말 미안해! 네 마음을 너무 몰라줘서.’
오늘 아들에게 꼭 이렇게 사과를 하고 많이 안아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진심을 담아 아들의 마음을 공감해 주고 아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것뿐이다. 아들이 작년처럼 학교를 즐겁게까지는 아니더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다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