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골에 갈 일이 생겨 몇 년 만에 시골을 갔다. 그 일은 오래된 나의 강아지를 묻어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음이 참으로 힘들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큰 고모댁에 가서 고모와 대화하며 조금은 기분이 괜찮아졌다. 참고로 큰 고모는 연세가 80세가 넘으셔서 할머니와 대화하는 것과 같았다. 거기다가 그나마 아빠 집안 식구에서 내편이다. ( 그렇다고 아빠 얘기 나오면 일단 아빠편을 들기는 한다 ) 고모와 나는 나이차이는 많이 나지만 편하게 대화하며 일상적인 대화와 신앙적인 대화를 한다. 아빠 식구는 목사님이 두 분 계실 만큼 기독교 집안이다. 그렇게 조금 대화를 하다가 그래도 몇 년 만에 온 시골인 만큼 그 근처를 산책하고 오겠다고 하고 나갔다.
아무리 시골이어도 연휴기간이나 주말이 아니라 그런지 정말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잔잔한 노래를 들으며 무작정 옆동네까지 걸었다. 걷는 내내 정말 마음이 평안했다. 나의 마음도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웬 친구가 보였다.
가까이 보니 혼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나를 보고 옆으로 도망갔다. 그들은 바로 시골 댕댕이들이었다. 나는 반가워서 근처로 다가갔다. 댕댕이들의 입장에서는 모르는 젊은이가 시골에 있는 게 경계상태로 만든 것 같다.
나는 더 가까이 가지는 않고 건강하라고 살라고 하고 계속 여정을 이어갔다. 그들을 보니 쭌이가 생각이 났다. 아마 하늘나라에서 그 댕댕이들처럼 다니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웬 초등학교가 하나가 보였다. 그 학교는 외부인에게도 개방이 된다는 공고문을 보고 들어갔다. 아마 아직 방학이어서 그런 듯하였다.
나는 그 학교 운동장을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 바쁜 서울살이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여기 있는 어르신분들은 각자의 농사를 지으며 시골 댕댕이 한 마리 키우면서 살아가는 게 그리 부러울 수 없었다.
내 나이에는 물론 치열하게 경쟁하고 살아가는 게 맞을 수도 있다. 근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어 사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내 눈에 축구공 하나가 보였다. 바람이 다 빠진 듯한 공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축구선수를 준비했던 옛 기억이 나서 혼자서 축구를 하였다. 혼자 드리블하고 슈팅도 하고 프리킥도 차보고 페널티킥으로 파넨카도 하였다. ( 파넨카는 정면 쪽으로 공을 천천히 띄워서 차는 슈팅이다 ) 오래간만에 나는 히카르두 카카이 된 기분이었다. ( 그는 세계 최고였던 나의 축구 롤모델이었다 )
그렇게 몇 분을 혼자 놀았다. 나는 걱정할 고모가 생각나 발길을 재촉하며 옆 동네로 마저 향했고 나는 그 옆 동네 슈퍼에서 커피 하나를 사 들고 나왔다. 그렇게 다시 고모 집으로 걸었다.
정말 짧지만 길었던 산책이었다. 정말 이 세상에는 중요한 가치가 많다. 그런데 그 가치는 자신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각자만의 갖고 싶은 것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부를 갖고 싶다, 명예를 갖고 싶다, 좋은 연인을 만나고 싶다 같은 것은 자신이 살아가면서 중요한 가치를 만들어낸다.
근데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솔직히 없다. 아니 명확하게 얘기하자면 있었는데 사라졌다. 축구선수를 준비할 때는 명예와 부를 원했고 늘 최고가 되길 원했다. 그 이후에는 가족이라는 가치관을 두었지만 솔직히 그것도 크게 모르겠다.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가치를 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선택이다. 자신이 명예를 우선시하든지 부를 우선시하든지 가족을 우선시하든지 누가 시킨 적은 없다. 그래서 나는 시골에 있는 어르신들과 댕댕이들을 보며 뭐가 그리 대단한 삶을 살려고 아등바등하는지 모르겠다. 아마 내가 만들어 논 기준에 못 미치니 그런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