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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빠도 잘 모르겠어

수능을 마친 아들을 대하는 아빠의 마음

by 곤리 Gonli

"괜찮지?"

"넌 최선을 다했잖아"

"그래도 건강이 중요하니 밥 잘 챙겨 먹어"

"다시 시작하면 되지 뭐"


이런 말로는 아들에게 위로가 안된다는 걸 잘 안다. 난 그저 아들의 눈빛만 덤덤하게 바라본다.

이제는 어른으로 대해야 할지 어떨지 아직은 헷갈린다. 앞으로 네가 겪게 될 일들이 어렴풋이 상상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내가 걸어온 길을 네게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사실, 아빠도 잘 모르겠어. 네가 어떤 길을 가는 게 더 좋을지 말이다. 그러나 네가 원한다면 아빠가 살아온 삶을 얘기를 해 줄 수는 있어.

너랑 별반 다를 게 없을 거야.

우선 우리 좀 더 친해줘 보는 건 어때?


내 인생의 가치관을 형성한 책 한 권을 소개할까 해.

'삼국지'

요즘 시대에 이런 책은 '좀 그래'라고 하겠지만 그 시절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땐 책 속 주인공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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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는 총 10권인데 내가 중학생 때부터 읽기 시작해서 3번 정도 완독한 책이야.

'사실 아들이 읽을 거라고는 기대도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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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누구랑 비슷한 인물일까? 유비, 장비, 관우, 조조, 손권, 조자룡, 제갈량(?) 재미있기도 하고, 내가 이런 상황에 처하면 어떤 결정을 내릴까 주인공처럼 상상도 해보고, 난 그 시절 세상을 내 머릿속에 담고 살았던 것 같아.


책 한 권을 다 읽은 이후에는 곧바로 그 순간의 느낌을 짤막한 글귀로 마지막 페이지에 남겼는데, 좀 유치하기도 하지만 그때는 그게 좀 멋있어 보였던 것 같아. 내가 어떤 생각으로 이 책을 읽었는지 그때는 어떤 고민들을 했는지 아마 조금은 전해질지도 모르겠다 싶어 글귀 중에 일부를 여기에 옮겨본다.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다 보면 좀 더 자연스럽게 서로의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질 거고 서로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삼국지를 읽은 후의 짤막한 글귀들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 울러 퍼지는 어느 이른 봄날이었다" / 1995.3.1

"풀벌레의 우지짐과 기계들의 요란한 몸부림과 그 사이로 내 숨결은 저 망망 대로에서 길을 헤맨다" / 1996.6.29

"오늘 찾아온 여름을 그때의 여름과 얼마나 다를까? 같을 순 없겠지!" / 2002. 8.10

"그 해 가을은 아름다웠다. 난 그 애를 잊기로 했다. 벌써부터 화려한 봄이 기다려진다" / 1995.10.1

"조조의 깊은 헤아림에 절로 감탄이 난다" / 1995.10.7

"산들산들 불어오는 봄바람 속에서도 내 여인의 숨결이 느껴지네" / 1996.4.10

"기다림은 고달픔이 아니라 희망이다" / 2002.8.22

"기나긴 여정이 드디어 꼬리를 들춘다. 제갈량의 그 지략에 오와 위가 맞서고 나설지 궁금하다. 제갈량의 지모와 전략에 빠져들수록 세상을 한번 뒤바꾸고 싶어 하는 어느 한 시골 청년의 가슴과 눈빛은 점점 불타오른다. 과연 나의 승부수는?" / 1996.5.25

"인생의 아름다움은 시작과 끝맺음이 분명하다는 것. 이 책을 펼친 지 1년, 드디어 기나긴 대장정을 마치고자 한다. 이 책이 조금이나마 내 인생에 등불이 되었으면 한다" / 1996. 7. 27

"수많은 피의 영혼들, 이제 한 줌의 흙으로 남아, 바람이 이는 대로 구천을 헤매네. 그 덧없음을 슬퍼할 게 아니라, 그 허무함을 탓할게 아니라 후세에 길이길이 맴도는 껍질뿐인 이름에, 대장부의 불타는 혈기를 쏟아 부울만 하지 않는가 이 헛된 세상에..." / 1996. 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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