뻣뻣하고, 근력 없는 몸을 가진 탓에 어려서부터 운동에 재능이 없었다. 그래도 건강을 생각해 꽤 여러 종류의 운동을 섭렵했지만 오래 다니지는 못했다. 마음만큼 몸이 따라주지 못하니 운동이 아니라 노동으로 느껴져 쉽게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다. 양평에 와서는 가끔 하는 북한강변 산책으로 만족하다가 작년에 드디어 나한테 맞는 운동을 찾았다.
‘줌바’다.
줌바 수업이 있는 날이면 아이를 서둘러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면사무소 안에 있는 주민자치센터 5층으로 향한다. 유연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몸을 가졌으므로 남들보다 더 오래, 열심히 스트레칭을 한다. 수업 시작 전 강당 구석에서 나무토막 같은 몸을 요리조리 풀다 보면 선생님이 웃으며 들어온다.
처음에는 춤을 잘 못 추는데 틀릴까 봐 부끄러워 망설였다. 하지만 걱정 안 해도 되는 일이었다. 다들 선생님 보고 따라 하느라 바쁘다. 동작 몇 개 틀린다고 주눅 드는 분위기도 아니다. 간혹 방향 전환을 잘못하여 옆 사람과 얼굴을 마주 보는 불상사가 생기는 일은 있다. 그럴 때면 웃음을 꾹 참고 수업에 정진한다. 춤추는 내 모습이 어색할 때도 있지만 다른 생각 안 하고 열심히 하면 된다. 어색함을 이기는 건 열심이다.
노래는 팝송이 대부분인데 줌바 수업 덕분에 좋은 노래를 많이 알게 되었다. 가사를 모르고 들어도 신난다. 그렇다고 빠른 속도의 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발라드도 있다. 그중 Sia의 <Snowman>이 나는 특히 좋았다. 좋은 걸 혼자 간직하기 아까워 남편에게도 춤을 알려주었다. 수업 시간에 배운 동작을 진지하게 선보이는데 남편은 문자 그대로 ‘포복절도’했다. 웃을 노래가 아닌데 왜 웃는지 모르겠다. 남편은 미안하다면서도 배를 접고 깔깔 웃었다. 거울 앞에서 동작을 해봤는데 내 모습이 상상과 다르긴 했다.
“이상하다, 선생님이 하면 되게 우아한데.”
한참 웃더니 남편은 눈물을 닦으며 물었다.
“대체 줌바가 뭐야?”
“콜롬비아의 안무가가 창작한 피트니스 프로그램”이라고 인터넷에서 급히 찾은 정보를 더듬더듬 읽어줬다. 내 춤으로 인해 남편이 줌바에 대해 그릇된 인식을 가질까 싶어 선생님의 유튜브를 보여줬다. 원래는 이런 춤이야, 덧붙이며. 남편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남편은 다는 모를 것이다. 주민자치센터 줌바의 매력을.
저렴한 가격에 집 가까운 곳에서 운동을 배울 수 있고, 전신 유산소 운동이라 건강도 챙길 수 있다.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총무님 덕분에 운동 끝나고 가끔 모여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거기서 텃밭 노하우와 동네 맛집 정보를 얻는다. “올해는 파 농사가 망했어”라는 회원님의 한탄에 깊은 위로를 보내고, 북한강 갤러리의 전시 소식도 접한다.
아는 이 하나 없이 양평에 와서 집을 지어 살고 있지만 줌바 덕분에 운동도 하고, 많은 이웃을 만나고 있다. 바깥 활동보다는 집에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내가 줌바 수업을 들은 뒤로는 같이 수업을 듣는 다른 사람들과 인사하고 지낸다.
일 년 넘게 열심히 다니고 있지만 몸이 뻣뻣한 건 여전하다. 수업이 끝날 즈음, 다 같이 요가 매트에 앉아 스트레칭을 하는 시간에 허리가 굽혀지지 않아 혼자 우두커니 고개를 들고 있는 사람이 나다. 그렇다고 줌바의 즐거움을 모를쏘냐. 내 춤을 보고 웃은 남편의 얼굴을 떠올리며 마일리 사이러스의 노래 <Flowers>에 맞춰 힘차게 춤을 춘다.
사진: Unsplash의 Danielle Cerullo
* 이 글은 <서종사랑> 70호에 기고한 글입니다.