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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로스엘 Mar 04. 2022

비슷한 사진 속, 흐르는 시간들

너무나 소중한 '지금'

  우리 아빠는 나에게 매일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신다. 특별한 사진은 아니고 엄마와 함께 동네에서 산책을 하며 찍으신 사진들이다. 장소도 별반 다르지 않고 두 분의 옷차림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요며칠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아빠가 두꺼운 털모자를 벗고 찍으셨다는 것이다. 날씨가 많이 따뜻해진 덕분이다.       


  사진 속의 장소가 어디라고 구체적인 설명도 없으시다. 그냥 사진만 찍어 보내신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산책을 가시는 장소가 앞서 이야기했듯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간혹 내가 거기가 어디냐고 질문을 하면 금방 어디라고 답을 해 주신다. 깜찍한 이모티콘과 함께. 그러면 나도 좋은 하루 보내시라는 등의 짧은 메시지에 귀여움으로 무장한 이모티콘을 곁들여 답장을 보낸다. 내 이모티콘을 받으신 아빠는 또다시 이모티콘을 보내신다. 결국 아빠가 보내신 이모티콘으로 카톡 대화는 끝이 난다.     



  

  어쩌다 가끔 동영상을 보내 주실 때도 있다. 풍경이 특별히 아름답거나 새로운 장소에 가셨을 때, 나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무언가가 있으실 때는 동영상을 찍어서 보내 주시는데 리포터처럼 자상하게 설명도 덧붙이신다.


  이를 테면 개구리 소리가 요란한 장소에 가셔서는 개구리가 큰 소리로 울고 있다고 중계해 주시거나(우리 아빠는 개구리 울음 소리를 무척 좋아하신다.) 철새가 많은 곳에 가셔서는 무슨 새가 어디에 많이 있다고 알려 주시는 거다.      




  부모님이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셨는지 알고 있냐고 묻는다면 어느 정도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건 내가 의기양양해할 일이 전혀 아니다.


  부모님의 하루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은 내가 부모님께 관심을 기울여서가 아니라 부모님이 나에게 관심을 기울여 주셔서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매일 어디에 가시는지, 무엇을 하시는지 나에게 꼬박꼬박 사진을 보내 알려 주시기 때문인 것이다.      


  막상 나는 부모님께 먼저 연락을 드려서 나의 하루에 대해 알려드린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부모님께 먼저 연락을 받고 대답 정도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뭔가가 뒤바뀐 느낌이 들어 죄송스럽다.   




  아빠가 보내 주신 사진들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 모자가 있고 없고 정도로 거의 차이가 없는 듯 보이는 사진들.


  그런데 1년 전, 2년 전... 시간을 거슬러 내려간 사진들을 보면 엄청나게 다르다. 불과 몇 년 전인데... 그 짧은 시간 동안 부모님이 많이 늙으셨다. 매일 보면 비슷한 사진들이지만 분명 그 사진 속에서도 시간은 흐르고 있는 것이다.      




  부모님도 나를 보면서 이런 생각들을 하실까?


  마냥 어렸던 딸이 어느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40살이 넘은 중년이 되었으니 부모님도 나를 보면서 시간의 흐름을 느끼실 테지. 그리고 내가 부모님의 나이 들어감을 안타까워하고 섭섭해하듯 부모님도 나를 보며 그런 생각들을 하실 것이다.

     



  우리 아들 사진을 보면서도 가끔 울컥할 때가 있다. 아들의 어렸을 적 사진을 볼 때다. 지금의 모습과는 너무 다른 작고 어린 모습을 보며 내 아들인데도 깜짝깜짝 놀란다. 그리고 그 통통하고 뽀얀 얼굴이 너무 귀엽고 예쁜데 웃음이 아니라 눈물이 난다. “아우, 귀여워!!”라는 말을 연발하며 웃다가 나도 모르게 울컥해지는 것이다.

  

  아들은 내가 그러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짓는다.


  '지금의 넌 이해하지 못하겠지. 나중에 너도 아이가 생기고 나이가 들면 이 눈물의 의미를 알게 될 거야.'  


   아들이 처음 태어났을 때 빨갛고 작았던 얼굴, 아장아장 걷던 모습, 옹알거리던 귀여운 입술, 늘 내 손을 꼬옥 잡던 손.


  이제는 결코 다시는 만나지 못할 어린 시절의 아들이 사무치게 그립다. 그때의 시간들이 너무나도 아쉽다. 마냥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평범한 시간들이 이제는 영영 닿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매일 사진을 보내 주시는 아빠의 마음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아빠가 보내 주시는 사진들은 특별한 곳에서 멋있게 찍은 사진은 아니지만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진들이다. 그래서 하나도 빠짐없이 저장하고 있다. 나의 일상 속에, 지금 이 순간, 부모님이 계시다는 것, 이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지 새삼 깨닫는다.


  나날이 늙어가시는 부모님의 사진을 보면 매번 시간을 멈추고 싶지만 그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님을 안다. 그렇기에 과거도 미래도 ‘지금’만큼 중요할 수는 없다. 지금을 후회 없이 보내야 과거도 후회 없이 기억될 것이고, 미래도 후회 없이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부모님이 내 곁에 계시는 지금, 내 품에 사랑스러운 아들이 있는 지금, 후회 없이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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