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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 Jun 16. 2022

아이의 첫 번째 이빨이 빠지던 날.

이빨이 늦게 난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남들은 빠르면 6살이면 빠지기 시작한다는 이빨이 8살이 되어도 감감무소식이었다. 혹시나 영구치가 없는 건 아닐까 싶어 치과도 예약해서 다녀왔고 다행히 엑스레이 속 영구치들은 깨알같이 유치 아래 자리 잡고 있었다. 


" 그냥 단순하게 늦는 것뿐이에요. 걱정 마세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안심하고는 집으로 들어온 며칠 후부터 드디어 앞니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 날은 살며시 흔들리기 시작하는 이빨은 며칠이 지나고 한 달이 다되어 갈 무렵 누가 봐도 곧 빠질 만큼 흔들거렸다.  

나 어렸을 적에는 이빨을 어떻게 뽑았더라? 자기는 못하겠다며 손사래만 치시던 엄마 덕분에 앞집 아주머니, 경비아저씨, 할머니 등등 수많은 사람 손에서 이빨이 뽑혀나갔다. 아마도 치과를 간 기억이 없는 걸 보면 내 20개 유치는 그렇게 인간미 넘치게 이빨요정 손으로 넘어간 모양이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이빨을 뽑을 때 보통은 치과에서 뽑는다. 부모가 할 수 없을 때 주변 사람들이 도와줄 만한 따뜻한 환경에서 살고 있지 않기에 나 역시 아이를 치과로 데려갈 생각을 했다. 예약을 해야 하나? 학교 끝나고 가면 자리가 있을까? 수많은 생각을 하다가 퍼뜩 유튜브가 떠올랐다.  분명 그곳에 해결책이 있으리라. 


"아이 키우는 부모님들 필수 시청! 실로 안 아프게 이 뽑기"


정확하게 내 니즈를 파악한 제목의 유튜브다. 친절해 보이는 의사 선생님의 솜씨 좋은 말솜씨로 아이의 이빨을 정말 하나도 안 아프게 뽑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영상이었다. 하지만 난 할 수 없다. 내 손으로 아이의 이빨을 살짝만 건드려도 저절로 비명이 질러지는데 그걸 내 손으로 뽑으라니, 절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남편에게 링크를 보냈다. " 아 못 할 것 같은데..." 자신 없어하는 남편에게 당신은 할 수 있다고, 평소에 하지도 않는 아부와 칭찬을 곁들여줬더니 선뜻해보겠다며 나섰다. 이빨을 뽑아본 경험이 없는 아이는 어떤 아픔인지 알지 못하기에 바로 자기 아빠 앞에 앉아 입을 벌렸다. 


"아아아아아" 

"하나도 안 아파, 금방 끝날 거야. 걱정 마!" 



뽕!


순식간에 아이의 이빨이 빠졌다. 무서워서 보지도 못한 채 고개를 돌리고 있던 나는 소리가 들리자 재빨리 아이에게 다가갔다. 어안이 벙벙한 아이는 이빨이 빠진 건지도 모른 채 여전히 입을 벌리고 있었다. 아프지 않았던지 울지도 않고 말이다.  그리고는 금세 알아차리곤 소리를 질렀다. 


"우와! 이빨이 빠졌어!!! 하나도 안 아픈데?? 우와!!! " 


아이와 함께 얼싸안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래도 조금은 아팠을 텐데 울지 않는 아이를 보면서 생각했다. 

너는 어느새 또 자라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는 방법을 알게 되었구나. 


아이가 태어나고 돌 무렵까지는 처음으로 해낸 것 들 투성이었다. 뒤집기, 혼자 앉기, 네발 기기, 걷기. 

돌이 지나고는 서서히 처음이어서 환호했던 일들이 줄어들었다. 가끔은 '너 다 할 줄 아는데 왜 엄마한테 해달라고 해' 라며 아이를 타박하기도 했다. 

아이의 첫 이빨 빠지던 날. 오랜만에 찾아온 아이와의 첫 경험은 우리 모두를 유난히 더 기쁘고 즐겁게 만들었다. 이빨요정에게 줄 거라며 베개맡에 고이 놓고 잠이든 아이에게 이빨요정 대리 자격으로 기분 좋은 선물을 해줘야겠다. 앞으로도 쭉 이어질 아이의 처음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잘 자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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