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일상을 무너뜨린 지 2년이 되었다.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를 만나보지 못한지도 2년째였다. 코로나라는 핑계로, 대면 면회가 허락되지 않는다는 핑계로 아빠는 나에게 같이 가자 하지 않으셨고, 그래서 나는 감사했다. 드라마 속 영화 속 할머니들과는 거리가 멀었던 우리 할머니. 아빠는 당연히 나에게 할머니의 안부를 묻길 바라고 관심 가져주길 바라셨지만,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내 기억 속 할머니는 그저 장손, 아들만 바라보는 분이셨다. 그런 할머니에게 손주라는 명분으로도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아빠는 달랐다. 둘째 아들로 태어나 부모에게 큰 사랑 못 받고 자랐다고 들어왔는데 아빠는 할머니에게 늘 지극정성이셨다. 그 효를 자식들에게 강요하지는 않으셨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늘 우리가 자신의 부모에게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고 있는 걸 모르지 않는다.
젊은 세월 그렇게 호령하고 다니시던 할머니는 결국 늘그막에 자신의 어린 시절로 숨어버렸다. 그리고 내 기억 속과 전혀 다른 인자한 할머니가 되어계셨다. 2년 만에 찾아간 요양원. 주말만 대면이 가능하다고 하여 현관 투명 문 앞에서 만남이 이루어졌다. 내 옆에는 8살이 된 나의 딸아이가 있었고, 백발의 할머니는 그런 증손녀를 환하게 웃으며 맞아주셨다.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맞은편에 계신 분이 처음 보는 백발의 노인이었어도 내가 그 순간 느끼는 감정은 같았을 거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자식을 바라보고, 손자를 바라본다. 할머니와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 적 없으니, 그녀가 정말 남아만을 선호했던 건지, 아니면 살갑지 못한 손녀에게 똑같이 살갑지 않게 구신 것뿐인지 알 수 없다. 그건 영영 알 수 없으리라. 내가 진실을 알려고 한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곳에서 90살의 노인과 8살의 아이가 만났다. 증조할머니가 무엇인지도 잘 모른 채 내 손에 이끌려 온 아이는 그저 맞은편에 계신 인자한 할머니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한다. 반가움, 궁금함 그 어딘가에 있는 표정으로 인사했다. 새싹과 열매, 시작과 끝 그 모든 것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그저 평안하시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그 긴 세월 행복하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