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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치 Nov 06. 2023

강한 비바람보다 무서운 건

밤새 거센 비바람이 분다. 태풍이 지나가는 듯 강한 바람 소리다. 비는 창문을 뚫고 들어올 것처럼 세차다. 이러다 뭐가 잘못되는 거 아닌가 싶어 마당을 살피고, 집 주변도 둘러본다. 다행히 마당은 온전하고, 부서지거나 날아간 물건도 없다. 자다가 몇 번을 깬 탓에 몸이 찌뿌둥하지만 피해가 없어서 다행이다.


아이는 간밤의 소란에도 단잠을 잔 모양이다. 남편과 커피 물을 끓이며 “빗소리에 열 번은 깼다”, “나는 한숨도 못 잤다”라며 지난밤에 누가 더 못 잤는지 배틀을 벌이는데(고로 오늘 아침 준비는 네가 좀 해라, 하는 게 이 대화의 종착지다) 아이는 자기는 잘 잤다며 생글생글 웃는다.      


아침으로 준비한 삶은 달걀과 토마토를 다 먹어가는데 날씨는 여전히 궂다.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어린이집 갈 수 있을까?”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아이가 묻는다. “걱정하지 마, 어린이집은 무조건 갈 수 있단다.” 혹시나 헛된 기대를 품을까 봐 눈은 웃지만 입은 단호하게 말한다. “알겠어.” 아이는 집었던 리모컨을 내려놓는다.     


양치와 세수를 마치고, 로션을 쓱쓱 바른 뒤 옷을 입혀 차에 오른다. 지난주에는 아침에 정신없이 나오다가 어린이집 가방을 놓고 등원했다. 어린이집에 도착해서야 그 사실을 깨달아서 다시 집에 오는 수고를 했었다. 비도 오는데 오늘은 절대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단단히 준비한다.      


당근 인형을 단 어린이집 가방을 비장하게 들고 아이에게 우산을 씌워주며 차까지 안내한다. 아이를 차에 태우고 안전띠를 매주는 사이 내 몸은 사방에서 불어오는 비에 다 젖는다. 그래도 괜찮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만 있다면.      


도로 곳곳에 물이 찼다. 와이퍼를 최대 속도로 켜고 서행하면서 어린이집 주차장에 도착했다. 아이를 등원시키기 위해 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우산을 든 채로 아이의 안전띠를 푸르고 짐을 챙긴다. 다른 사람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어른들 몸은 이미 반쯤 젖었고, 아이의 작은 키에 맞추느라 몸도 반 접혀 있다. 내 몸은 다 젖어도 아이는 뽀송하게 원에 들여보내기 위함이다. 혹시나 갑자기 맘이 바뀌어 안 간다고 할까 봐 아이 기분을 최대한 맞춰주면서. ‘꼭 보내고 말리라’ 부모들의 굳은 결의가 느껴진다.     


계획대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들여보냈다. 신발장을 보니 이렇게 비바람이 세찬 데도 아이들 대부분이 등원했다. 소중한 등원일을 비바람 때문에 날릴 순 없다. 아이가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돌아서는 길,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부모들은 서로 눈인사를 한다.     


우리는 알고 있다. 강한 비바람보다 무서운 건 가정 보육임을.



사진: Unsplash의 Josep Caste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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