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기분이 가라앉는 날이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9시 개장과 동시에 수직 낙하하는 나의 주식 종목들 때문이기도 하고,
어제 다녀온 아이 친구 집이 너무 넓고 깨끗해서 이기도 하고,
자기 일을 찾아가는 친구의 소식을 들어서이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길을 헤매고 있다. 머릿속은 생각들로 가득 차 있지만 겉으로 끄집어 내 실천한 것은 손에 꼽는다.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 채 나는 여전히 퇴사 직후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래서 무척이나 초라해졌다. 오늘은 유독 더 그랬다.
위의 이유들을 객관식 답안지로 풀어놓고 오늘 내 감정의 이유를 고르라고 한다면 답은 4번 '기타'이다.
" 나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못해서 "
"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
평소면 들어줄법한 아이의 투정도 쉽게 받아주지 못했고, 갑작스레 내리는 빗줄기에도 울적해졌다.
금방 비는 그치고, 언제 그랬냐는 듯 쨍하기만 한 여름 하늘이 나타났다.
그런 하늘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도 오늘만 초라해져 볼까.
비만 줄곧 내리지는 않는 것처럼, 초라한 감정이 나를 매일 같이 지배할 수는 없다.
물론 딱 오늘만 초라하고, 내일부터 자존감이 가득하지도 않겠지만,
일단 그 감정을 글로 써 내려가며 밖으로 보내주는 작업을 하니 한결 나아졌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고민하는 삶을 살고 싶다.
어쩐지 내일은 덜 초라하고 자존감 살짝 올라간 나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