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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 Mar 27. 2022

나는 최저시급 N잡러이다.

내가 주로 하는 일을 꼽자면 아이 양육이다. 주부, 엄마 같은 타이틀 말고 아이를 잘 키워서 20년 후에 바람직한 어른으로 독립시키는 것이 목표인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프리랜서라고도 할 수 있다. 전문직 뺨치는 시급을 받아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라 단언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떤 돈을 주더라도 살 수 없는 것을 배우는 일이기에 특수 노동직에 가깝다. 허나 현실은 무보수이기에 아이를 키우면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끊임없이 찾아 헤맨다. 오래 몸담았던 회사에서 배운 것이라곤 싫은 상사 앞에서 미소 지을 수 있는 인내심, 말도 안 되는 상사의 개그에 웃어줄 수 있는 포용력, 일과 시간에 동료와 해야 하는 상사 험담 채팅을 위한 빠른 타자 속도뿐이다. 0부터 시작하는 마음으로 무언가를 배워서 경험을 쌓고 일을 하기엔 제약조건이 많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순 아르바이트뿐이었다. 


며칠에 한 번씩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들어가 본다. 키워드는 '재택근무'이다.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고 처음으로 했던 아르바이트는 오디오북 제작 일이었다. 노트북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었고,  한 만큼 벌어가는 구조라 아이를 재운 후 새벽 2,3시까지 일을 몇 달을 했다. 물론 최저시급이었다. 

불평할 새는 없었다. 집에서 시간 구애받지 않고 하는 일이었으니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이것보다 좋은 것은 없었다. 그렇게 몇 달 시한부 같은 업무가 끝나고 두 번째 아르바이트는 '데이터 라벨링' 일이었다. 

인공지능이 발달하고, 결국 AI라고 하는 것이 인간의 일을 대신한다지만 그 AI를 교육시키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이었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AI에게 주입시키기 위해서는 방대한 양의 막노동이 필요했다. 그 일이 바로 데이터 라벨링이다. 이것도 물론 컴퓨터를 다를 수 있는 모든 이들이 쉽게 접근 가능한 일이었다. 이것도 당연히 최저시급이었다. 생각보다 데이터 라벨링 업무는 수요가 많다. 이제 막 커지기 시작한 AI산업이라 초기에 투자되어야 하는 것이 많은 모양. 그 일을 하면서 다른 데이터 라벨링 업무도 계속 알아보며 이것저것 동시에 진행한 적도 있다. 소위 말해 N 잡러였다. 그것도 최저시급 N잡러.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것도, 나중에 아이가 좀 더 크면 이쪽분야로 오프라인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일단은 감사하게 일을 한다. 돈이 있어야 경험도 쌓을 수 있기에, 최소한의 돈을 벌면서 결국엔 나로 살아가기 위한 일을 찾아가는 중이다. 

최저시급 N잡러 말고 이정도는 받아야지 하는 시급의 일 딱 한 개만 하는 그 날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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