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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속에 숨겨진 비밀들

오늘은 누구를 위해서 요리를 하나요?

by 곤리 Gonli

"오늘 점심은 뭐 먹을래? 쿠X에서 찾아서 알려줘, "

방학이라 집에 있는 중학생 아들의 점심 때문에 전화를 했더니, 갑자기 날벼락같은 소리가 들려온다.


"아빠, 그냥 내가 알아서 먹을게"

"이제 지겨워, 난 배달음식 더 이상 못 먹겠어, 먹고 싶은 것도 없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사 먹을게"


요즘 아내가 회사일로 바빠서 나에게 아들의 점심을 챙겨달라는 특명을 내린 터라 이럴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아들은 방학 동안 점심, 저녁을 배달음식, 외식으로만 해결했으니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난 그동안 별생각 없이 아들의 소중한 한 끼를 누구에게 맡겨왔던 것이다.


내가 가장 자신 있는 요리는 라면이다.

요리라고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라면도 요리처럼 먹고 싶은 생각에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그래서인지 내가 끓인 라면은 아들과 아내도 맛있게 잘 먹는 편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먹고 나면 한 마디씩 했다. "계란은 완숙으로 해줘", "면은 좀 더 쫄깃쫄깃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파는 빼 주세요", "저는 파는 꼭 넣어주세요", "약간 맵게 해 주세요" 이런 식이다. 처음에는 기분 좋게 들리지 않았다.


우선, 끓는 물에 면만 넣고 면이 약간 덜 익었을 때 꺼내어 차가운 물로 씻어서 기름기를 뺀다. 또 다른 냄비에 물을 넣고 끓인 다음 라면수프를 반정도만 넣고 김치를 넣어서 얼큰한 국물맛을 낸다. 계란은 끓는 국물 속에 넣고는 노른자 부분만 젓가락으로 살포시 휘젓는다. 파는 크게 쓸어서 넣는다. 마지막으로 면을 그릇에 잘 분배해서 담고 뜨거운 국물을 부으면 쫄깃쫄깃하고 담백한 아빠표 라면이 탄생하게 된다.


딱 여기까지다.

그렇다고 아들한테 라면만 먹일 수가 없는 노릇이고 사실 라면 이외에 다른 요리는 생각도 못했다. 물론 아내의 음식맛을 뛰어넘지 못할 거란 생각도 컸지만 요리는 둘 중에 잘하는 사람이 하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어쨌거나 이번 사태는 나를 바꾸는 계기가 된 셈이다.


나의 두 번째 요리는 된장찌개이다.

반신반의하는 아내에게 기본적인 레시피를 물어보고 유투버를 반복해서 보면서 재료들을 준비했다. 된장, 애호박, 양파, 두부 기본적인 재료만으로 만들어서 아내에게 먼저 시식하게 했는데 먹을만하다는 대답을 듣고서는 자신감이 생겼다. 추가로 버섯, 감자도 같이 넣어서 만들어보기도 했다. 드디어 아들에게 내가 만든 음식을 내어놓았는데, 처음에는 그냥 엄마가 만든 음식이거니 하고 별생각 없이 먹더니 어느 순간 맛이 좀 이전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들과 둘만 집에 있는 날이면 "이것 아빠가 만든 거야?"라고 묻기 시작했고 맛을 본 이후에 먹을지 말지를 결정하곤 했다. 정말 떨리는 순간이었다. 아들은 맛이 없다는 판정이 나면 먹지를 않았다. 난 내심 그래도 아빠가 정성 들여 만들었는데 '그냥 먹어주면 안 되나' 혼자 중얼거려 보지만 냉혹한 현실 앞에 서운함이 물밀듯 밀려왔다. 사실 그렇게 빨리 인정받을 거라고 생각은 안 했다.


누구를 위해 요리하느냐에 따라 요리의 재료들이 달라지고 음식 속에는 더 많은 비밀들이 담긴다. 김치찌개, 치킨, 미역국, 토마토계란볶음밥, 쇠고기계란볶음밥, 초간단 김밥, 시금치무침, 콩나물무침, 멸치볶음.......

내가 그동안 시간과 노력을 기꺼이 맞바꿔서 거리낌이 없이 만든 음식들이다.


간편김밥.jpg



오늘 요리는 누가 먹게 되나?

어제는 뭘 먹었지?

오늘은 어떤 요리를 만들까? 좀 특별한 걸 만들어 볼까? 아님 그냥 뭘 먹고 싶은지 먼저 물어볼까?

아들이 좋아하는 게 뭐였더라?

재료는 어떤 걸로 하지? 그리고 어디서 사야 하나?

냉장고에 남은 재료는 어떤 게 있는 걸까?

양은 어느 정도 해야 하지? 지금 무척 배고플 텐데.

내일까지 먹을 정도로 만들어야 하나? 아니야 냉장고에 들어가면 안 먹을 테니 조금만 해야지.

내일 아침에 먹을 것도 미리 만들어 놓을까?

다들 언제 집에 도착하려나? 아들은 학원은 언제 가지? 빨리 준비해야겠다.

그리고 설거지까지...


음식 속에는 이렇게 내가 깨닫지 못한 많은 비밀들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아내는 퇴근길, 버스 안에서 그리고 주방에서 이 모든 걸 숙명인양 거리낌 없이 해 왔다.

아마도 사랑과 헌신의 마음뿐만 아니라 원망과 서운함이 더 많이 비밀 속에 담겨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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